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판자촌생활

베개싸움으로 난장판을 만들다/ 안희환

안희환2 2006. 5. 8. 14:43

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49) 베개싸움으로 난장판을 만들다/ 안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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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늦게까지 놀고 싶어하던 아이들이 소리치는 엄마의 압력에 굴해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나나 동생들 역시 똑같은 처지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면 저녁식사를 하는 것 외엔 심심한 일상이 이어지곤 했다. 집 안에 텔레비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버지가 우리들을 데리고 놀아주시는 것도 아니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우리들의 재미가 폭발될 수 있는 날들이 있었는데 수요일과 금요일과 일요일 밤이 그날이었다. 아버지야 한잔 걸치시고 화투장 돌리시느라 늦게 돌아오셨지만 어머니는 보통 집에 계시곤 했는데 수, 금, 일요일 저녁엔 교회를 가시기 때문에 집안에 어른이 한명도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가만 보면 어머니는 참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셨다. 하루 종일 일하시느라 피곤하신 데다가 집에서 그냥 누워계시기라도 하면 쉴 수 있을 텐데 빠지는 법 없이 교회를 가시는 걸 보면 말이다. 그것도 바로 옆에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참을 걸어서 가야하는 교회였는데 말이다. 아마도 하나님께 나아가서 예배드리고 기도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으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정을 제대로 알 리 없는 우리들은 그냥 그걸로 좋았다. 집안에서 우리들을 간섭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만으로. 이제 우리들만의 세상이 온 것이다. 그때 우리들이 종종하던 놀이는 베개싸움이었다. 베개를 하나씩 들고 불을 끈 채 저마다 구석에 숨어있는 것이다. 조그만 창문을 방석 등으로 막아놓으면 확실한 암흑이었기에 어디에 누가 있는지 보이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인내심이 약한 사람이 움직이다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면 그쪽으로 달려가서 베개를 휘두르는 것이다. 지금처럼 가벼운 솜이 아니라 제법 묵직한 내용물이 들어있었던 베개였기에 제대로 맞을 경우 정신이 바짝 날 만큼의 강도가 있었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몇 십 초 혹은 몇 분가량의 접전을 벌인 후 불을 켜면 누가 얻어맞았는지를 파악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다시 불을 끈 채 다음 게임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사연으로 인해 우리 집 베개는 오래가지를 못했다. 여기저기 바늘로 수술한 흔적이 생겼다. 그런 베개가 예쁠 리 없지만 워낙 미적 감각과는 뚝 떨어져 살던 우리들에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성형수술이 절실한 베개를 베고 깊은 잠속으로 떨어지곤 했으니까 말이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긴장 속에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눌러가며 공격 대상을 기다리던 그때의 광경이 선하다.


때로는 베개 전투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어머니가 돌아올 시간이 다 되도록 난리를 피우다가 난장판이 된 집 때문에 혼이 나기도 했다. 가전제품이고 장롱이고 이불이고 짬뽕처럼 뒤섞인 채 돌아다니는데다가 방 안에 꽉 찬 먼지는 경건하게 예배드리고 돌아오신 어머니의 마음에 풍랑을 일으키는 요소가 되었던 것 같다.


만사에 절제가 필요한 법인데... 어머니 돌아오시기 10분 전에만 정리시작하고 방문 열어 놓으면 깜쪽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처리를 하지 못한 채 종종 혼이 나곤 했던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완전범죄라는 것엔 애시당초 재능이 없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 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아주 가끔 내 아들에게 베개를 휘둘러보곤 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