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56) 으깨어진 내 왼팔의 뼈와 살 / 안희환
사람을 질그릇으로 묘사한 성경의 구절을 좋아한다. 그리고 확실하게 동의한다. 사람이 질그릇같다고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어린 소년이 느낄만한 사항이라고 보기엔 너무 큰 주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주 일찍 그러한 주제에 대해 몸으로 경험을 하였다. 덤프트럭의 뒷바퀴가 내 왼 팔을 깔고 지나갈 때 사람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존재인지를 몸으로 겪은 것이다.
사랑의 뼈라고 하는 것이 참 튼튼하고 강해 보이지만 그렇지를 못했다. 그냥 부서지고 말았다. 하물며 뼈보다 약한 살이랴. 살은 발에 밟히는 진흙처럼 으깨어졌고 피는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내 생명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손바닥만을 남긴 채 납작해진 내 팔은 그나마 버텨준 힘줄과 팔을 덮고 있던 옷에 의해서 붙어있었다.
나를 친 덤프트럭은 조금 앞으로 가다가 멈춰 섰다. 그런데 차 문을 열고 내려야할 운전자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기절하지 않았던 나는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왼손을 오른 손으로 잡은 채 겨우 일어섰다. 그리고 덤프트럭으로 향했다. 왼손을 잡은 채 트럭문쪽으로 가서 힘겹게 문을 두드린 후 창문을 연 아저씨(청년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린 내겐 비슷하니)에게 말했다. “아저씨 빨리 병원으로 가요”
지금 생각해봐도 내 행동은 기특했다. 만약 멈춰선 덤프트럭을 향해 나아가지 않은 채 스러진 자리에 그냥 누워있었다면 나는 출혈과다로 죽었을 것이다. 어떻게 버둥거리며 일어섰는지, 어떻게 왼쫀을 잡고 덤프트럭 쪽으로 갔는지, 어떻게 운전자에게 병원으로 가자고 요청했는지 지금 생각해보아도 정말 잘한 일이고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감사하다. 그 덕분에 나는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으니까.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던가?
운전자 아저씨는 기절초풍했을 것이다. 쿵하니 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치었는데 잠시 후에 트럭문쪽으로 피투성이가 된 소년이 나타났으니 말이다.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문을 두드렸으니 말이다. 병원에 가자고 겨우 짜내어 하는 소년의 말을 들으면서 섬뜩했을 것이다. 그 모습을 상당히 오랫동안 잊지 못했을 것 같다. 나는 그 아저씨가 일찍 차문을 열고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원망하진 않는다. 스스로도 많이 놀랐을테니까.
나를 태운 덤프트럭은 병원을 찾아 출발했다. 트럭은 시흥대교쪽으로 향했다. 시흥대교를 넘은 후 자회전을 했다. 피는 계속 쏟아져 내렸으며 내가 앉은 조수석은 피로 홍수를 이루었다. 의식이 몽롱해져가면서도 버티고 있었는데(그럴 때 잠들면 죽는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어서) 이놈의 덤프트럭이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꾸물거렸다.
시간이란 것은 길이가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어느 때는 몇 시간도 순식간에 지나가고 어느 때는 단 30분의 시간도 한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여겨지니 말이다. 그것이 주관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어차피 사람이란 자신의 주관적인 관점을 가지고 자신도 상대도 사건도 사물도 바라보지 않는가? 무척 긴 시간을 달린 것 같은 덤프트럭이 성베드로 병원에 도착하데 걸린 시간은 실제로 2-30분 정도였을 것이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이동침대에 누여졌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첫 번째로 취한 행동은 수혈을 하는 것이었다. 내 피의 엄청난 분량이 빠져나왔으니 일단 부족한 피를 보충하는 것이 급선무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의사가 내게 물은 것은 부모님들의 연락처였다. 연락해 봐야 집에 안 계실텐데(일 나가셨을테니까. 휴대폰이 있던 시절도 아니고) 하면서 집 전화번호를 알려드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 동안 잘 버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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