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과 위로 고후1:3-11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환난을 많이 겪었던 사람 중에 도스트예프스키라는 러시아의 대문호가 있다.
도스트예프스키는 1821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도스트예프스키의 부친은 전직 육군 군의관으로서 빈민 병원에서 일했고 가족들은 병원 건물에 부속된 더러운 사택에서 살아야만 했다. 난폭한데다 알콜중독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돈을 조금 벌자 툴라라는 지방에 작은 농토를 구입했지만 농노(農奴)들을 너무 심하게 다루는 것으로 소문나 있었다.
도스트예프스키가 열여섯 살 나던 해 그의 부친은 결국 그가 보는 앞에서 농노들의 십장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이 무서운 충격으로 인해 생긴 간질병은 일생동안 도스트예프스키를 괴롭혔다.
스물여덟 살 나던 해 도스트예프스키는 잘못된 정치단체의 일원으로 체포되어 반역죄의 판결을 받고 슬픈 사형수로 전락한다. 이 사건은 소위 '페트라셰프스키' 사건이라고 불리우는 것으로 법정에서 도스트예프스키는 총살형을 언도받게 된다. 참 환난으로 꽉찬 인생이 아닐 수 없다.
유형열차는 그와 많은 사형수들을 싣고 시베리아의 옴츠크로 달려가고 있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열차가 잠시 토볼스크라는 이름의 시골역에 멈춰섰을 때 사형수들을 위로하기 위해 장교 부인들이 그들에게 음료수를 나누어 주었다. 도스트예프스키에게도 한 장교의 아내가 더운 차를 내밀었다. 그러나 그는 눈앞에 다가온 죽음의 공포 때문에 그것을 거절했다. 그러자 장교의 아내는 가슴 속에서 작은 책 한권을 꺼내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 책은 작은 신약성경이었다.
움츠크 감옥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그는 그 신약성경을 읽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위로를 얻었다. 그는 죽음 앞에서 형 미하일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형, 난 다시 태어나 최고에 이를 것입니다."
도스트예프스키는 그의 신념대로 결국 총살형을 받기 2분 전에 황제의 사면령을 받아 기적적으로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는 인생 최대의 고통인 사형수의 고통을 이기고 세계 최대의 작가가 되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도스트예프스키는 참으로 환난을 많이 겪은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의 능력으로 위대한 러시아의 대문호가 된 것이다.
여러분. 오늘 설교의 제목이 무엇인가? “환난과 위로”이다. 이 말씀이 오늘 환난을 만난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씀이 되기를 원한다. 또 모든 성도들에게 신앙의 확신을 주는 능력의 말씀이 되기를 원한다.
1. 환난 중에 위로하시는 하나님
오늘의 본문으로 돌아오자.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1)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
여러분이여. 오늘 본문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무엇인가? 한번 찾아보시기 바란다.
어떤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가? 위로라는 단어이다. 그리고 이 위로라는 단어는 바로 하나님에게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에 대한 묘사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자비의 아버지
위로의 하나님
사실 다 위로와 연결이 되고 있지 않은가?.
예수 그리스도는 위로의 주님이심.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시니 위로하심
위로의 하나님이시니 당연히 위로하심
탕자의 비유에서 돌아온 탕자를 위로하시는 아버지
사실 성경 속에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가득 담겨져 있다.
말씀으로 위로를 선언하시는 하나님
“1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찌니라”(사 40장)
“3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사 51장)
하나님의 위로가 있기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음
2) 언제 우리를 위로하시는가?
이처럼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면 여기에서 한 가지를 여러분에게 묻는다. 하나님이 위로하시는데 그러면 하나님이 언제 위로하시는가? 위로는 아무 때나 하는 것인가?
아니다. 위로란 것은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니다.
멀쩡할 때. 상황이 좋을 때. 기분이 좋을 때 위로해 보라. 그때는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는다.
위로란 좋은 일이 있는 자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위로는 환난 당하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다.
