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예언과 축복 창49:1-28(2012. 1. 13 금요예배 설교)
1.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2.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3.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4.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5.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6.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7.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11.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12.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13.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14.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15.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16.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17.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18.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19.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20.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21.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27.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28.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참 고생을 많이 한 야곱.
고생하면 야곱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내 고생하는 것 옛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
꿈에도 소원이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인 야곱.
형을 피해 도망가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 야곱.
벧엘. 세가지 서원을 함. 무사하게 돌아오게 하시면 a.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고, b. 소득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c. 벧엘에 성소를 세우겠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양을 치며 보낸 20년의 세월.
7년은 라헬을 위해, 7년은 레아를 위해, 6년은 자신의 기반을 위해. 온갖 고생을 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풍부해짐.
라반의 태도 변화와 야곱의 도주.
쫒아온 라반에게 경고하셔서 야곱을 해하지 못하게 하신 하나님.
야곱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400명을 거느리고 나온 에서.
두려워 떠는 야곱. 이런 저런 예물을 준비함. 그래도 불안.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며 부르짖는 야곱. 하나님의 응답하심. 에서와의 극적인 화해.
약속한 벧엘로 돌아가지 않고 세겜에 머묾. 하나님께 약속했으면 지킬 것이지.
그곳에서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 지역의 족장 아들에게 겁탈을 당함. 그러나 디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아내로 삼게 해달라고 간청. 이때 시므온과 레위가 거짓으로 그들을 속여 할례받게 한 후 기습을 해서 진멸함.
두려워 떠는 야곱. 그 주변 부족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기에.
비로소 하나님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벧엘로 감. 하나님이 보호하심.
세월이 많이 지남. 요셉이 애굽에서 총리가 되고 야곱은 그 요셉의 부양을 받음. 이제 나이 들어 죽음을 앞둔 상황. 자기 아버지 이삭이 죽음을 앞두었다고 여겼을 때 예언과 축복을 했듯이 자신도 그와 같이 하려고 함.
1.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2.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1. 예언과 축복의 내용
1) 르우벤
3.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4.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장자. 능력. 기력의 시작. 육체적으로 볼 때 가장 유력한 자.
위광이 초등하고. 장자로서의 권위. 가족 내에서 대표권을 가지는 르우벤의 위치.
권능이 탁월. 아주 특별한 예외를 제하면 그 권위는 장자에게로 넘어감.
그러나 르우벤은 자격 박탈.
물의 끓음. 성격이 급하고 충동적임. 이것은 다듬어져야 함.
왜? 빌하와의 문제.
정욕을 이기지 못함. 남자들에게 일생 동안 따라다니는 유혹의 요소.
그것을 극복할 자신이 없으면 혼인하라고 권할 정도로.
영적인 싸움이 필요함. 이영희 목사님의 무너짐.
2) 시므온과 레위
5.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6.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7.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형제. 실제로 레아라는 한 어머니의 자녀들.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세겜족을 멸한 사건. 아버지의 눈 밖에 나게 되는 계기.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찌어다. 악을 도모하는 자리에 끼지 말라.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혈기를 이기지 못한 행동. 소의 발목은 힘의 출발. 그것을 끊으면 힘을 못 씀. 잔인한 행위.
혈기를 다스려야 함.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여기에서의 노염은 시므온과 레위를 도를 지나친 분노를 지칭하는 것임.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그대로 이루어짐.
시므온 지파의 경우 2차 인구 조사시에 유다 지파의 삼분의 1도 못 미침. 22000. 땅을 제대로 분배받지 못하고 몇몇 성만 얻음(수19:1-9).
레위. 땅을 분배받지 못하고 각 지파의 도움을 얻는 신세. 모세와 아론 이후 회복이 되었다고 하지만 문자적으로는 성취된 것임.
