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특별설교

징계에는 이유가 있다 에스겔 22:23-29

안희환2 2012. 2. 15. 14:22

징계에는 이유가 있다 에스겔 22:23-29

 

23.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4. 인자야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정결함을 얻지 못한 땅이요 진노의 날에 비를 얻지 못한 땅이로다 하라

25. 그 가운데에서 선지자들의 반역함이 우는 사자가 음식물을 움킴 같았도다 그들이 사람의 영혼을 삼켰으며 재산과 보물을 탈취하며 과부를 그 가운데에 많게 하였으며

26.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이 구별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눈을 가리어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27. 그 가운데에 그 고관들은 음식물을 삼키는 이리 같아서 불의한 이익을 얻으려고 피를 흘려 영혼을 멸하거늘

28.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하였으며

29. 이 땅 백성은 포악하고 강탈을 일삼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고 나그네를 부당하게 학대하였으므로

 

 

1. 하나님께 징계를 받은 땅

 

1) 이스라엘 땅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의 선언

 

오늘 본문에 보면 처음 절에 이스라엘 땅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의 선언이 나온다. “23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4 인자야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정결함을 얻지 못한 땅이요 진노의 날에 비를 얻지 못한 땅이로다 하라”.

 

그런데 왜 이것이 징계의 선언인가? 정결함을 받지 못한 땅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징계라고 하는 것인가?

 

정결함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부정하다는 뜻이고 부정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여호수아의 요단강 도하-백성을 성결케 함. 그래서 이길 수 있는 것임.

 

그런데 부정한 상태로 있고 하나님이 그것을 정결케 하지 않으시니 이제 하나님의 도우심은 다 받은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이 끊어지는 것보다 더 큰 징계는 없는 것이다.

 

그 다음 구절도 살펴보자. 진노의 날에 비를 얻지 못한 땅이라는 말이 왜 징계를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는 상징적으로 여러 가지 자연적인 이변이 나타나곤 하였다. 예를 들면 홍수, 메뚜기떼, 우박, 들짐승 등이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기근이다. 다윗왕 때, 그리고 아합왕 때의 기근은 하나님의 징계였다.

그처럼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날에 여전히 바를 얻지 못한 땅이니 그 땅은 버려진 땅인 셈이다. 하나님에게 버려진 땅 그것은 참으로 비극이 아닌가?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처럼 처참한 선언을 듣고 있는 것이다.

 

2) 이것은 즉흥적인 선언이 아님

 

그리고 하나님의 이러한 선언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었다. 감정이 갑자기 격해져서 홧김에 징계를 내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당시 모세를 통하여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만 거역하고 불순종하게 될 때 임할 고통에 대하여 경고하셨다.

 

그런데 끝까지 고집부리고 완고하게 하나님을 거역하면서 죄 속에 빠져있으니 하나님이 마침내 당신의 경고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징계를 내리신 것이다.

 

 

2. 왜 하나님께 징계를 받았는가?

 

그러면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왜 징계를 받게 되었는가?

 

그 이유가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음.

 

그 각각의 대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첫째는 선지자, 둘째는 제사장, 셋째는 방백, 넷째는 백성이다.

 

조금 순서를 바꾸어서 살펴보자.

 

1) 제사장

 

첫째로 제사장들이다.

이들의 죄는 무엇인가?

 

(1) 율법을 범함.

 

첫째로 이들은 율법을 범하였다. 율법을 가르치는 자인데 그런 그들이 율법을 범하는 것이다. 가르치는 자가 범하는 것 만큼 비참한 전락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위치 때문에 계속 가르치는 죄악을 범하게 되니 갈수록 태산이다. 그런 삶을 가지고 가르치니 그 가르침에 권위가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다.

 

(2) 성물을 더럽힘.

 

둘째로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성물을 더렵혔다.

 

성물이 무엇인가?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다. 그러기에 거룩한 것이다. 재질이 애초에 거룩한 것들로 만들어져서 거룩한 것이 아니고 그것이 하나님께 바쳐진 것 때문에 거룩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처럼 하나님께 바쳐진 것, 즉 성물은 어느 누구도 함부로 대하거나 사용하거나 가져서는 안된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하나님의 성물을 더럽히고 있으니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죄인가?

 

(3) 거룩함과 속된 것은 분변치 않음.

 

셋째로 제사장들은 속된 것과 거룩한 것을 분변치 않았다.

 

성결해야할 제사장들이 마구잡이로 살아간 것이다.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표지를 지니고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할 제사장들이 세속의 더러운 찌끼에 자신을 방임한 것이다. 백성들을 거룩하게 해주어야 할 제사장들이 오히려 자신들을 더럽히며 살아간 것이다.

 

(4) 안식일을 보지 않음.

 

셋째로 제사장들은 안식일을 보지 않았다.

