담쟁이/ 안희환 담쟁이/ 안희환 움켜쥐고 오르는 건 담 너머가 궁금하기에. . 어쩔 수 없잖아 스스론 설 수 없는 걸. . 너무 뭐라 하진 마 파랗게 칠해 주잖아. . 추위로 죽어가기 전 담 너머를 보게 해줘. ----------- 사진/ 서산 해미읍성에서 안희환 자작시 2012.08.03
아빠의 등/ 안희환 아빠의 등/ 안희환 등이 참 따뜻했어요. 찬바람이 날을 세우고 와도 따듯한 등에 몸을 붙이면 봄볕에 잠들 듯 잘 수 있었어요. . 등이 참 넓었어요. 양손 가득 벌리면 끝이 닿는데도 바다처럼 넓게 보여 뒹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 등이 참 부드러웠어요. 등뼈가 솜뭉치는 아니었을 텐데 .. 안희환 자작시 2012.07.31
늘 도망다녔는데/ 안희환 늘 도망다녔는데/ 안희환 늘 도망 다녔지. 누군가와 친해진다는 건 정체가 다 드러난다는 것.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고통을 다신 겪고 싶지 않아서 이리저리 피해 다녔어. . 등거리를 유지한다는 건 그만큼 편하게 산다는 것. 불리할 땐 약간만 내디뎌도 쉽게 멀어지곤 했지. 일생 그렇게.. 안희환 자작시 2012.07.26
흙/ 안희환 흙/ 안희환 늘 밑바닥에 놓여 있지만,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짐승들에게도 날마다 밟히지만 그래도 모두를 품고 있다. . 자신의 살 속을 파고드는 생명을 뽑아내기보다는 몸을 내주고 생기를 보태 하늘 위로 뻗어가게 한다. . 자식을 위해 다 내주고 쭈글쭈글한 존재가 된 어머니. 그 어머.. 안희환 자작시 2012.07.20
돌에 맞은 개구리들/ 안희환 돌에 맞은 개구리들/ 안희환 연못가에 서서 돌을 던진다. 이유 없이 목적 없이 큰 돌 작은 돌 구분 없이 날마다 연못에 돌을 던진다. . 철 맞아 뛰놀던 개구리들이 하나 둘 돌에 맞아 쓰러지고 개구리들의 합창 소리는 점차 중창소리로 변해간다. . 돌을 던져서 풀린 응어리가 개구리 머리.. 안희환 자작시 2012.07.18
가지가 많은 이유/ 안희환 가지가 많은 이유/ 안희환 뿌리는 하나여도 가지는 나뉠 수밖에 없어. 퍼져가야 하잖아. 하늘이 저리 넓은데 움츠리고 있을 수 없잖아. . 다 펼쳐도 아직 푸르지 않은 세상 속에 잎사귀 하나 더 돋우어 맑은 그늘을 더 만든다면 새 한 마리라도 더 쉬어갈 수 있잖아. . 바람이야 불겠지. 가.. 안희환 자작시 2012.07.17
그는 바보라/ 안희환 그는 바보라/ 안희환 그는 바보라 잊기를 잘한다. 자신 향해 얼굴 찌푸렸던 것도 손가락질 하며 비웃던 것도 막말로 상처입인 것도 잊었다. . 이전에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해맑은 웃음으로 다가간다. 그 웃음마저 조롱거리가 돼도 그마저 다시 잊어버리고 만다. . 그가 바보라는 것을 알.. 안희환 자작시 2012.07.10
단어를 잃어버리다/ 안희환 단어를 잃어버리다/ 안희환 단어를 잃어버린 후 문장을 만들 수 없었다. 붕어처럼 버금거리는 입에선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가 소음처럼 쏟아져 나왔다. . 공기를 마셔도 속에선 새로운 단어가 태어났는데, 물 한 모금 마셔도 단어들이 자라나곤 했는데 메마른 하늘 아래 땅처럼 가슴이 .. 안희환 자작시 2012.07.10
친구여/ 안희환 친구여/ 안희환 처음 본 얼굴 속에서 한 백년 함께 산 듯 익숙함을 찾아내고는 놀란다. 강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마음이 흘러가는 동안 시간은 리듬을 잊어버렸다. . 도시를 등지고 나란히 지는 해를 바라보던 우린 어느새 친구가 되어 있었다. 저마다 갈 길을 가다가도 해지는 시간이 되.. 안희환 자작시 2012.06.30
녹슨 철망/ 안희환 녹슨 철망/ 안희환 녹슨 철망이 바람을 흔든다. 쇳가루가 두려운 바람은 신음소리를 내며 피해가고 바람마저 떠난 폐허의 공간엔 침묵만이 자리를 지킨다. . 아직도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공을 쫓아 달리던 아이들 쌍쌍이 손잡고 걷던 연인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는 소곤대며 걷던 새.. 안희환 자작시 2012.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