실제로 아까 언급한 이사야의 말씀은 환난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순종한 덕분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다. 그 징계는 참으로 혹독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랑인 성전은 산산이 부서진 채 그 귀한 보물들을 모두 약탈당했으며, 나라는 곳곳마다 황폐해졌다. 어디 그 뿐인가? 가난하고 천대받는 백성만 고국에 남겨진 채 나머지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갔으며 그곳에서 70년간 고향을 그리며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바로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위로의 말씀을 들려주고 계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모든 고통은 이제 그 종지부를 찍게 되는 것이다.
3) 여러분은 위로를 받고 사시는가?
혹시 환난 중에 예신 여러분. 여러분은 위로를 받고 계시는가?
난 지금 어렵고 힘들어 죽겠는데 위로가 없어요 하는 분들이 혹시 있는가?
그런 분들은 자신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란다.
위로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자신이 피하며 살지는 않았는가 하고 말이다. 진정한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오기 보다는 세상의 다른 것들을 쫓아다니느라고 세월을 낭비하지 않았는가 하고 말이다.
이 세상 누구든 진정한 위로를 원한다면 예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예수님만이 진정한 위로를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위로란 그 속에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그 안에 마음을 평안케 하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진심이 담겨있지 않고 입바른 소리만 할 때 그것은 진정한 위로일 수 없지 않은가? 위로한다고 하는데 마음의 괴로움을 전혀 진정시키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주님의 위로는 진심이며 또한 능력이 있어 그 마음 가운데 평강이 임하게 한다. 그런 주님 앞에 늘 나와서 환난 가운데서 위로를 맛보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한다.
2. 환난 중에 위로하시는 목적은?
1) 다른 환난 중에 있는 자를 위로
그러면 하나님께서 환난을 주시고 환난 가운데서 위로하시는 목적은 무엇일까? 차라리 환난을 안주시고 위로도 없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예 환난을 안 주시면 좋을텐데-그러나 그것은 우리 생각임.
환난이 없다면 그만큼 얻을 수 있는 것도 적고 성장할 기회도 많이 잃어버리게 된다. 환난이란 그만큼 가치있고 꼭 필요한 것이다.
특별히 환난과 환난 중에 받는 위로는 우리의 폭을 넓혀준다. 4절을 보자.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우리가 환난을 겪고 환난 중에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함으로써 우리는 이제 다른 환난 중에 있는 사람을 위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떤 분이 대학졸업을 앞둔 아들을 익사사고로 잃었다. 군 전역 후 복학했던 아들이었다. 이분이 후에 어떻게 말했는지 아는가? 큰 아픔을 당하고 나니 고통을 당한 사람을 진실로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2) 고난을 견디게 함-이겨나게게 함.
하나님께서 환난 가운데서 위로하시는 목적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을 위로하게 하시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드렸다.
또 하나의 목적은 고난을 견디어 나가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에게 환난만 주시고 위로를 끊어버리신다면 우리는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는 것이다.
6절을 보자.
“6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3) 따라서 고난 당하는 중에도 소망을 가질 수 있음
따라서 우리는 고난 당하는 중에도 소망을 가질 수 있음
7절을 보자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왜 환난 중에도 소망을 가질 수 있는가? 하나님의 위로가 당연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특별히 하나님이 우리의 환난에, 우리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실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아시기 때문이다.
어떤 국민학생이 주일 학교 선생님들의 권유에 의해서 주일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그 소년은 아버지가 교회를 다니지 못하게 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만 그 학생은 교회에 다녀오다가 건널목에서 기차에 치어죽고 말았다. 그 아버지는 그 소식을 듣자 너무너무 화가 나서 예배당에 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이 사람 저 사람을 때렸다. 그리고는 목사님을 나오라고 해서 목사님이 나오시자 내 아들이 죽을 때 하나님이 어디 있었느냐고 따졌다. 목사님은 잠자코 그의 말을 듣고 있더니 그가 어느 정도 진정하자 말했다. "하나님은 자기의 독생자가 죽을 때 거기 계셨습니다."
아들이 기차에 치어죽을 때 그 아버지는 아들 옆에 있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다. 만약 아버지가 보고 있는 눈앞에서 아들이 기차에 치어 죽었다면 그 고통은 몇 배로 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당신이 지은 피조물들에게 죽임을 당하셨다. 하나님께도 그런 아픔과 상처가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아픔과 상처, 우리가 당하는 환난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시고 그 능력으로 우리를 위로하시는 것이다.
