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30) 땅따먹기의 종말 / 안희환
판자촌이라 하면 놀이문화가 발달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실상은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인공적으로 만든 문화 공간을 누릴 기회가 없기에 자연 속에서 놀 것을 찾아내게 되니 오히려 웰빙 놀이 문화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오래 지난 지금도 그때 재미있게 놀던 내용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조각하고 있다.
놀이 할 때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땅따먹기이다. 땅따먹기는 넓은 직사각형을 땅에 그려 놓고 그 끄트머리에 조그만 공간을 그린 후 그곳에서부터 땅을 넓혀가는 놀이이다. 내 집에서부터 시작하여 얇고 작은 돌을 손가락으로 세 번 튀긴 후 내 집에 돌아오면 그 넓이만큼 내 땅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집에 돌아온 후 손가락으로 닿는 범위의 선에 줄을 그으면 그만큼 추가로 내 땅이 된다.
공을 가지고 뛰어노는 놀이처럼 과격하지는 않은 놀이지만 땅따먹기 역시 조용조용한 놀이는 아니었다. 선이 닿았느니 닿지 않았느니 옥신각신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핏대를 높이며 싸우기도 하는 것이다. 또 손가락으로 닿는 거리에 줄을 긋는 시점에는 조금이라도 땅 평수를 더 얻기 위해서 손바닥을 넓게 펴는데 나중에 보면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사이의 갈라진 면이 살짝 찢어져 피가 나기도 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사람이 부동산에 대한 욕심이 무척 많다는 것을 깨달은 때가... ^0^. 조금씩 넓어져가는 땅 평수는 어린 나이의 내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었던가?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넓어져가는 땅 평수를 보며 즐거워하는 것이다. 땅이 늘어가면서 기뻐하지 않는 아이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반대로 세 번을 손가락으로 튀긴 조그만 돌이 제 집에 돌아오지 못한 채 엉뚱한 곳으로 가거나 금에 닿거나(금에 닿으면 무효가 된다) 하면 탄식이 절로 나왔다. 또 상대방이 부당하게 평수를 늘였다고 생각이 되면 그렇게 언짢을 수가 없었다. 이 역시 나만의 반응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어른이나 아니나 땅 욕심 많은 것은 공통적인 현상인가 보다.
그런데 그렇게 재미있게 놀다보면 어느덧 해가 서산을 넘어간다. 선명하던 선 그림자는 점차로 흐려지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선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 실수를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먼저든 혹은 상대가 먼저든 간에 집에서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된다. “희환아 집에 들어와라”. 그러면 기를 쓰고 땅 평수를 더 많이 늘이려고 하던 우리는 그 땅을 미련 없이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놀이 속에도 인생의 귀한 진리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기를 쓰고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는 인간의 모습은 어른이나 아이나 동일하다는 것이다. 또한 어느 때가 되면 그토록 집착하던 모든 것을 버려두고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바로 전까지 그렇게 기쁨이 되거나 탄식이 되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버린 채 말이다.
임수림씨라는 사람이 만주에서 거부가 되었는데 돈을 쓰지도 못하고 죽자 관 양쪽에 구멍을 뚫고 팔을 내놓은 후 장례를 치러달라고 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아무 것도 못가지고 가는 것이 억울하다는 듯이 상여 밖으로 흔들리는 두 팔은 얼마나 초라한 모습인가? 그가 아무리 커다란 부자일지라도 상관없이 말이다.
어차피 그렇게 되는 것이 우리 모든 사람의 결국이라면 가지고 가지도 못할 것을 조금 더 가지기 위해 그토록 치고받고 싸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씩 양보하며 사랑하고 아끼는 인간관계야 말로 진정 사람답게 사는 삶의 방식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욕심에 매이는 것을 느낄 때마다 어린 시절 땅따먹기를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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