3) 유다
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11.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12.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찌라. 형제들에 의해 찬송받을지어다. 하나님이 인정해주는 사람. 양식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을 때 지도자다운 모습을 잘 보여줌. 자신이 책임을 지려는 모습.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유다의 후손인 다윗왕이나 솔로몬 왕 때 성취가 됨. 아버지의 축복이라고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음.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다윗 왕가를 통해 성취.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 예수님은 유대지파. 그 앞에 모두가 경배하게 됨.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사자는 동물의 왕. 용감하고 힘 있는 존재. 다윗이나 솔로몬왕의 통치.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홀은 왕권이나 통치권을 상징하는 휴대용 지팡이. 치리자의 지팡이와 같은 의미.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
느브갓에살의 꿈. 뜨인 돌. 그 나라가 영원함.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 /풍요로움. 나귀를 포도나무에 맨다는 것. 그만큼 포도나무가 흔하다는 것. 평화와 번영을 의미. 그 옷을 포두주에 빠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 은유적 표현임. 실제로 옷을 포도주에 빨면 입을 수 없음.
다윗 왕가의 번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풍성한 삶.
4) 스불론
13.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스불론은 해변에 거하리니 그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가나안 점령 후 스불론은 지중해와 갈릴리 바다 사이에 거주. 상업과 무역에 종사함.
그 지경이 시돈까지리로다. 시돈은 두로 북방 약48km. 스불론의 후손들은 시돈항을 이용해서 무역에 종사함.
참 놀라운 축복 기도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됨.
예언적 기도. 야곱은 시돈을 잘 모를 수 있음.
5) 잇사갈
14.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15.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건장한 나귀. 골격이 좋은 나귀. 튼튼하고 힘이 센 지파인 잇사갈. 그러나 우직하기만 할뿐 지혜가 총명하지는 못함. 따라서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함. 힘든 일과 노동일에 전념하게 되는 잇사갈.
압제 아래 섬기리로다. 그냥 풀면. “노예 족속이 될 것이다.”실제로 잇사갈은 이스라엘의 상부 계층을 형성하지 못함. 육체적인 고욕과 납세의 의무로 버거워 함.
왜 잇사갈에게 이렇게 말했을까? 편견 아닌가? 너무 하지 않은가?
그게 아님. 각자의 분량대로 축복한 것임.
축복을 받는 것. 그릇과도 같음. 그릇이 작은데 많이 부으면 못 담음, 넘치게 되어 있음.
6) 단
16.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17.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과 납달리는 라헬의 시녀 빌하의 자녀. 시녀에게서 낳기 때문에 서자라고 할 수 있으나 본부인의 의사에 따라 남편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적자들과 동등한 지위를 가질 수 있음.
심판한다는 것은 재판을 의미하는 것인데 사사인 삼손에 의해 성취가 됨. 사사는 판관임.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독사는 살무사를 말하는 것인데 짐승을 물 경우 즉사할 만큼 독성이 강하다. 단 지파는 이 내용대로 강한 지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적자들을 향해 강력하게 도전했던 지파이다. 라이스 성읍을 점령하기도 하고 삼손 때에는 블레셋에 패배를 안겨주기도 한다.
어거스틴이나 이레니우스 같은 교부들은 다소 특이한 해석을 하는데 단 지파가 우상숭배의 근원지였다는 점과 계시록 7장의 언급에서 빠졌다는 이유로 해서 단 지파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오는 것으로 이해를 했지만 그렇게 보는 데는 무리가 있다. 적그리스도는 특정 지파에서나오는 인물이라고 그 어느 곳에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성서 해석의 어려운 점. 어거스틴인나 이레니우스 같은 탁월한 학자들도 실수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음.
7) 갓
19.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갓 지파의 용맹성을 잘 드러냄. 요단강 동편에 사는 갓 자손들. 여러 차례 동방 족속의 침략을 받음. 그러나 그들을 성공적으로 이김으로서 이 예언이 성취됨.
예언 기도. 축복의 기도 속에서 승리도 주어짐.
반복되는 말씀. 축복의 선언은 중요한 것임.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3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하라 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찌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 6장)
8) 아셀
20.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갈멜산에서 베니게에 이르는 지역을 차지함. 지중해 해변에 있는 곳인데 땅이 비옥하여서 풍부한 농산물을 내는 곳이다. 솔로몬 왕은 여기에서 나는 곡식으로 건축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두로 왕 히람에게 양식을 공급해 주었다.
참 놀랍지 않은가? 야곱의 영적인 깊이가 탁월하지 않은가?