 

하나님의 제사장이 하나님의 날을 함부로 다룬 것이다. 안식일 성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곳곳에 걸쳐 안식을 지킬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였다. 이날에는 아무 일도 해서는 안되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집안에 유하는 객이나, 품꾼이나, 심지어는 짐승조차도 일을 시켜서는 안되었다. 그런데 제사장이 안식을 보지 않으니 갈 데까지 간 것이다. 타락의 극으로 떨어진 것이다.

 

2) 방백

 

둘째로 방백들의 죄악이다. 오늘 본문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27 그 가운데 그 방백들은 식물을 삼키는 이리 같아서 불의의 이를 취하려고 피를 흘려 영혼을 멸하거늘

 

여러분 방백이 무엇인지 아시는가? 방백은 세력가이다. 권세를 가진 자들이다.

 

이들은 힘이 있기 때문에 그 힘을 가지고 백성들을 도와줄 수도 있고 압제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힘 있는 방백들이 힘없는 백성들을 위해 공의 행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방백들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백성들의 피를 흘렸다.

 

왜 피를 흘렸는가? 불의의 이를 취하기 위해서 백성들의 피를 흘렸다.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백성들을 괴롭히고 압제했던 것이다.

 

3) 선지자

 

셋째로 선지자들이다.

 

“25 그 가운데서 선지자들의 배역함이 우는 사자가 식물을 움킴 같았도다 그들이 사람의 영혼을 삼켰으며 전재와 보물을 탈취하며 과부로 그 가운데 많게 하였으며

 

“28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였으며

 

오늘 본문에 선지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첫째로 이들은 사람의 영혼을 삼켰다. 영혼을 살려야 할 자들이 죽이는 역할을 하니 삼킨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 심판을 향해 달음질하는 사람들을 돌이켜야 할 선지자들이 그들을 내버려 둔 것이다.

 

둘째로 이들은 전재와 보물을 탈취하며 과부로 그 가운데 많게 하였다. 이들도 물질에 눈이 먼 자들인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물질에 눈이 먼 선지자는 이미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그는 물질의 종이다.

 

셋째로 선지자들은 방백들을 위해 회를 칠했다. 그들의 선전 도구가 된 것이다. 불의의 이를 취하려고 백성들의 피를 흘릴 방백들을 냉혹하게 꾸짖어야 할 그 상황에서 방백들의 죄악을 합리화시키는 죄악을 저지른 것이 바로 선지자들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공의의 마지막 보루가 송두리째 무너져 버린 것이다.

 

넷째로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백성들을 속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상황과 이익에 따라 얼마든지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일 수 있는 자들이었다.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 간이 부을 대로 부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상실한 자들이다.

 

오늘날 성경이 아닌 자기 주관으로 설교하는 목사도 똑같다. 성경을 인용하는 것조차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는 거짓설교자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그리고 그들을 따르며 환호하는 무지한 백성들은 얼마나 많은가? 오늘 본문의 상황이나 지금의 상황이나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처럼 어리석게 속아도 하나님은 속지 않으신다. 모든 것을 꿰뚫어보시는 것이다.

 

4) 백성

 

넷째로 백성들이다.

 

오늘 본문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29 이 땅 백성은 강포하며 늑탈하여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였으며 우거한 자를 불법하게 학대하였으므로

 

(1) 강포

 

백성들은 어떤 죄를 지었는가? 첫째로 강포했다. 좀더 힘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포악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형편이 좀 나은 거지가 형편이 좀 못한 거지를 함부로 대하는 꼴이다.

 

(2) 늑탈

 

둘째로 연약한 사람들의 것을 강제로 빼앗았다. 칼만 안들었을 뿐이지 완전히 강도인 셈이다. 하나님을 떠나면 이렇게 사악한 모습이 사방으로 번져가게 되는 모양이다.

 

(3) 압제

 

셋째로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했다. 위에서 누르고 힘들게 한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향하여 관심을 가지고 계셨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잘 보살펴 주라고 수차례에 걸쳐 당부하셨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을 압제하였으니 그것은 참으로 큰 죄악이었다.

 

(4) 학대

 

넷째로 백성들은 우거한 자를 불법으로 학대하였다. 우거한 자는 나그네이다. 자신의 나라를 떠나서 이스라엘로 흘러들어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동족에게서 떨어져 있다. 어디 의지할 데도 하소연 할 데도 없는 가련한 이들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그네를 잘 대해 주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신이 애굽에서 나그네로 얼마나 고생했었는지를 상기시키기도 하셨다. 자신들이 나그네로 그토록 고생했으니 이제 나그네의 처지를 알고 그들을 보살펴 주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백성들은 그러한 나그네를 학대한 것이다. 마음껏 힘없는 나그네를 괴롭힌 것이다. 그것은 분명 죄악이었다.

 

 

이처럼 죄악은 보편적으로 퍼져있었다. 제사장들도 방백들도 선지자들도 백성들도 하나님을 떠났고 온갖 패역한 짓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판국이니 하나님의 징계가 없을 수가 없었다. 아니 징계를 받는 와중에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이제 더욱 큰 징계를 받아야 할 판국이다

 

 

결론

 

우리들 또한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지 않은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돌이켜야 한다.

 

그것이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