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기쁘게 하는 자 로마서15:1-3
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
3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테레사 수녀를 가까이 하는 사람마다 그녀의 인격에 순결한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특별히 그녀가 질투 없이 살아가는 그 삶의 모습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커다란 도전이 된다고 한다.
어느 날 테레사가 한 어린이의 고름을 만지면서 치료를 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그때 테레사와 함께 살고 있었던 한 분이 그녀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수녀님. 당신은 잘 사는 사람. 평안하게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높은 자리에서 삶을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을 바라볼 때에 시기심이 안 생깁니까? 이런 삶으로 만족하십니까?”
이 질문을 받았을 때 테레사는 이런 유명한 대답을 했다.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수 있는 시간이 없으니까요.”
허리를 굽힌 테레사의 눈에는 누가 보였을까? 바로 연약한 사람들, 소위 소자들이다. 테레사는 자신이 아닌 그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드렸으며 그들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사는데 열중한 나머지 위를 올려다본 채 시기하거나 질투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여러분에게 묻는다. 여러분의 삶의 초점은 어디에 있는가? 자신인가? 아니면 주님인가? 자아인가? 아니면 이웃인가? 여러분은 도대체 누구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살아가는가?
“이웃을 기쁘게 하는 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눌 때 우리의 삶의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1. 강한 자와 약한 자
오늘의 본문으로 돌아오자.
1)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있는 세상
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 대립적인 표현이 나온다. 하나는 강한 자라는 표현이고 다른 하나는 약한 자라는 표현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는 강한 자와 약한 자가 공존하고 있다.
여러분이여. 여러분이 보시기에 강한 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세상 속에서 어떤 자가 강한 자인가?
일반적으로 볼 때 돈이 많은 자는 강한 자이다.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편안하게 살아간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자체가 하나의 힘인 것이다. 사람들은 해주는 것 없음에도 돈이 많은 사람 앞에서 굽신거린다. 돈이 많으면 사람을 부릴 수가 있다. 돈을 가질수록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돈에 돈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것이다.
세상에서 어떤 자가 강한 자인가? 권력을 가진 사람이 강한 자이다.
세상에서 어떤 자가 강한 자인가? 지식을 가진 자가 강한 자이다. 우리들은 은연중에 박식한 사람 앞에서는 몸을 사리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 정말 똑똑한 사람이라고 할 때 왠지 그 앞에 가면 힘을 잃는 것이다.
세상에서 어떤 자가 강한 자인가? 돈 많은 자, 권력 있는 자, 많은 지식을 가진 자 외에도 일단 남들보다 나은 조건을 가진 사람은 다 강한 자일 수 있을 것이다.
힘이 세도 힘이 없는 이에게는 강한 자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무명의 사람에게 유명인은 강한 자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어린 자녀들에게 부모들이 강한 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의 일반적인 관계
그러면 세상 속에서 강한 자와 약한 자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서로 잘 조화를 이루며 돕고 살아갈까? 아니면 그 반대의 모습을 보이며 살아갈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내가 보기에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서로 돕고 조화 속에 살아가기 보다는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다는 아니겠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다음과 같다.
(1)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이용한다.
첫째로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이용한다. 자신이 더 강해지기 위해 약한 자를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다.
(2)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무시한다.
세상 속에서 강한 자와 약한 자의 일반적인 관계는 어떠한가?
둘째로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무시한다.
야고보서에 보면 재미나는 표현이 나온다.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 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찌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괄시하였도다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약 2장)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참으로 적나라한 표현이다. 그리고 실제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그러면서 야고보 사도는 말한다. 그것이 죄라고.
돈 많은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 무시한다. 아니라고 우겨봐야 현실이다.
권세자들은 힘없는 민초들을 무시한다. 그들 눈에 백성들은 불의를 쉽게 잊어버리는 까마귀 머리의 소유자인 것 같다.
이쁜 여자들은 그것도 힘이라고 못생긴 사람 앞에서 시위한다. 거울 보며 자아도취에 빠지고 못생긴 사람을 조소한다. 겉으로 하면 욕먹으니까 속으로.
(3) 강한 자는 약한 자를 괴롭힌다.
세상 속에서 강한 자와 약한 자의 일반적인 관계는 어떠한가?
