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판자촌생활

죽은 옆집 아저씨의 옷을 물려 입다/ 안희환

안희환2 2006. 5. 9. 08:35

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52) 죽은 옆집 아저씨의 옷을 물려 입다/ 안희환 

헌옷[1].jpg

                                   (요즘은 중고 옷도 좋은 게 많다)


요즘은 브랜드에 속하는 신발 옷 가방 등이 잘 팔린다. 반면에 길거리표는 그야말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값 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유명 메이커만을 찾는 아이들을 보면 시대가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물론 우리 때도 유명 메이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그런 제품을 입거나 신거나 들고 다니는 아이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어떤 유명 브랜드가 있었나 하고 생각하니 떠오르는 것이 몇 가지가 있다. 나이키, 퓨마, 프로스펙스 등이다. 나는 그중에서 유일하게 퓨마 신발을 신어보았다. 사실은 진짜 퓨마가 아니고 우리 동네의 문실이 아빠(둘째는 은실이, 셋째는 금실이)라는 분이 자신의 집에서 신발을 만든 후 그 신발에 퓨마 스티커를 붙여서 파는 신발이었다. 짝퉁 퓨마인 것이다.


사실 내게는 짝퉁이라 해도 새 신발을 사 신는 것 자체가 기쁜 일이었다. 옷도 마찬가지이다. 새 옷을 사 입은 기억이 거의 없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와 중학교 때부터 기지바지를 입고 다녔는데 동네의 혹은 이웃 동네의 아저씨가 죽으면 그 바지를 가져다가 줄여 입은 덕이 그런 바지를 입고 다니게 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런 옷차림으로 인해 창피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은 것 같다. 당당하게 입고 다녔으니 말이다. 다만 얼마 안되는 그 당시의 사진을 보면 내 자신이 얼마나 촌스러웠는지를 알 수 있다. 그야말로 빈민국의 난민 소년같은 모습이다. 그래도 그런 내 옷차림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 받은 적이 없는 것을 보니 그 당시 다른 친구들도 그 수준이거나 조금 더 나은 수준이었던 것 같다(사실은 내가 가장 초라함).


한번은 바지가 찢어져서 전혀 다른 천으로 찢어진 부분을 기워서 입고 다닌 적이 있다. 색이 다른데다가 워낙 크게 기운지라 바지가 아주 독특하게 보였는데, 그 덕분에 지금도 그 차림새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옷 입기 싫다고 투덜거리지는 않았다. 놀림을 받기도 한 것 같은데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던 것 같다.


또 한번은 새로 청바지를 사주셨는데 내 키에 비해 바지가 너무 길었다. 요즘 같으면 바지 끝부분을 잘라내고 내 키에 맞춘 후 입었을 텐데 그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길게 위로 접어서 입었는데 얼마나 길었든지 허벅지 가까이에 올라갔다. 나중에 키가 컸을 때를 대비해서 청바지를 오래 입기 위해 바지를 자르지 않은 덕이다. 바지를 긴 장화처럼 신고 다닌 셈이다.


지금 내 아이들이 입는 옷들은 거의 헌옷도 아니고 종아리 위까지 올려 입는 바지도 아니다. 고급 옷은 아닐지라도 세련되고 깔끔한 옷을 입고 있다. 아내가 센스있게 아이들의 옷을 고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앞으로 죽은 옆집 아저씨의 옷을 줄여 입을 일도 없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자꾸 이야기 봐야 옛 어른들이 우리에게 하시던 옛 이야기나 차이 없이 요즘 아이들에게 느껴질 것이기에 그만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요즘 아이들은 복 받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감사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것을 이야기해봐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릴 뿐이겠지만 말이다. 자꾸만 내 어릴 때의 모습과 요즘 아이들의 삶을 비교해보는 내 자신을 보면서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피식 하고 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