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판자촌생활

자식들을 불러놓고 무얼 하셨나?/ 안희환

안희환2 2006. 5. 8. 14:42

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47) 자식들을 불러놓고 무얼 하셨나?/ 안희환 

            

 

어머니를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가 참 많은 것 같다.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가진 어머니, 해바라기처럼 자식들만 바라보고 사신 어머니, 느티나무처럼 안식처가 되어주는 어머니, 봄바람처럼 언 마음을 녹여주는 어머니. 기타 등등. 그 어머니의 품은 사람에게 있어 영원한 쉼터이며 그리움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창고이다.


내게 있어 어머니 하면 떠오르곤 하는 어떤 모습이 있다. 그 모습은 어린 시절 우리들 4남매와 어머니를 힘들게 했던 아버지의 모습과 동시에 떠오른다. 앞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고 술을 드신 날에는 밤새 잠을 못자게 하시곤 했다. 그나마 나은(?) 날은 아버지가 술을 마신 후 집에 돌아오시지 않는 날이었다.


종종 아버지는 술을 마시다가 느닷없이 집에 돌아와서 집안을 한바탕 뒤집어 놓고 다시 나가시곤 했다. 그냥 쭈욱 술만 들이키기엔 심심했는지 일종의 이벤트용 혹은 기분 전환용으로 그 난리를 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와 맞붙어 싸우지 않으셨다. 요즘 남편에게 큰소리치며 사는 젊은 아내들에게는 이해가 안가는 대목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가 마음 상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어머니는 무척 힘들어하셨다. 일하랴, 살림하랴, 애들 돌보랴 눈코 뜰 새 없는 어머니였는데 아버지 때문에 더 힘드신 것이다. 그때 어머니를 지탱해준 것은 신앙이었다. 아버지가 이것저것 뒤집어놓아 정신없어진 조그만 방에서 어머니는 우리 4남매를 모아놓고는 겁을 먹고 불안해하는 우리들을 위로하시며 찬송도 불러주시고 기도도 해주셨다.


어머니가 많이 부르셨던 찬송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이라는 곡이었는데 어머니는 이 찬송을 부르시면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으신 것 같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내 고생하는 것 옛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

꿈에도 소원이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덕분에 나는 어릴 때부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의미의 가사를 흥얼거리면서 그 찬송을 부르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뿐더러 그때 우리들을 모아놓고 찬송을 부르며 기도해주던 어머니의 애절함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참 가슴앓이를 많이 하신 어머니시다.


나는 어머니가 소리를 치면서 아버지와 싸우지 않으셨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대들지도 않은 채(못한 채가 아니고) 우리들을 모아놓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해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바보 같은 모습일지 몰라도 내게는 고귀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세월이 지난 후 아버지 역시 그런 어머니의 귀함을 알게 되었고 이젠 잘 받들어 모시고 있으니까 감사한 일이고. ^0^


힘들다는 이유로 아이들까지 팽개치고 집을 나가는 여성들에 대한 소식을 들으면 한 면으로는 불쌍하고 한 면으로는 그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난다. 내 어머니가 우리를 버리고 나가버리셨다면 어찌되었을까 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기 때문이다. 요즘의 여성들처럼 똑똑하지 못할 수 있겠지만 숱한 고생과 설움 속에서도 가정을 지켜주신 내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 지혜로운 분이었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고통의 한 복판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신앙으로, 삶으로 보여주셨기에 우리들은 값진 교훈을 얻은 셈이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삶에의 소망과 열기를 불러일으키는 어머니의 모습은 우리 4남매의 축복이었다는 것을 나는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