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28) 크라운 산도 하나의 상처 / 안희환
아버지가
술로 세월을 보내시고 어머니가 땡볕에 일하셔서 버는 돈으로는 넉넉한 살림살이가 되지 못했던 것 같다. 늘 모자란 것으로 인해 걱정하는 어머니의
한숨 소리를 들어야했으니 말이다. 사실 판자촌에 사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비슷한 처지였다. 형편이 좋았다면 판자촌까지 흘러들어올
일도 없었을 것이고 말이다.
아무튼 어려운 형편에 용돈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가끔 가다가 몇 십 원을 받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 처지에 있는 나로선 용돈을 몇 천 원씩 받기도 하는 친구들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큰 목돈을 내 손에 쥐어보는 날이 오기를 얼마나 갈망하였던가? 아니 그만큼이 아니어도 좋다. 그 반의 반 만큼이라도 받을 수 있기를 얼마나 원했었던가?
몇 십 원의 돈이 생기면 그 동안 먹고 싶었던 과자를 사러 똥뚝가게나 담배가게로 달려갔다. 똥뚝가게는 집에서 나온 후 왼쪽으로 가면 나왔고 담배가게는 오른쪽으로 가면 나왔다. 왜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 내 눈에 그 가게들은 보물창고로 보였다. 나중에서야 그 가게가 얼마나 초라한 구멍가게인지 알고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내가 돈이 생길 때 주로 사먹던 과자는 [자야]였다. 20원짜리 과자였는데 라면을 부신 후 볶은 것 같이 생긴 과자였다. 제법 양이 많았는데 빨리 먹으면 속상하니까 조금씩 털어서 입에 집어넣고 한참을 씹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다. 음식을 오래 씹어 먹는 버릇이 그때 생긴 것 같다. 그래서인지 위장은 엄청 튼튼하다. ^0^.
그러던 어느 날 아주 놀라운 과자가 세상에 나왔다. 크라운 산도라는 조그만(자야보다) 과자였는데 값은 자야의 두 배가 넘었다. 지나가던 가게의 텔레비전으로 가끔 보는 광고에 크라운 산도 선전이 나왔고 내 눈에 그 과자는 내가 가까이 하기 어려운 꿈의 과자로 여겨졌다. 저런 것을 사먹는 아이들은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그토록 먹어보고 싶어 하던 크라운 산도를 접하게 된 계기가 생겼다. 좋은 집에 살던 친구의 집(지금 생각하니 그 집도 그렇게 좋은 집은 아니다. 판자촌에 비하면 어떤 집이든 좋게 보일 것이다)에 놀러가게 되었는데 그 친구가 산도를 여러 개 들고 나온 것이다. 마루에 걸터앉아 그 친구가 준 산도 하나를 먹었는데 그것은 이 세상 음식 같지가 않았다. 너무 맛있었다.
문제는 산도가 자야에 비해 부드러워서 아무리 오래 씹으려 해도 순식간에 입에서 녹는다는 점이었다. 나는 좀 더 오래 씹지 못한 자신을 나무랐었다. 자존심이 제법 강했던 나는 더 달라 소리를 하지 않았고. 그때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친구가 산도를 까더니 얼쩡거리는 개에게 던져주는 것이었다. 그놈은 순식간에 산도를 삼키고 꼬리를 흔들었는데 친구는 하나를 더 던져주었다.
그 일은 내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그러기에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 나는 가진 자의 간단한 행동이 가지지 못한 자의 가슴에 못을 박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제 예전처럼 가난한 삶을 살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능하면 검소하게 살려고 애를 쓴다. 나의 간단한 행동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경 쓰고 사는 것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천만에. 오히려 그렇게 신경을 쓰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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