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도 없이 움직이는 사람들 /안희환
린드버그는 1930년 역사상 처음으로 비행기를 몰고 대서양을 건너려고 시도하였습니다. 아직 비행기의 기능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인지라 그 일은 생명을 건 작업이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대서양 횡단에 도전했다가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린드버그는 프로펠러 비행기로 대서양을 횡단하는데 성공하였고 일약 영웅이 되었습니다.
세계가 주목하는 인물이 된 린드버그는 어디를 가든지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고 그가 가는 곳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었습니다. 한번은 파리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린드버그가 온다는 말을 듣고 이번에도 수십만의 인파가 모여들었습니다. 그때 커다란 담배 회사의 사장이 이 기회를 통해 자기 회사의 담배를 광고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린드버그에게 다가와 담배 한 개비를 주면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것을 손에 끼어도 좋고 입에 물어도 좋습니다. 포즈 한 번만 취해 주십시오. 그러면 사진 한 장을 찍는 대가로 5만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1930년대의 5만 달러는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습니다. 그 정도 액수의 돈을 벌 수 있다면 괴된 일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의 액수입니다. 그런데 단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거나 손에 낀 채로 사진 한 장만 찍는 조건으로 5만 달러를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괜찮은 벌이입니까? 그러나 린드버그는 담배회사 사장의 말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짧게 대답을 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세례를 받은 신자입니다.”
나는 담배 한 개비를 손에 끼는 것이 옳고 그르다는 측면에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구분하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을 위해 쉽게 벌 수 있는 막대한 액수의 돈도 거절할 수 있는 린드버그의 자세를 높이 사고 싶습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그처럼 신념을 지키기 위해 좋은 기회를 단호히 거절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너무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통합이 있었습니다. 긴 이야기는 접어두고 간단히 말해서 한나라당으로서는 의석수를 더 늘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고. 자민련으로서는 스스로 당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니 한나라당과 통합함으로써 해체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있으니 유익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각 당은 당 나름대로의 정책과 노선이 있습니다. 물론 한나라당이나 자민련이나 보수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통하는 부분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동안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밀월관계를 유지한 것도 아니었고 어떤 정책을 이루기 위해 공동의 보조를 취하지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통합이 어떤 일치되는 신념에 근거한 것이라고 믿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기업 분야에서는 인수 합병이라는 것이 널리 퍼져있습니다. 별개의 기업들이 하나로 통합되어 시너지 효과를 보게 되는 경우도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적대적 인수합병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기업의 경우 신념이라는 것이 크게 작용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회사는 창업자의 정신에 따라 유지되기도 하고 어떤 회사는 회사의 강령같은 것이 있어 원칙을 지키기도 하고 또 기업으로서 지켜야할 윤리 같은 것도 있습니다만 그것들은 기업을 통합하는데 커다란 장애요인이 되지 못합니다. 통합된 회사의 경연진이 이끄는 방침이 자신들의 신념에 어긋난다고 해서 집단을 반발할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기업의 목표는 이윤추구이기도 하니까요.
따라서 기업의 통합과 같은 맥락에서 정당의 통합을 바라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실 그 동안의 정당 통합과 새정당의 창당은 다분히 기득권유지에 있어왔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철학도 신념도 없이 그저 세력 불리기 혹은 방해 세력 제거라는 목표에 집중해왔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새정당의 시작도 기존 정당들의 통합도 국민들의 눈엔 자기들끼리의 잔치로 보이는 것입니다.
한 개인도 신념에 따라 움직이고,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큰 이익을 거절하고, 때로는 신념을 위해 막대한 피해도 감수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존경을 받고 있으며 존경을 받아 마땅합니다. 바라기는 나라를 이끄는 정치지도자이든, 아니면 사회 각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리더들이든 간에 그런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런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정당이나 사회 각 단체들을 보고 싶습니다.
따라서 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믿고 지지할 수 있으며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선회함으로써 배신감을 느끼지 않게 만드는 그런 지도자와 단체를 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피차 다른 신념을 가질 수 있고 따라서 서로 논쟁을 주고 받을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믿었던 사람이나 정당 혹은 단체로부터 발등을 찍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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