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29) 병공장와 철공장, 그리고 공터 / 안희환
안양천
뚝방 밑에 나란히 늘어선 판자촌 그 중간쯤에 우리 집이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었고 우리 집을 중심으로 집에서 나와 왼쪽으로 쭉 가면 그
끄트머리에 공장이 하나가 있었고, 오른쪽으로 가면 그 끄트머리에 또 하나의 공장이 있었다. 그 공장들까지의 거리는 거의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두 공장은 각기 다른 특색이 있었다.
집에서 나와 왼쪽으로 갈 때 나오는 공장은 철공장이라고 불렀었다. 그 공장은 쇠를 녹이는 용광로가 있고 녹인 쇳물을 녹이는 틀 같은 것이 있어서 어떤 형태의 물건을 만드는 곳이었다. 어쩌다 기회를 얻어 그 공장안에 들어간 본 적이 있었는데 나는 한참 동안 시뻘건 쇳물을 들여다보았다.
멀찍이 떨어져 있는데도 바로 가까이에 화력 좋은 난로를 핀 것 같은 열기가 가슴에 부딪혀왔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뜨끈뜨끈한 공기가 가슴을 데우는 것 같았는데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때에는 그곳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이 덥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던 것 같고 다만 쇠가 녹아서 물처럼 흐느적거리는 모습이 놀라워서 눈을 뗄 수가 없을 뿐이었다. 지금도 그 광경이 눈에 선하다. 그것은 일종의 두려움도 느끼게 하는 광경이었다.
집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갈 때 나오는 공장은 병공장이라고 불렀다. 어디서부터 가져오는지 온갖 종류의 병들을 가져다가 쌓아놓은 것이 보이는 공장이었는데 나를 포함하여 동네 어린이들은 그 병들을 몇 개씩 가져오곤 했었다. 공장의 사장님이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져온 병들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본 공장 사람들 중에 어느 누구도 우리를 나무라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들이 병공장에서 가져온 병으로 노는 놀이방법은 몇 가지가 있었다. 첫째로 병을 세워놓고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돌을 던져 맞히는 놀이가 있다. 나는 돌을 제법 잘 던지는 편이었는데 그 솜씨를 활용하여 돌로 병을 깨뜨리면 참 속 시원한 기분을 느끼곤 했었다. 스트레스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트레스가 있었다면 그런 방식으로 많이 풀렸을 것 같다.
둘째로 병 안에 물을 담고 그 속에 퐁퐁(음식 닦을 때 쓰던 세재)을 넣은 다음 요구르트 아줌마에게 얻은 빨대로 거품방울을 만드는 놀이가 있었다. 누구의 거품이 더 큰지, 혹은 누구의 거품이 공중에서 더 오랫동안 터지지 않고 남아 있는지를 가지고 시합했던 기억이 있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것 아닌 놀이였는데 그래도 참 재미나게 놀았던 것 같다.
그렇게 동네의 양쪽 끝에 자리 잡은 병공장과 철공장은 공통점이 있었는데 공장 앞에 넓은 공터가 있다는 점이다. 놀이 공간이 마땅치 않은 우리들에게 그 공터는 모여서 놀기에 딱 좋은 장소였기에 늘 많은 아이들이 모여 있곤 했다. 두 장소 중에 내가 더 많이 간 곳은 병공장 공터였는데 철공장공터보다 두 배 정도 더 많이 갔던 것 같다.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철공장은 가봐야 철을 주워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데 반해 병 공장은 놀이의 도구가 되는 병을 주워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이도 들었고 병가지고 놀 일도 없지만 가끔 그 병 공장 있는 곳에 가보고 싶다. 그 공터가 지금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다. 조만간 시간 내서 찾아가볼 생각을 하는데 기회를 못내고 있다. 어릴 적 놀던 공간은 이렇게 그리움이 생기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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