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하루살이의 여성 / 안희환
주변에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날이 갈수록 깊이 느끼게 됩니다. 종종 사는 것 자체가 생존경쟁이며 고통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삶을 포기하거나 주저앉지 않고 일어서려고 안간힘 쓰는 것을 보면 마음 한 구석에서 뜨끈한 그 무엇이 올라오곤 합니다. 저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이 나라의 초석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영등포구 대림동에 사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 여성은 40대 초반의 여성이고 두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한데 큰 아이는 이제 수능을 앞둔 여학생이고 둘째는 고등학교 1학년의 남학생입니다. 그 여성의 남편은 일종의 무책임한 사람인데 일하지 않고 쓰기만 하는 사람이었으며 그러면서도 바람을 피우다가 결국은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성은 두 아이를 공부시키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아침 일찍 공장에 나가서 밤늦게까지 재봉사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버는 돈은 180만 원가량이었는데 그래도 생활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는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과 몸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조금 무리를 해서 아담한 옷 가게를 열었습니다. 옷을 많이 팔면 수입도 괜찮을 것이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확보할 수 있기에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전 처음 해보는 장사라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국가의 경제가 밑바닥으로 곤두박질하는 상황이었기에 옷은 팔리지 않고 파리만 날렸습니다. 무리를 해서 얻은 대출금금의 이자는 연체와 더불어 늘어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옷가게는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테리어 비용으로도 500만원이나 들어갔었지만 권리금이니 뭐니 아무 것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몸만 가지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여성은 낙심이 되었고 이전처럼 하루 종일 재봉틀에 매달리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조금씩 망가져가는 어머니를 보면서 큰 딸은 가슴앓이를 해야 했고 수능에 전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흘러갔습니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여섯 달이 가면서 삶의 의욕을 잃은 여성은 망가져갔습니다. 안 마시던 술을 입에 대기도 하고 정신없이 여기저기를 쏘다니기도 하였지만 뾰족한 수가 나올 리가 없었습니다. 그럴 수록 딸의 마음엔 찬바람이 불었고 어떻게든 어머니를 돌려보고자 잔소리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여성은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끝장이겠다는 생각에 정신을 가다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미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여기저기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어려운 처지였지만 겨우겨우 돈을 마련해서(말하기에 마음 아픈 내용) 가건물을 임대하였습니다. 가건물이라 식당을 열 수는 없기에 포장마차를 시작하였는데 지난 금요일 개업일(11월 11일)에는 26만원, 토요일에는 10만의 매상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 다음부터는 얼마의 매상을 올렸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 매상을 올린 것의 몇%가 이익이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제라도 잘 자리 잡기를 원하는 마음이 들 뿐입니다. 장사가 잘 된다 해도 그곳에서 버는 것으로는 많은 빚을 갚기가 어렵겠지만 그래도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며 적어도 이제는 딸 아이가 어머니 때문에 가슴앓이 하지는 않을 것이니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딸 아이는 그 동안 공부에 전념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부터 공부에 전념한다 해도 한 달도 남지 않은 수능시험을 어떻게 대비할지 답답하기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이제 다시 열심을 내며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안정을 찾았습니다. 최선을 다할 충분한 이유가 생기기도 한 것이고요.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혹시 2호선 대림역 근처에 내릴 일이 있는 분은 5번 출구로 나온 후 계단을 타고 내려가서 포장마차라고 간판을 붙인 집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음식 솜씨가 좋은 분이니 파전 하나라도 사 주신다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성이 멋지게 일어서도록 마음으로 한 마디씩이라도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그 여성 말고도 이 사회에는 정말 힘겹게 하루하루를 연명해나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모두 존귀하게 대접을 받아야할 이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 많이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이 모두가 한 민족임을 기억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돕고 격려하는 우리나라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돌아보는 것은 곧 애국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더불어 사는 건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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