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사랑이야기

내 병든 친구 위해 기도해주시라 / 안희환

안희환2 2005. 10. 3. 01:28

내 병든 친구 위해 기도해주시라 / 안희환

 

 


 

내일 나는 말레이시아로 간다. 그곳에는 박영진이라고 하는 내 소중한 친구가 살고 있다. 선교사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꾸안탄이라고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그곳은 도심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낙후된 문화 환경이고 그 덕분에 여러 면에서 현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고 한다. 이제 그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한번 그렇게 나가 있으면 정해진 때가 아니면 여간해선 집안 일 때문에 들어올 수가 없다. 이번 10월 달에 처남이 결혼하는데 들어오지도 못한다. 그래서 그 친구는 내가 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말레이시아에 가면 나는 내 친구가 어떻게 현지 사람들을 돕고 있으며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지 보고 싶다. 말레이시아는 회교 국가이기 때문에 기독교 선교사가 자유롭게 선교할 수 없는데다가 함부로 전도했다가는 추방을 당한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서 어떤 태도로,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지 궁금하다. 또 어떤 사람들을 사귀고 좋은 만남을 가꾸어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또 하나 그곳에는 내 큰 아들 효빈이가 있다. 지난 7월 8일에 효빈이를 친구 따라 말레이시아로 보냈는데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아빠가 간다니까 요즘 목이 빠져라 기다린다고 한다.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7살짜리 아이에겐 지금까지 겪은 일들 중 가장 큰 일이었을 텐데 어떤 모습으로 머물고 있는지 확인해보고도 싶다. 그 녀석 얼굴을 볼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렌다. 그게 아빠의 마음인가 보다.


그런데 이처럼 기대와 설레는 마음을 가지는 내게 한 가지 무거운 짐이 있다. 역시 내 소중한 친구인 전용섭이 때문이다. 제주도에 살다가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더니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삼성의료원에서 정밀검사를 했는데 임파선 암으로 판명되었다. 그 친구는 7살 무렵 만나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청년 시기를 함께 보낸 친구이기에 서로를 속속들이 잘 알고 지냈다. 그런 친구가 중병에 걸렸다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 친구 역시 병원에 방문한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었다. 그때 나는 같이 울게 될까봐 주제를 바꿔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었었고. 그런데 화요일(10월 4일)에 수술 날짜가 잡혔다고 한다. 토요일에 여행사에 전화를 걸었는데 공휴일이 끼어있어서 내 출국 날짜를 바꾸기가 어렵다고 한다. 결국 내일 출국해야 하는 나는 친구의 수술 시에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 전화를 걸어 사정이야기를 했다. 괜찮다고 억지로 밝게 말하는 친구가 더 안쓰러웠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건강하게 일생을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왜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이렇게 힘겨운 일을 겪어야 할까?.”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나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어디에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해보곤 한다. 요즘 새벽엔 그 친구를 위해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그 친구에게 소망을 주시고, 새로운 기회를 허락해 주시기를 말이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요즘 나는 나와 연결되어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사이버상의 수많은 지인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종교 유무를 떠나 내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기도해주기를 말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간절한 기도가 쌓이고 쌓여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함께 누워 미래를 이야기하던 옛 시절을 떠올리며 아직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어야 하는데 그 이야기들이 제대로 전개되기도 전에 끝나는 이야기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래 글은 전에 그 친구에 대해 쓴 글이다. 이참에 연결하여 다시 올린다. 그 이야기를 듣지 못한 이들을 위한 작은 배려이다. 아니 솔직히 나를 위한 수고이다. 조금이라도 더 나와 그 친구 사이의 절절함을 이해한다면 그만큼 기도하는 마음도 절실해질 수 있겠다는 발 빠른 계산이 머릿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약다는 소리를 들어도 좋고 너만 친구가 있냐는 말을 들어도 좋다. 내가 이렇게 글을 올리고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단 한 사람이라도 더 한 마디씩이라도 내 친구를 위해 기도해 준다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


