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판자촌생활

세 명의 동생들을 거느리고 / 안희환

안희환2 2006. 5. 8. 14:42
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48) 세 명의 동생들을 거느리고 / 안희환 

 

 

내게는 4명의 동생들이 있다. 전부다 두 살씩 나이 차이가 나는데 막내는 나와 여섯 살 차이가 된다. 위로 셋이 남자고 막내가 여자인데 내 기억으로 동생들과 싸운 기억이 없다. 아버지가 엄하게 위계질서를 세우신 것도 아니고 어머니가 개입해서 조정을 하신 것이 아닌데도 우리들은 형제간에 충돌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참 시기할 따름이다. 보통 몇 차례는 싸우기 마련인데 싸운 기억이 없으니 말이다.


세 명의 동생들을 조금씩 설명해보고자 한다. 둘째는 어릴 때 무척 고집이 셌다고 한다. 지금도 고집이 상당히 세다. 우리 4남매 중에 가장 많은 땡깡을 부렸다고 하는 게 바로 그 동생이다. 그러나 그 고집과 달리 정이 유난히 많은 아이였다. 어쩌다 생긴 과자를 분배해서 먹는데 둘째는 종종 그 과자를 아끼느라고 숨겨놓곤 했다. 그리고 다 먹은 나머지 형제가 둘째의 과자에 눈독을 들이면 둘째는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었다.


셋째는 피부가 가장 희고 성격도 가장 유순했다. 형제 사이에서도 그렇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도 셋째는 싸우는 일이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소심한 측면이 있다. 축구를 할 때 공이 오면 그 공을 가로채려는 것이 아니라 그 공을 피하곤 했다. 그러니 야구할 때 타자로 나서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다. 특이한 것은 그렇게 유하고 소심해 보이는데도 친구들이 많이 따랐다는 점이다.


막내는 유일한 여자이자 막내라는 특이성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다지 정이 많게 자녀들을 대하지 않는 아버지도 막내 여동생에게는 잘 해주시는 편이었다. 귀한 날달걀을 뜨거운 밥밑에 묻어두었다가 간장에 비벼먹을 수 있는 특권은 막내 여동생 외에는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침을 삼키면 꿀꺽하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었다. 마음이 여리고 조금은 소심한 스타일의 막내이다.


그러면 나는 어땠는가? 동생들의 입장에서 나를 보는 시각이 어땠는지를 말해야 하는데 사실은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지금 전화를 해서 어릴 때 내가 동생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는지 묻기도 뭐하고 말이다. 일단 내가 볼 때 나는 어느 정도 이기적이고 동생들을 아끼면서도 큰형으로서의 행세를 톡톡히 한 것 같다.


아무튼 동생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은 동생들이 내게 말로든 행동으로든 덤비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며(내 기억으로) 형으로서의 대우를 잘 해 주었다는 것이다. 중학교 무렵에는 내가 동생들을 가르쳐주곤 했었는데 드물게 매를 들어도 그것에 대해 감정을 갖거나 함부로 덤비거나 하지 않고 그대로 순응했던 동생들이다.


사실 이런 동생들의 모습들에 익숙해있던 나는 친척 집에 놀라갔다가 깜짝 놀라곤 하였다. 그 집엔 큰 누나 작은 누나 등 여러 누나들이 있었고 나보다 어린 남동생 둘이 있었는데 얼마나 서로 간에 으르렁 거렸는지 모른다. 심지어는 자신의 누나나 언니를 향해 이름을 부르거나 “야”라고 소리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는데 어린 나이의 나는 그 모습이 이해가 되지를 않았었다.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 동생들도 장성하여 어른이 되었다. 서로의 삶이 바쁘다 보니 함께 만날 시간도 많지 않은 것을 보면서 어린 시절 서로 싸우지 않고 지냈던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싸우면서 큰다는 말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질서를 지키며 예의를 갖춘 상태에서 자라는 것은 복이란 생각이 든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의 영상들이 머리 속에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