여러분 부디 기억하시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신다. 그러기에 우리를 위로하신다. 그러기에 우리는 위로의 하나님을 믿고 그를 의지하여 소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3. 환난으로 우리를 가르치시고자 하는 것은?
1) 우연이란 것은 없다는 대전제
그러면 하나님이 환난을 통해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가르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 전에 우리는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겐 우연이란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비록 그것이 도대체가 우리의 머리로 이해가 안될지라도 거기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담겨있다고 하는 점이다.
참새 한 마리도 우연히 떨어지지 않는다.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 10장)
아합의 죽음은 우연?
"29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니라 30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군중으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 왕이 변장하고 군중으로 들어가니라 31 아람 왕이 그 병거의 장관 삼십 이인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나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 한지라 32 병거의 장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이르되 이가 필연 이스라엘 왕이라 하고 돌이켜 저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지르는지라 33 병거의 장관들이 저가 이스라엘 왕이 아님을 보고 쫓기를 그치고 돌이켰더라 34 한 사람이 우연히 활을 당기어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이켜 나로 군중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35 이 날에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왕이 병거 가운데 붙들려 서서 아람 사람을 막다가 저녁에 이르러 죽었는데 상처의 피가 흘러 병거 바닥에 고였더라 36 해가 질 즈음에 군중에서 외치는 소리 있어 가로되 각기 성읍으로, 각기 본향으로 하더라 37 왕이 이미 죽으매 그 시체를 메어 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 장사하니라"(왕상 22장)
우연인가? 아님.
"38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 씻으매 개들이 그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의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왕상 22장)
고레스의 칙령은 우연히 예레미야의 예언과 맞아떨어졌나? 70년만에 고국에 돌라오리라는 예언
"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4 무릇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우거하였든지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찌니라 하였더라"(스 1장)
우연인가? 아님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스 1장)
2) 환난이란 것도 우연이 아니다.
다 우연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환난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요셉의 환난이 우연? 아님.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찌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창 45장)
요나가 풍랑을 만난 것은 우연? 아님
"4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5 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6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7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 8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고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9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10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11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욘 1장)
3) 그러면 환난을 주심으로 궁극적으로 가르치시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이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진실로 의지할 분이 하나님 한분이심을 분명히 깨달으라는 것이다.
8-9절을 읽어보자.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바울은 참 많은 환난을 겪었다.
고후11장에 다시 언급이 되고 있다.
“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25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장)
바울이 당한 환난은 참으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한 환난이었다.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이었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었다. 단 한줄기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완전한 흑암이었다. 도대체가 사람살이가 이럴 수 잇는가 싶을 정도의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러니 살 소망이 끊어지지 않겠는가? 절망감이 들지 않겠는가? 차리리 그 자자리에서 모든 것을 끝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 하나님의 사람 바울은 깨달앗다. “아 여기에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이 있구나. 아 하나님께서 나로 하나님 한분 외에 아무 것도 의지하지 못하게 하시는구나”
8-10절을 다시 보자.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환난 중에 있으신가? 부디 하나님 한분만 의지하는 법을 배우시기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보화를 다 주어도 살 수 없는 최고의 보화이다.
4. 환난 중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1) 하나님에 대한 신뢰-믿음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중국의 유명한 부흥사요, 저술가인 워치만 리라는 분이 있다. 그의 책이 우리 나라에도 많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는 20대에 중한 병을 얻어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그가 죽음을 앞에 놓고 간절한 마음으로 며칠 동안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다음과 같은 환상을 보았다. 환상 중에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난데없이 큰 바위에 부딪혔다.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배는 앞으로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어 답답해 하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하나님께서는 그 바위를 치워주랴. 물이 불어나서 물 위로 배가 지나가게 하랴 물으셨다. 워치만 리는 바위는 그대로 두고 물이 불어나 그 위로 지나가게 해달라고 해서 그렇게 지나갔다. 이 환상을 본 다음에 그는 특별한 은혜를 받아서 평생토록 귀한 일을 하는 주의 종이 되었다.