다만 그것으로 족하다!!1

 

(3일에 출국해서 14일에 돌아옵니다. 그 동안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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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올린 글


 

친구가 병 드니 마음이 아프구나 / 안희환

                                 

내게 있는 친구들 가운데 용섭이라고 하는 친구가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의 친구인데 결혼 후 제주도에 가서 살았다. 그 아내되는 사람도 잘 아는데 다 같은 교회에 다니던 사람들이고 용섭의 아내는 3년 후배되는 동생이었다. 이젠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되었고 저마다 할 일이 있고 사는 곳도 물 건너라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그 용섭이가 서울에 와 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병원에 있다는 것이다. 제주도에 있는 병원에서 손을 쓸 수가 없어서 서울에 있는 삼성의료원에 왔다는 것이다. 나는 즉시로 확인을 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순간 마음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알아보니 임파선 암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면 더 자세히 알게 될 것이고...


나는 어제 오후에 시간을 내서 차를 몰고 삼성 의료원으로 향했다. 대한민국의 국토를 사랑하는 나는 광명에서 출발(누군가를 태우고 가느라)하여 다양한 곳을 거쳐 삼성 의료원으로 갔다. 가다 보니 서울대공원이 나오고, 방향을 바꾸어 또 가다 보니 성남이 나오는 것을 보고 길의 다양성을 체험하면서... 한 마디로 길치라 길을 못 찾고 엄청 헤맨 것이다. 다행히 어떤 사람이 자기 차를 따라오라고 해서 따라갔더니 삼성의료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친구 용섭이는 삼성 의료원 1854호에 있었다. 나는 들어가서 친구를 보고는 손을 꼭 붙잡았다. 친구는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뭐하러 왔어?”라고 물으면서 충혈되어 가는 그 눈을 보며 나는 억지로 울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내가 울어버리면 병실 분위기가너무 가라앉을까봐...


“왜 이렇게 아프면서 연락도 안했어?”하고 나는 물었다.

“좋지도 않은 일인데 뭐하러 연락해”

“좋은 일이면 연락 안해도 되는데 안 좋은 일이니 연락해야지. 많이 아파?”

“응. 목도 마비 상태라 말하기도 힘들어”

“... ...”


다시 눈물이 나오는 것을 참기 위해 딴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지난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용섭이와 나는 참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1.

용섭이는 판자촌에 살고 있는 내가 다니던 천막교회 목사님의 아들이다. 용섭이는 용선이와 쌍둥이인데 둘 다 나와는 어릴적부터의 친구이다. 둘은 워낙 닮아서 어른들은 그 둘을 잘 구분해 내지 못했다. 그러나 절친한 친구인 나는 둘 사이의 차이점이 너무도 분명하여 구분하기가 수월했다. 뒷모습을 보거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용선이인지 용섭이인지 알 수 있었다.


2. 

나는 종종 용섭이네 집에 가서 잤다. 그 집은 판자촌의 우리집에 비해 궁궐같은 집이었으며 우리집보다 먹을 것이 많았다. 또 자주 잠을 자는데도 구박하지 않고 환영해주는 친구의 집이라서 나는 편안하게 그 집을 들락거릴 수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 집도 좋은 집은 아니었다. 내가 살던 집보다 나아서 좋아보인 것일 뿐.


3. 

쌍둥이는 그다지 사이좋게 지내는 편이 아니었다. 둘 다 승부욕이 있는 친구들이라 서로 으르렁거릴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서로가 내 지지를 구했다. 내가 편들어 주는 쪽이 유리했던 것이다. 덕분에 나는 늘 최고의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내 눈 밖에 나는 친구는 곧 열세에 몰릴 수 밖에 없었기에...


4. 