9) 납달리
21.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사슴은 매우 민첩한 동물. 납달리는 그런 사슴처럼 외부의 공격에 날렵하게 대처함. 가나안 왕 야빈이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왔을 때 납달리 지파는 이를 성공적으로 이겨냄.
사실 감당하기 힘든 상대. 그러나 잘 헤쳐나감.
10) 요셉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야곱의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유명한 한 복음성가의 내용은 요셉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샘곁의 가지. 가물어도 뻗어갈 수 있음. 샘 곁에 있기에. 시련을 만나도 강해지는 요셉 족속. 에브라임과 므낫세라는 두 족속이 그러함.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요셉의 과거를 돌이켜 보면 이 내용을 이해할 수가 있음. 하나님의 손이 아니었다면 요셉은 끝난 인생.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그의 인생이 일어섬.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인생. 얼마든지 놀라운 역사를 이룰 수 있음. 수렁 속에서도 솟아오를 수 있음.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복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 하나님을 떠나서는 복을 생각할 수가 없음.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위로 하늘의 복은 이슬, 비, 햇빛. 유목 사회이기에. 아래로 원천의 복은 샘들과 지하수. 가문 지역에서 물을 풍부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임.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은 많은 자손의 축복. 노동력은 부의 근원이기도 함. 자손이 많은 것은 성경이 말하는 복 중 하나임.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야곱의 축복이 야곱의 아버지인 이삭의 축복 보다 낫다는 내용. 형제 중 탁월한 인물인 요셉. 그 후손들도 그와 같이 복이 있을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11) 베냐민
27.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베냐민의 호전적인 기질을 잘 보여줌. 베냐민 사람들은 매우 용맹함. 사울의 지파이기도 함.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아침과 저녁은 시작과 끝을 의미함. 항상 원수들 앞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묘사하고 있음. 참고로 사도 바울이 바로 이 베냐민 사람이다.
28 이들은 이스라엘의 십 이 지파라 이와 같이 그 아비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2. 본문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
오늘 본문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1)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 본 야곱의 생애
첫째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 본 야곱의 생애에 대해 배울 수 있다.
18.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a. 야곱은 모가 많이 난 사람
그러기에 형도 속일 수 있고 아버지도 속일 수 있는 것임.
저런 사람이 무슨 신앙인이야 할 만큼 삶에 문제와 모순을 가지고 있던 사람.
b. 그러나 그에겐 강렬한 열망이 있음.
처음엔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것.
후엔 하나님 자신이 됨.
그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고 또 찾음. 하나님은 그를 만나 주심. 반복되는 하나님과의 만남은 야곱의 생애에 너무나도 소중한 경험.
c. 변화되어 가는 야곱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들을 통해 야곱은 조금씩 변해감.
속이던 야곱.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성실함을 보여주기 시작함.
밧단 아람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는 야곱.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시작.
라반의 위협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야곱.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
에서의 위기 이후.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는 삶.
d. 마지막 순간에 보이는 야곱의 신앙.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음.
e. 우리에게는 그와 같은 열망이 있는가?
혹시 너무 세상적인 것들에만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야곱이 아닌 에서에 가까운 사람일 것이다. 겉보기엔 야곱보다 번듯한 에서. 그러나 기억할 것. 그는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 이 가운데 그런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바라보자.
2) 예언과 축복은 능력이 있다고 하는 점.
오늘 본문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첫째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 본 야곱의 생애에 대해 배울 수 있다.
둘째로 예언과 축복은 능력이 있다고 하는 점을 배울 수 있다.
a. 에서와 야곱의 다툼
아버지 이삭의 예언과 축복을 서로 얻고자 함. 야곱이 얻음.
두 가지 이유. 하나님의 작정이라는 측면. 사모함의 측면.
아무튼 이삭의 예언과 축복대로 이루어짐.
b. 노아의 축복과 저주
셈 함 야벳.
저주받은 함. 노예가 됨. 그 내용을 이용하여 흑인들을 노예로 부려먹었던 백인들.
아무튼 노아의 축복과 저주가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음.
c. 야곱의 예언과 축복
그 성취에 대해서 앞서 자세하게 이야기하였음.
d. 축복은 그대로 이어진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서 인용한 민수기 장.
d. 신약의 축도 고후 13:13. 축도 전에 나가는 사람은 유익이 없음.
e. 전도자에게 하신 말씀. 어느 가정에 가든지 복을 빌라.
