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의 칼럼

자기 자리 지키기 운동을 벌이자/ 안희환

안희환2 2006. 2. 11. 01:21

자기 자리 지키기 운동을 벌이자/ 안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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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자리를 지킨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 같으면서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 자리를 벗어나면 상황이 더 좋아질 것 같은 유혹에 직면하면 흔들리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벗어났다가 이익을 챙기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후 그 다음부터는 엉뚱한 이탈을 하지 않으면 된다는 나름대로의 합리성을 가지고 자기를 변호하는 경향이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입니다.


재판을 하는 판사의 자리는 공정함이라는 것을 모르는 판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뇌물이 주어질 때, 단 한번만 눈 감고 뇌물 준 사람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면 평생 먹고 사는 것이 보장된다고 할 때 유혹을 전혀 받지 않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가 내리는 판결이 권세자의 마음에 들면 앞으로의 출세 길이 활짝 열린다고 할 때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흔들릴 수 있고 없고가 아니라 흔들릴지언정 결국은 정도를 택하여 자신의 자리를 지키느냐 아니면 타협하여 자신의 자리를 이탈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많은 이들이 여기에서 걸려 넘어진 채 세월이 지난 후 역사의 죄인이 되고 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니 그런 일은 지금도 볼 수 있는 일입니다.


학생들이 등하교를 하는 학교 주변에 버젓이 서 있는 러브호텔들은 그야말로 엽기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건물을 학교 주변에 짓는 건축업자들은 돈에 눈이 먼 사람들입니다. 건축업자들이 단지 대행만 해주는 것이라면 그렇게 짓도록 요청한 건물주들이 정신 나간 사람들일 것이고요. 자기 자리를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정작 더 비난을 받아야할 사람들은 따로 있습니다. 그런 말도 안되는 건축을 허가해준 공직자들입니다. 그들 역시 자신의 자리를 이탈한 사람들입니다. 권리는 누릴 줄 알면서 정막 자신들의 의무와 책임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믿을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더러운 콩고물에 양심을 팔아먹은 결과가 등하교 길의 러브호텔일 것입니다.


오늘 들은 한 소식은 마음을 답답하게 만듭니다. 다른 경쟁자들이 대입원서 접수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입원서접수 서버를 마비시킨 수험생들 이야기 말입니다. 33명이나 가담하였는데 그중 한명은 수험생의 동생이고 나머지 수험생들은 32명 중 31명이 합격하였다니 대단한 일입니다.


합격을 간절히 열망하는 것이야 누가 뭐라 하지 못할 것입니다만 자신들의 행동으로 인해 가슴앓이를 해야 하는 다른 사람들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수험생들의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정당하게 공부하고, 정당하게 시험보고, 정당하게 응시해야할 자신들의 자리를 당당히 박차고 나간 그들의 행동은 용기일 수도 없고 지혜일 수도 없습니다. 지독한 이기주의일 뿐입니다.


그 아이들은 분명 자신들이 한 행동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 면에서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기성세대의 모습이 오버랩 됩니다. 그들이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 이기적인 어른들의 세계이며, 정직이니 진실이니 최선이니 하는 것을 보고 배울 기회를 제대로 가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아이들의 눈에 비친 어른들이 자신의 자리를 잘 지켰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촌지에 목을 매는 교사나, 직원들을 종처럼 부리는 기업주들, 국민을 섬기기보다 그 위에 군림하는 위정자들, 아이들을 보살피기보다 착취하는 파렴치한 어른들을 포함한 수많은 어른들이 자신의 자리를 벗어난 채 아이들보고만 자기 자리를 지키라고 잔소리하는 상황이 아닌지요?


이런 사고방식과 문화, 삶의 태도 속에서는 경제발전도, 정치제도의 개혁도, 문화사업의 확장도 다 빛 좋은 개살구일 뿐입니다. 기초가 썩어서 흔들리는데 그 위에 화려한 건물을 지은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기초가 무너질 때 한꺼번에 무너져 엄청난 피해를 내고 말 것인데 말입니다.


대단한 위치가 아니고 하는 일이 커다란 일이 아닐지라도 마땅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데 온 힘을 기울이는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도 결국은 모래 알갱이 하나 하나가 모여 이루어진 것이듯, 작고 미미한 한 개인일지라도 자기 자리를 지키기 시작한다면, 그리고 그런 운동이 확산되어 간다면 새로운 대한민국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기 자리 지키기 운동이 시급한 때입니다.


여기에서 한가지만 더 언급하고 싶습니다.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자신의 자리를 잘 지켜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적 합의에 의해 일정 기간 동안 나라의 대표로서 일하는 최고의 공직자입니다. 그 위치는 전제정치의 왕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중대한 결정을 할 경우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여 진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일련의 행동들을 보면 왕처럼 군림하는 듯한 인상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행정수도가 위헌 판결이 되자 행정도시로 밀어붙이는 모습,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반말하는 유시민씨를 기어이 복지부장관에 앉히는 모습, 코드가 조금 다르다고 생각되면 다 가지쳐내고 자신을 맹종하는 사람들만 데리고 일하려는 모습 등은 민주주의 국가의 수반다운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들 말고도 상당히 많은 부분을 그런 식으로 처리하였습니다.


부디 노대통령은 이제부터라도 자신의 자리가 전제군주의 자리가 아닌 온 국민을 염두에 두고 그 여론을 수렴하며 통치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깊이 인색 했으면 합니다. 그렇게 대통령으로부터 공무원들, 경제인들, 종교인들, 지식인들, 서민들,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자기자리를 지켜나갈 때 밝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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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서울법원. 김수근님에게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