우리들은 다 한 교회를 다녔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는 활동적인 교회학교 어린이들이었다. 얼마나 활동적이었는지는 지금도 전설처럼 그 교회에서 들려지고 있다. 기도 시간에 돌아다니기, 좁은 교회 마당에서 뻥뻥 공차기, 예배당 안에서 방석 날리기, 주먹질하며 사이좋게 싸우기, 여학생들 골려먹기, 기타 등등.


5.

우리들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제법 오빠, 형 행세를 하면서 후배들을 리드하기 시작했다. 문학의 밤이라는 행사를 치르면서 성극을 준비하고, 중창을 준비하고, 무대 세트를 만들면서 행복했던 날들. 특별히 문화적인 혜택을 받지 못한 우리들에게 우리 손으로 준비하는 공연은 낭만이었고 축복이었다.


6.

그렇게 청소년기에 이르러서는 마냥 떠들던 우리들도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서로의 미래에 대해,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현재 가지고 있는 고민에 대해 털어놓으며 피차 격려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때 나눈 모래알처럼 많은 이야기들은 어떤 노트에라도 다 기록할 수 없을 것이다.


7.

그러던 어느 날 친구는 어머니를 잃었다. 천막교회 목사님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고생을 너무 하신 친구의 어머니에게 암이 생겼고 그 때문에 돌아가시고 만 것이다. 나는 사실 그때 괴로워하던 친구에게 큰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 죽음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였고 그 죽음이 나와 직접적으로 결부된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그러했다.


8.

후에 교인들의 성화로 목사님은 재혼을 하셨는데 친구는 새어머니에게 적응을 하지 못했다. 사이는 틀어졌으며 용섭이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였다. 착한 친구인지라 막 대들지는 않았지만 마음 고생을 많이 한 것이다. 어느 날 용섭이는 내게 말했다. 자기의 꿈은 독립하여 집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마침내 결혼도 하였고 이제 집에서 독립한 용섭이는 제주도로 떠났고 그곳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임파선 암에 걸려 서울로 되돌아온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모습은 살이 빠져 초췌했으며 웃음기가 보이지 않는 그의 얼굴엔 힘겨움이 묻어 있었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소리가 잘 나지 않아 어려워했고 목이 아파서 고생을 해야했다.


병실을 나오기 전 나는 용섭이의 손을 꼭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 간절하게, 정말 간절하게... 기도를 마친 내 눈과 용섭이의 눈에는 이슬이 고여있었다. 다시 오겠다는 말만 겨우 남기고 병실은 나온 나는 침묵 속에 차를 몰고 병원을 떠났다. 아직 젊은 내 사랑하는 친구를 도와달라고 기도하면서...


사랑의 주님. 제 친구와 함께 해 주소서.


  

 


친구여 / 안희환





너는 구부린 어깨를 펴라.

아직은 날이 밝다.

비 내린 후 맑아진 하늘

속을 헤엄치는 별들을

세어보던 지난날의 추억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나


추락하는 긴 시간 동안

그래도 몸이 부서지진 않으니

너나 나나 밑바닥에 닿기 전

마음껏 주위를 둘러보자

아직은 볼 것이 많은 세상

맞잡은 손길이 느껴지지 않나


예전 스러진 나를 일으킨

이젠 굳은살 박힌 너의 손

안에서 경험한 따스함

혈관을 타고 심장에

지금도 자리잡고 있는 정

되돌려줄 기회를 내게 달라


울지 않을 순 없다 해도

얼른 눈물을 훔치고

억지 웃음이라도 웃으며

들판을 달려가보자

마치 지금이 마지막인것첨

숨이 넘어갈 정도로...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부탁을 한다. 지나가듯이라도 내 친구를 위해 기도해주시라. 앞뒤좌우가 막힌 사람에게는 하늘밖에 바라볼 곳이 없다. 텅빈 하늘인듯 해도 하늘은 하늘 자체로 소망이 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일지라도 기도 한 마디는 해줄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