우리에게 있는 제사장의 권한을 잘 활용하자. 벧전2:9.
3) 저마다 갖고 있는 축복의 분량이 다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첫째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 본 야곱의 생애에 대해 배울 수 있다.
둘째로 예언과 축복은 능력이 있다고 하는 점을 배울 수 있다.
셋째로 저마다 갖고 있는 축복의 분량이 다르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28 이들은 이스라엘의 십 이 지파라 이와 같이 그 아비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a. 야곱이 임의대로 축복한 것이 아님.
감정대로 한 것이 아님.
감정대로 하는 축복은 힘이 없음.
예를 들어 감정이 안 좋은 상태로 저주하였다고 할 때 그 저주의 이유가 정당하지 못하면 그 저주는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함. 예전에 누군가 이런 문제로 두려워할 때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해줌. “2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의 떠도는 것과 제비의 날아가는 것 같이 이르지 아니 하느니라”(잠 26장)
축복도 마찬가지임.
b. 야곱의 아들들은 축복의 분량이 다름.
가장 많은 축복의 주인공은 유다와 요셉. 그들의 삶 자체가 남다름. 하나님의 축복을 담을 만한 그릇이 준비되어 있음.
형제간에도 천차만별. 한 교회 내에도 천차만별임.
c. 어느 외국인 며느리 이야기
외국의 어떤 며느리가 친정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자기가 보기엔 친정 가족들이 신앙생활도 더 열심히 하고 부지런해 보이는데 이상하게도 시댁이 더 잘되더라는 것이다. 시댁은 한번은 다른 종교를 믿기도 했고 친정 식구에 비해 신앙생활도 그다지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오히려 시댁은 하나님께 더 축복을 받는다면서 어찌 된 영문인지 목사님을 찾아뵙고 상담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제가 시댁과 친정 가족들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시댁 식구들은 누군가가 자기들에게 잘못을 했을 때 빨리 빨리 용서를 하고 하나님이 이게 아니다 하시면 재빨리 태도를 바꾸는거 같습니다. 반면에 친정 식구들은 신앙생활은 열심히들 하시지만 무언가 마음에 미움이 있을 때 그걸 빨리 풀어버리지 않고 하나님 말씀이 들려올 때도 자세를 빨리 바꾸지 않는거 같습니다”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은 며느리는 목사님께 정말 목사님의 말씀이 맞다고 고백을 했다고 한다. 미움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꽉 채우고 있는 상태로는 하나님의 축복을 담을 수가 없는 것이다.
d. 이한규 목사님의 글
축복의 파이를 크게 하는 길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수치스런 명칭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기주의자'라는 명칭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성인군자인 척 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욕심을 초월한 모습을 보이고,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통해서 최대한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과일을 살 때 좋은 것만 골라 사지 말고 주인이 주는 대로 사는 것이 좋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취하겠다고 고르는 만큼 그 10배의 축복이 어디선가 신비하게 새어나갑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과일이 돌아갈 수 있도록 주인이 주는 대로 받고 문드러진 과일 하나 먹으면 신비하게 자녀의 병 하나 고치고, 병 하나 예방 받는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수치화할 수 없지만 무엇이든 희생하는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은 그 희생한 것의 백 배, 천 배로 갚아주십니다.
믿는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도 "내가 이 가게에 도움을 주어야지" 하고 생각하고, 물건을 팔 때도 "내가 이 손님을 기분 좋게 해주어야지."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자세가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고, 우리에게도 복이 됩니다. 저는 그렇게 사는 사람이 굶어죽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으로 살면 절대로 손해 보지 않습니다.
교회생활은 더욱 그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교회를 무엇인가 얻는 곳으로 생각하면 복을 받지 못합니다. 드리는 곳으로 생각해야 복을 받습니다. 교회는 우리가 뜯어먹는 파이가 아닙니다. 그러면 그 파이는 점차 왜소하게 되고, 결코 부흥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우리의 헌신으로 그 파이를 키우는 곳입니다.
