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사랑이야기

아~ 내 친구야 왜 아픈거냐? / 안희환

안희환2 2005. 11. 11. 11:57

아~ 내 친구야 왜 아픈거냐? / 안희환

  

1.

초음파실에서 용섭이가 나오길 기다리는 마음은 그다지 좋지를 않았습니다.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모든 것이 집중되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은 고장난 시계처럼 천천히 갔고 드디어 친구가 나올 때 내 눈은 친구가 타고 있는 휠체어에 고정되었습니다. “너 걸을 수 없는 거야?”라고 차마 물을 수 없는 나는 억지웃음을 웃었습니다.


친구는 원래 튼튼한 다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학창시절 운동장에서 공을 차면 잘 뛰는 쌍둥이 친구들(용섭이는 그 중 동생)은 늘 인기 만점이었습니다. 그 친구들 주변에는 오빠부대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나 홀로 군단이었던 나는 그런 친구들의 모습을 부럽게 생각했었습니다. 나는 그 친구들처럼 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친구는 뛰기는 커녕 걷지도 못합니다.


2.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던 나는 휠체어로 인한 충격에 이어 또 다른 충격을 겪어야 했습니다. 악수를 하려고 팔을 드는 친구의 팔이 휠체어에 걸쳐진 채 쭉 뻗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친구가 민망할까봐 얼른 다가갔고 그 손을 꼭 잡은 채 더 환한 억지웃음을 지었습니다. 내 얼굴 표정이 어땠을까 궁금합니다.


친구는 중학교 때부터 아령이니 바벨이니 하는 것을 가지고 놀았기에 이두박근이니 삼두박근이니 하는 남다른 근육이 있었습니다. 가끔 내 앞에서 잘난 척하기에 언짢아하기도 했었는데 이제 친구의 팔 근육은 팔 하나를 쭉 내밀지 못할 만큼 약해진 것입니다. 여전히 두껍지만 근육은 사라진 채 물렁거리는 친구의 팔이 고기덩이 마냥 매달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3. 

놀라움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것도 아니었는데 지금 친구의 모습은 먼젓번에 보았던 친구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숨을 쉴 때마다 천둥이 울리듯이 큰 소리가 나는 친구의 목에서는 굵지만 작은 목소리가 힘겹게 나왔습니다. 땅에서부터 울려올라오는 유령의 목소리라도 되는 듯이 그렇게 푹 꺼져가는 소리였습니다.


사람들은 친구의 목에서 나오는 엄청난 천둥소리에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았습니다. 심지어는 같은 병실의 다른 환자들이나 그 환자들의 보호자들도 내 친구를 쳐다보곤 했는데 그 눈빛에 호기심과 연민이 서려있었습니다. 그 눈동자들은 이뻐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돌리라고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날마다 그런 눈빛을 견디는 것이 또 하나의 짐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

친구의 아내는 수시로 친구의 등을 두드립니다. 한참을 두드리고 나서야 겨우 목에 끓는 가래 한 모금을 뱉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생겨나는 가래에 친구의 아내는 힘겨운 안마를 끝없이 이어갔습니다. 나는 얼른 다가가 대신 등을 두드려주었습니다. 10분도 안되어 팔이 뻐근해졌습니다. 친구의 아내는 천하장사인가 봅니다.


친구의 아내는 내가 아는 교회 동생이기도 합니다. 용섭이를 무척 좋아해서 집요할 만큼 따라다녔었지요. 그리고 그 수고가 결실을 거두어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 친구 아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깁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한 남자가 그토록 고통스러워하는 광경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가혹한 형벌처럼 여겨집니다.


 

5. 

친구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나를 가르쳐주셨던 목사님이십니다. 나는 친구의 집에서 자주 잠을 잤기 때문에 목사님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고기를 무척 좋아하는 친구가 고기를 먹지 못할 상황이 되자 친구의 아버지는 고기반찬을 끊었다고 합니다. 아들과 함께 아플 수는 없지만 아들이 먹고 싶어도 못 먹는 것을 당신도 포기하신 것입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자식을 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그런 아버지가 되어보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결코 이해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기를 끊은 아버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가슴 속에서는 찌르르 전기가 왔는데 그 사이사이 작은 통증이 느껴졌었습니다. 친구는 아무리 봐도 불효자식입니다.


6. 

병원에서 함께 살 수 없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습니다. 심심하냐고 물었을 때 친구는 쓸쓸한 미소를 살짝 보여주었습니다. 미소가 그토록 찬란한 슬픔을 머금을 수 있음을 본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려 친구의 아내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친구를 계속 쳐다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친구 아내의 미소 역시 그림자를 담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병실 침상에서, 친구의 아내는 친구 곁을 떠나 있을 수 없기에 병실 입구에서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다시 만날 수 있겠지만 마치 영원한 이별을 하는 듯이 무거운 마음에 체중에 꽤 많은 늘은 것 같았습니다. 바닥이 내 발을 붙잡는 듯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엘리베이터는 사색에 잠겨 16층에서 1층으로 천천히 내려왔습니다.


7.

자동차는 삼성의료원을 나와 양재 IC를 지나고, 과천을 지나 안양으로, 안양에서 시흥으로 열심히 달리고 있었습니다. 자동차를 달리게 한 것은 내 발이 아니라 자동차 스스로의 의지였던 것 같습니다. 백지장처럼 텅 빈 머릿속에서 누가 운전을 제대로 하도록 명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친구 이야기를 쓰는 내 손가락은 자판 위에서 흐느적거립니다. 술이라도 몇 잔 마신 손가락 같습니다. 무심한 노트북은 도와주지도 않은 채 오타만 화면에 뛰웁니다. 겨우 겨우 교정한 글이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내게 무엇을 썼느냐고 묻는 것만 같은데 나는 침묵으로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바깥 바람이 차갑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