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의 칼럼

돈 없으면 학교 다니지 말라고? / 안희환

안희환2 2006. 3. 2. 23:08

돈 없으면 학교 다니지 말라고? / 안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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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는 사람의 설움은 돈 없이 살아본 사람만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돈은 목적이 아닌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돈이 없다고 하는 것이 마치 사람답지 못한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돈 없는 것 때문에 힘들고, 거기에 더해 돈 없는 것으로 인한 소외와 차별로 인해 더 힘들어지는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꼭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겠지요).

 

나 자신도 어린 시절에 차비가 없어서 비오는 날 버스도 타지 못한 채 비를 맞으며 등하교를 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논길로 학교를 다니다가 비가 내리면 논길이 물에 잠겨 삥 돌아 찻길로 학교를 다녔는데 그 거리가 상당했었습니다. 친구들은 버스를 탄 채 지나가고 나는 버스를 타지도 못한 채 버스가 다니는 찻길 끄트머리로 튀기는 물을 맞으며 등하교를 했습니다.


물론 이런 일은 나만 겪은 일이 아닙니다. 우리 동네 아이들 대다수가 겪은 일입니다. 수업료를 못낸 아이들은 수업료를 가져오라고 책망하는 선생님들의 꾸지람을 들어야했고 집에 가서 말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줄 아는 아이들은 그저 땅만 바라보고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내 동생은 돈이 없이 준비물을 가져가지 못했고 그 때문에 수업에 참여하지도 못한 채 한 시간 내내 벌을 서곤 했습니다.


이제 세월이 많이 지났고 나 자신이 학부모가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아직은 초등학생이기에 많은 돈이 들어가지 않겠지만 중학생만 되어도 학비다, 학원비다 하면서 많은 돈이 들어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런 것을 내지 못할 만큼 어려우리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그때도 아마 아이들 학비대기도 힘들 만큼 어려운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내가 그 중에 한명이 된다면 무척 마음이 아플 것입니다.


더구나 돈이 없어 가난한 것만으로도 서글픈데 거기에 더해 차별대우를 받는다면 그 서글픔은 분노로 바뀌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노를 일으킬만한 일이 최근에 발생하였습니다. 경기도 교육위원회가 ‘경기도 학교 입학금 및 수업료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였는데 수업료를 2개월 이상 납부하지 않은 학생들에 대해서 학교장이 출석정지 처분을 할 수 있도록 조례를 만든 것입니다.


더구나 이 일이 경기도 교육위원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울이나 인천 교육청과 교육위도 추진 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기사를 보는 순간 어린 시절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 다시 돈 없는 것 때문에 서러움을 겪을 아이들이 생길 것을 생각하니 마음  속에 분노가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경기도 교육청의 재정 상태가 열악하다는 것과 그것을 보충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또한 분명히 형편이 되는데도 등록금을 내지 않는 학생들의 경우 제재조치를 가해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잣대로 두 달 이상 학비를 못냈다고 출석 정지를 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공평한 교육의 기회(대학도 아닌)를 가난이라는 이유 하나로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양극화로 인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부자는 갈수록 더 큰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갈수록 더 빈궁해지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한 두 사이를 연결하고 사회를 튼튼하게 만드는 중산층이 사라진 지 꽤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적인 교육의 기회조차 경제적인 이유로 박탈을 당한다면 거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빈곤의 악순환을 되풀이한 채 벗어날 어떤 기회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행정적인 절차도 중요하고 재정의 확보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입니다. 바로 우리의 미래인 어린 학생들입니다. 이번에 추진하는 조례의 제정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합니다. 돈 없는 아이들과 그 부모들에게 모멸감을 안겨주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그 누구의 지지도 받지 못할 일이 될 것입니다. 경기도 교육위원회와 경기도 교육위원회의 조례를 따라하려는 다른 교육청 혹은 교육위원회는 생각을 바로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