목회자와의 관계에서도 그렇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3월 1일 선교사님들을 만났을 때 일본의 김성수 선교사님이 김사무엘 목사님이 너무 무리해서 돌아가신 얘기를 하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들은 그렇게 자기 살을 뜯기다가 다 뜯기면 죽는 것 같아요." 목회자는 여러 성도들이 뜯어먹는 파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는 우리가 뜯어먹는 파이가 아닙니다. 우리가 부모님이라는 소중한 파이를 더 키우려고 하고, 더 풍성하게 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녀가 부모를 뜯어먹는 파이로 생각하고, 덜 주었다고 화까지 내고, 결혼 때 적게 해주었다고 몇십 년을 기억하면서 섭섭해하고, 심지어는 마지막 남은 부모의 재산까지 사업 자금으로 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하는 자식은 예수 믿고 구원은 받아도 결코 복을 받지 못할 저주받은 자식과 같은 모습이 될 것입니다.
제 아내가 저에게 호감을 가졌던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있는데, 중매하는 집사님이 저의 누님 친구였는데 그분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듣고 나서였다고 합니다. "유학하는 동생이 혼자 벌어서 공부하는 것이 측은해서 마침 땅을 팔아 목돈이 생겨서 돈을 부치기 위해서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는데 필요 없다고 안 알려 주더라." 아내가 그 말을 듣고 저에 대해 신뢰가 갔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부모님이 약간 도와줄 형편은 되었지만 저는 부모님의 도움을 하나도 받지 않고 혼자 공부했습니다. 결국 신학교 졸업할 때 등록금 다 내고 저의 손에 2500불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 가지고 뉴욕 시내에 방 하나 얻어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공부할 때 가끔 저에게 누님들이 돈을 부쳐 주겠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돈을 받지 않으려고 제가 있는 곳의 주소를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혼자 충분히 공부할 수 있는데 굳이 알려줄 필요가 없습니다. 결혼할 때도 부모님에게 1원도 받지 않고 결혼했습니다. 건강하고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데 왜 부모님 돈을 받습니까? 부모님이 저축한 돈은 부모님이 나머지 여생을 잘 지내기 위해서 써야지 건강하고 젊은 제가 받으면 되겠습니까?
인천에서 분당에 올 때 5년간 개척하고 이루었던 그 교회를 후임목사님에게 인계하면서 1원도 받지 않고 31만원만 가지고 그냥 왔습니다. 이사비용 25만원 지불하면 6만원 남는데, 그것 가지고 며칠 버티면 되겠지 했습니다. 그 돈이 그날로 마이너스였습니다. 장롱이 들어가지 않아서 8만원 더 주고 사다리 차를 빌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가 마침 MBC 신우회 지도목사로 있을 때였는데 이삿짐 싣는 것만 보고 바로 신우회 예배를 인도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예배 후에 한 집사님이 봉투 하나 건네서 극적으로 이사를 한 후, 지금까지 한번도 부족함이 없이 살아 왔습니다. 교회 개척 후 지난 5년 간 거의 마이너스 통장으로 살았지만 저와 아내는 하나도 걱정하지 않고 오히려 선교와 구제에는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제까지 그런 식으로 살았지만 밥을 굶은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굶게 하시겠습니까? 한 중학교 동창의 아내는 의사인데, 가끔 만나면 그날 하루 번 수입을 동전 한 개까지 다 봉투에 담아서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그분을 통해서 믿음의 행진을 격려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군가 어렵게 사는 자를 위해 드리는 우리의 헌신을 결코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파이를 뜯어먹을수록 영적 파이는 줄어들 것이고, 우리가 소중한 파이를 키우려고 자기 자신을 드리고 헌신할수록 자기의 가정과 자녀와 꿈과 비전을 통한 영적 파이와 축복의 파이는 커질 것입니다.
e. 축복 받을 그릇을 준비하자.
내 자신이 받을 수 있을 만한 인물로 성장하는데 모든 초점을 맞추자.
결론
오늘 본문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첫째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 본 야곱의 생애에 대해 배울 수 있다.
둘째로 예언과 축복은 능력이 있다고 하는 점을 배울 수 있다.
셋째로 저마다 갖고 있는 축복의 분량이 다르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한 해 마지막 주일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축복의 그릇으로 다든어 지는 새해를 맏이하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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