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50) 학년 차이로 꼬여버린 친구관계 / 안희환
우리 동네에 나와 동갑네기 친구들이 나를 포함해서 4명이었다. 경섭이, 철이, 그리고 현이다. 내 기억으로 우리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무리없이 잘 지내었던 것 같다. 어차피 어린시절에 동갑네기들은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친구였고 한 살까지는 봐주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우리들은 온 동네를 누비며 다녔다.
그런데 이런 자연스런 관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이다. 생일이 빠른 경섭이와 철이가 학교를 1년 빨리 들어간 것이다. 나와 현이가 학교에 들어갔을 때 경섭이와 철이는 이미 2학년으로 상급생이 되어 있었고 그런 경섭이와 철이에게 현이는 형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런 현이가 이해되지 않았다. 또 그런 현이의 호칭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섭이와 철이도 이해되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그냥 경섭이와 철이를 이름으로 불렀고 단 한번도 형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이 넷이 함께 모이게 되면 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하게 만들었다. 똑같은 친구들인데 누구는 형이라 부르고 누구는 이름을 부르니 이상해진 것이다.
물론 학교에 들어간 후 학년에 따라서 선후배가 결정되고 그 관계를 넘어서면 불이익을 당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아무리 동갑이라 해도 상대가 7살에 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에 학년이 위이면 상대를 형이라 부르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처음에 친구였는데 학교 때문에 다시 선후배 관계가 된다는 것은 지금도 인정할 수가 없다.
아무튼 한 동네에 살면서 갈수록 상황은 엉뚱하게 흘러갔다. 중학교 시절 나는 큰 사고(후에 밝힐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만)를 겪은 후 6개월가량 병원에 입원했었고 그 덕분에 학교를 1년 쉬었다. 복학했을 때 나는 1년 후배들과 같이 공부하게 되었고 점차 그 아이들과 동화되어 나갔다. 그 사이에 현이는 1학년 위가 되었고 경섭이와 철이는 2학년 위가 되었다.
그래도 나는 현이는 당연하고 경섭이와 철이에게도 형이나 선배라고 부르지 않았다. 한번 친구였는데 다시 그 호칭을 형으로 바꾼다고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이에게 형소리를 듣는 경섭이와 철이도 내게는 단 한번도 형이라 부르라거나 선배라 부르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색한 서로의 호칭은 세월이 지나 서로가 헤어지기까지 이어져 나갔다.
내가 고등학교에 가면서 학교 근처의 자취방으로 이사를 했기에 서로 만날 기회가 적었고 그 후로는 더더욱 그랬다. 나중엔 이사를 가면서 어디에 사는지도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철이는 그 후로 본 적이 없다. 현이는 몇 차례 보았는데 직장 생활을 잘 하고 있었다. 경섭이는 아주대학교를 다니다가 자퇴서를 낸 후 동사무소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다시 수년이 지나갔는데 이젠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학년 차이로 서로의 관계가 그렇게 어색해지지 않았더라면 더 친하게 지내기도 하고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판자촌의 동갑내기들을 더 끈끈해질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한 채 세월따라 흩어져갔는데 그래도 종종 가끔 생각이 난다. 무얼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정 때문인가보다. 그 친구들도 그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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