셋째로 강한 자는 약한 자를 괴롭힌다. 이것은 이용하거나 무시하는 차원을 더욱 넘어서는 죄악일 것이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불법체류자들이다. 즉 후진국에서 돈을 벌려고 한국에 왔는데, 합법적으로 들어올 수가 없으니까 불법으로 들어와 숨어사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관공서를 꺼린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신고하지 못한다. 신고하러 갔다가는 자신들이 먼저 추방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아는 한국인들이 그들을 실컷 부려먹고 돈을 주지 않는 것이다. 무척이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힘에 지나도록 일을 시키는 것이다. 그것도 갖은 구박과 천대를 주면서 말이다. 그래서 돈을 벌면 어쩌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채 돈을 버는 사람들이다. 약자의 입장인 그들을 더 따스하게 대해주면 참으로 아름다울텐데 오히려 약점을 손에 쥐고 괴롭게 하니 나중에 그 죄 값을 받을 것이다.
강한 자의 약한 자 괴롭힘 현상은 어린 학생들의 학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소위 이지매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말로 왕따말이다.
2. 강한 자에게 주신 성경의 가르침
그런데 여러분이여. 이렇게 답답하고 안쓰러운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희망이 되며 빛이 되는 말씀이 있다.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이다.
1)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
1-2절을 같이 읽어보자.
"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놀랍지 않은가? 세상의 가치관과 전혀 다른 가치관을 보여주지 않는가? 정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삶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지 않는가? 그러기에 성도는 성경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다른 교인들이나 세상을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그러면 강한 자와 약한 자의 관계에 대해서 어떠해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가?
첫째로 강한 자는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약한 자가 약점이 많은 것은 당연한 것이고 문제는 강한 자가 그 약점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느냐이다.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하는가?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대신 보충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한다.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비웃음이 없다.
여기에는 이용하려는 사악함이 없다.
여기에는 정죄하려는 바리새적인 태도가 자리잡을 수 없다.
여기에는 괴롭히려는 사악함이 머물 수 없다.
기억하라. 우리가 할 것은 약한 자의 약점을 들추거나 공격하거나 정죄하는 일이 아니라 그 약점을 우리가 담당하는 일이다. 우리가 대신 그 약점을 짊어지고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장). 여러분에게 묻는다. 여러분은 서로 돌아보시는가? 여러분은 서로의 약점을 담당하시는가?
2)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라
강한 자와 약한 자의 관계에 대해서 어떠해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가?
1-2절을 다시 읽자. “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둘째로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쉽게 말해서 이기주의의 극복이다.
여러분이여. 사람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다. 자기 중심적이다. 자기를 기쁘게 하는 일에 목숨을 거는 존재가 사람인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쉽게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은 왜 싸우는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이다.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기에 상대방을 향해 원망도 하고 불평도 하고 싸움도 거는 것이다. 나한테 어떻게 해달라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해달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본성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을 뒤집는다.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특별히 강한 자는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 약한 자를 이용하고, 무시하고, 괴롭히지만 성도된 우리는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다 자신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왜 돈을 버는가? 자신을 위해서이다. 왜 공부하는가? 자신을 위해서이다. 왜 출세하기를 원하는가? 자신을 위해서이다. 왜 영향력이 생기기를 바라는가? 자신을 위해서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게 아니다. 다 하나님을 위해서 그 모든 것을 하든지 원하는지 하는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 14장)
물론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금씩이라도 우리는 변화된다.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에 모든 초점을 맞추던 사람이 더 이상 그것을 삶의 중심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에 연연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내 자신에게서도 조금씩 발견한다.
3) 이웃을 기쁘게 하라
강한 자와 약한 자의 관계에 대해서 어떠해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가?
1-2절을 다시 읽자. “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셋째로 이웃을 기쁘게 해야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 결과로서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상대방을 향해서는 선을 행하는 것이 되고 전체적으로 보아서는 덕이 되는 삶이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자. 우리는 자기를 기쁘게 하는 삶에서 벗어나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이 가능하려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내 입장에서 생각하면 결국은 상대방을 기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소위 이해라고 하는 측면이 전제되지 않으면 상대방을 기쁘게 할 수 없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생각하는 것이 이해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상대방을 기쁘게 하고 싶은 생각 자체가 없어지지 않는가? “난 저 사람이 도대체가 이해가 안돼” 하면 그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삶은 물건너간 것이다.
결론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
이웃을 기쁘게 하는 자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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