여러분 앞에 바위가 있는가? 하나님께서 내 앞에 있는 바위. 즉 원수나 시험 등을 치워달라고만 부르짖고 있지는 않는가?.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내게 주신 그 상태에서 초연하게 넘어갈 수 있다. 넘치는 은혜가 있기만 하면 시험을 이기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와같은 은혜를 주신다. 믿으시기 바란다.
'빙점'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작가인 미우라 아야꼬는 13년 이라는 긴 세월을 폐결핵과 척추카리에스로 고생을 했다. 그는 그 기간 동안은 양친과 형제들에게 큰 부담을 끼친 쓰라린 나날이었다고 한다. 13년간을 사람들에게 신세만 지면서 살아왔다는 생각으로 항상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주위의 고생도 고생이지만, 미우라 자신의 고통은 얼마나 컸겠는가? 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그런 미약한 생명까지도 어떠한 형태로든 사람들을 위해 사용해 주셨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병으로 고생한 것이 결코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라, 건강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축복받은 생명이라고 여기며 감사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큰 고난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축복으로 간주하는 사람에게는 이미 그것은 고난일 수가 없었다.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장)
2)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함-기도
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때로 하나님은 기적적으로 역사하심
아프리카의 그리스도인 청년이 고열로 헛소리를 해 대고 있었다. 고통이 그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좀처럼 열이 내려가지 않았다. 유럽에서 온 선교사마저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대로 다 해보았다. 선교사가 한 가지 아는 것은 환자에게 얼음 주머니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프리카 정글 속에서 얻지 못할 물건을 탐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환자의 어머니는 하나님께서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다는 선교사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께 얼음을 달라고 함께 기도하자고 했다. "얼음을? 이렇게 뜨거운 곳에 하나님이 얼음을 주실 수가 있겠소?"라고 선교사는 난처한듯 말했다. "그래도 구해 봅시다"하고 그 어머니는 간청했다.그래서 두 사람은 환자의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얼음을 주시기를 기도했다. "주님, 내 아들을 치료하는데 얼음이 있어야 한다면 얼음을 보내 주소서. 당신께서는 하실 수 있음을 믿나이다." 기도가 끝나자마자 뇌성이 울리고 큰 공만한 얼음들이 오두막 지붕 위로 쏟아졌다. 우박이었다. 마침내 청년은 회복되었다. "하나님의 뜻 아닌 일을 제외하고는 응납되지 않는 기도는 없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는 개인적인 것만이 아니다.
세계 2차 대전 때에 불란서가 독일 나찌스 군대에게 패해버리고 영국에서 도와주려고 건나갔던 30만 대군이 자기들만으로 불가능해서 영국으로 건너오기 위해 해협으로 도망갈 때에 히틀러는 베를린에서 "도망하는 영국 군인들을 아주 전멸시켜 버리라고" 명령을 내리고는 태연히 있었다. 그때에 영국 왕 조오지 6세가 온 영국에 "어떻게 하든지 영국 군대를 건져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기도의 날을 선포하고 전 국민이 그날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때 이상한 기적이 일어났다. 그날 독일 편에는 큰 폭풍우가 일어서 비행기 한 대도 뜰 수가 없었고 너무 비가 많이 와서 탱크 한 대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영국 편에는 도버 해협이 어떻게 잔잔하고 고요한 지 거울같이 맑아서 수많은 배가 29만의 영국 군대를 무사히 영국까지 옮기게 되었다. 그 일 후에 영국 군대를 비롯해서 온 영국 국민이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된 것이다.
이 정도의 하나님이시라면 내 개인의 환난을 어쩌지 못할 하나님은 아니지 않는가? 하나님이 반드시 나를 도우신다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란다. 그리고 기도하시기 바란다.
3) 믿음과 기도의 기둥을 가지고 있는가?
두가지는 같은 이야기이다.
귀신 쫓아내는 이야기에서 “왜 우리는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하는 질문에
마태복음
“14 저희가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가로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나으니라 19 이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장)
마가복음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저가 땅에 엎드러져 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 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가로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25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막 9장)
결론
환난과 위로.
예수 믿는 것. 큰 복임.
보장된 승리. 하나님 바라보고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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