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판자촌생활

드디어 중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 안희환

안희환2 2006. 5. 16. 22:51
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54) / 드디어 중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 안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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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생이 되었다. 사실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된다는 것에 대해 기대감도 별로 없었고 싫은 마음도 그다지 없었다. 그저 남들이 중학생이 되니 나도 되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내가 다니던 서면 초등학교 옆에 안서 중학교가 있었는데 바로 그곳으로 진학을 하였기에 더더욱 담담했다. 학교 가는 길이 동일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거의 낯설은 감정이 없었던 것은 서면 초등학교 아이들이 대부분 안서중학교로 진학을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6년 동안 같이 놀고 공부하던 아이들을 그대로 중학교에서 볼 수 있으니 장소만 바뀌고 중학생이라고 호칭만 바꾸었을 뿐 나머지 것들은 거의 바뀌지 않은 것이다.


서면 초등학교와 안서 중학교 이름을 가지고 장난치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가 험상궂게 말한다. “야 안서?”. 그러면 다른 아이는 당당하게 말한다. “서면?”. 사실 초등학생이 하늘 같은 중학생에게 그런 식으로 대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말이라도 그렇게 하면서 장난을 쳤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달라진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교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검은색의 교복에 역시 검은색의 모자를 써야했는데 우리 형편에 비해 너무 비싼 교복이었기 때문에 사 입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다른 학생이 입던 얻을 수가 있었는데 몸이 말랐던 나는 그 옷이 커서 줄여 입고 다녔다.


물론 그 덕분에 내 옷은 다른 아이들의 옷처럼 깔끔하지도 않았고 윤기가 나지도 않았다. 옷이나 신발 혹은 가방 등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였기에 내 교복이 어떻든 신경도 쓰지 않았기에 그런 것으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그런 태도는 지금도 비슷한 것 같다. 좋은 옷, 비싼 옷을 입지 못해 속상해 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저 아내가 주는 대로 입는다.


중학교에 가서 인상적으로 느낀 하나는 선도부의 존재였다. 교문 앞에는 3학년 형들이 어깨에 ‘선도’라고 쓴 완장을 찬 채 서 있었는데 교문 저쪽에서부터 긴장하며 학교에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선도부 형들은 갓 입학한 1학년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때로 잘못 걸린 아이들이 교문 앞에서 벌을 서곤 했는데 자신이 그렇게 벌 서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무게 잡은 선도부원들의 모습이 우습기만 하다. 어떤 경우에 선도부원들은 선생님들보다 무게를 더 잡았다. 또 저학년들에게 선생님들보다 더 무섭게 굴기도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멋있는 것이라고 여긴 모양이다. 아이나 어른이나 완장을 차고 직급이 주어지면 으스대고 싶어지는 모양이다. 그런 선도부 앞에 바짝 쫄았던 내 모습도 우습다.


이렇게 시작한 나의 중학교 생활은 3월 초에 시작이 되었고 3월 중간까지 평탄하게 이어지는 듯 했지만 곧 내 일생에 다시금 겪고 싶지 않은 큰 일을 겪게 된다. 그 일은 내 인생을 송두리채 바꿔놓는 계기가 되고 오랫동안 아픔에 고통을 느끼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다른 학생들은 그런 아픔을 경험하지 않기를 지금도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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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수홍박찬석님의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