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51) 안양천 고수부지에서의 결투/ 안희환
그다지 호전적이지 않았던 나는 또래의 친구들과 많이 싸우지 않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동안 싸운 횟수를 따지면 손에 꼽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순둥이도 아니었다. 욱하는 성격이 있는데다가 천성적으로 겁이 적은 편이었기에 부당하다 생각되는 일을 만나면 그냥 당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고등학생들의 싸움은 조금 살벌한 면이 있었지만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의 경우엔 그래도 순진한 면이 있었던 것 같다. 일단 누군가가 선빵(먼저 한 대를 때리는 것)을 날려서 코피라도 나면 싸움이 끝나곤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왔다고 하는 것에 경악을 하던 어린시절의 우리들은 확실히 요즘 아이들보다는 어리숙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느 날 나는 현이와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그게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보통의 아이들이 그렇듯 우리들도 별 것 아닌 것으로 설전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둘 중 한 명이 결투 신청을 하고 말았다(누가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저녁 무렵에 안양천 고수부지에서 싸우기로 한 것이다.
이 소식은 삽시간에 번져나갔고 동네 아이들은 나나 현이가 안양천 고수부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미리 모여서 기다리고 있었다. 가뜩이나 재미거리를 찾아다니는 판자촌 아이들이니 재미있는 싸움구경을 놓칠 리가 없는 것이다. 나와 현이는 나란히 서서 상대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현이가 갑자가 튀어나와서 주먹을 휘둘렀는데(정말 빨랐다) 제대로 피하지 못해서 그만 눈에 맞아버리고 말았다. 아주 정학하게~~
그리고 싸움은 끝났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 눈에서 피가 나는 것이다. 순간 구경하던 아이들은 놀랐고 현이는 겁을 먹은 채 집으로 도망가 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사태를 파악하고는 창피함과 분노에 몸을 떨어야했다. 자존심이 상한 나는 현이를 찾아 현이네 집으로 갔고 현이는 문을 걸어 잠근 채 열어주지 않았다.
현이네 집을 두드리다가 더 이상 소용없다는 것을 안 나는 창가로 가서 주먹으로 유리창을 쳐버렸다. 부서져 내리는 유리에 손을 다쳤는데 꽤 아팠던 것 같다. 그때였다. 누군가 후다닥 문을 열고 뛰어나갔는데 현이였다. 현이는 우리집을 향해 돌진했고 곧이어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자기네집 유리창 깬 것을 복수한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싸움에 들어갈 판인데 일을 나갔다가 돌아온 어른들 때문에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내 눈을 본 부모님들은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가셨고 현이는 현이의 부모님들에게 혼이 났다. 나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도 눈이 제대로 낫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를 걱정한 것이 아니라 이 창피함을 어떻게 하나를 고민했다.
다음 날 나는 같은 학교를 다니는 현이와 학교에서 만날 수밖에 없었고 어색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둘 중 어느 누구도 안양천 고수부지의 결투를 다시 하자고 말하지 않았다. 사실 그 결투는 내가 진 것이기에 재도전의 측면이어야 하는데 싸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상처 난 눈 말고 나머지 눈을 마저 다치면 걸어 다니는데 지장 있을까봐 몸을 사린 모양이다.
며칠이 지난 후 현이와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이좋게 지냈다. 말다툼을 하기도 했지만 안양천고수부지에서 결투하자는 말은 피차 입 밖에도 내지 않았다. 특이한 사실은 다쳤던 내 눈보다 유리창을 깬 손의 상처가 더 오래갔다는 점인데 그 후로 싸울 일이 생겨도 유리창을 주먹으로 때리는 무지한 일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현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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