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폿대를 좇아가는 사람들 빌3:12-14(2012. 1. 20. 금요예배 설교)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오늘 본문에 푯대라는 말이 나온다. 그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목표라는 것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일평생 살아가면서 자신이 달음질할 목표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복된 일이다.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보람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푯대를 좇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눌 때 인생의 목표를 발견하고 그 목표를 향해 달음질하는 인생으로 변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
푯대를 쫓아가는 사람들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푯대가 정해져야 한다.
첫째로 푯대가 정해져야 한다.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12하)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1) 무엇이든 목표가 있어야 한다.
달릴 때. 결승점.
권투시합. 상대를 목표로 주먹을 휘둘러야 함.
공부하는 학생들도 분명한 목표가 필요.
2) 공허한 목표도 있음.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 돈을 많이 벌어서 어떤 삶을 살겠다는 목표가 아니라 돈 자체가 목표인 경우. 막상 많은 돈을 벌고 나서도 그 공허함을 이기지 못한 채 방황하는 삶을 살아갈 수도 있음.
안개처럼 사라질 것을 목표로 삼는 인생.
인생의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은데.
인용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쿠바의 모스키토 해안에서 고기를 잡으며 평생을 보낸 산티아고라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노인은 매일 바다로 나갔습니다. 평생을 어부로 살아온 노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빈배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평생 고기를 잡아온 경험과 기술을 되살려 낚시를 드리웠지만 84일 동안 쓸만한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85일째 되는 날이 왔습니다. 노인은 여늬 때와 같이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낚시 줄을 던졌습니다. 낚시 줄을 잡은 손에 갑자기 통증이 왔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큰 물고기가 낚시 줄에 달린 미끼를 물고 요동을 치니 낚시 줄에 손을 베인 것입니다. 고기는 노인이 탄 배보다 더 컸습니다. 노인은 그 고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틀동안을 씨름했습니다. 결국 노인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고기를 배에 매달고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항구로 돌아왔습니다. 항구에 도착한 노인은 잡은 고기를 끌어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만 고기는 간데 없고 앙상한 뼈만 남았습니다. 고기를 배에 붙들어 매고 돌아오는 동안 상어가 다 뜯어 먹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속에서 나오는 부자. 많은 수확. 큰 창고.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불러가심. 그는 정작 하나님 앞에는 빈털터리. 공허한 인생.
3) 바울의 목표 혹은 푯대.
a. 예수 그리스도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 것도 자랑하지 않겠다고 함. 조금 자세하게 설명하면 예수님을 닮는 것.
이것은 바울만이 아닌 모든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함.
그래야 그리스도의 향기가 될 수 있음.
그래야 그리스도의 편지가 될 수 있음.
찬송가
1.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2.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이전에 즐기던 세상 일도 주 사랑하는 맘 뺏지 못해
3.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유혹과 핍박이 몰려와도 주 섬기는 내 맘 변치 못해
[후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정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예수님이 가장 소중한 분이 될 수밖에 없고 예수님을 닮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됨.
b.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
히11:6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
달란트 비유.
상 얻기 위해 달리는 사람들. 우리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썩어질 면류관이 아닌 영원한 면류관을 위해 달림.
바울은 늘 그것을 바라보며 살아감.
“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장).
그 상을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란다.
2. 겸손한 자세가 있어야 한다.
푯대를 쫓아가는 사람들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로 푯대가 정해져야 한다.
둘째로 겸손한 자세가 있어야 한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12상)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13상)
1)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들
목표 없이 사는 사람들. 작심삼일이라도 해야 함. 한 만큼 남는 것임.
또 하나.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자신이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사람보다 자신은 모르는 게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음. 이미 가득찬 그릇에는 새로운 것을 담을 수가 없음. 이미 교만으로 가득찬 사람은 새로운 것을 담을 수가 없음. 겸손으로 비운 사람만이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음.
김은희 간사님. 300명을 인도함. 모르는 게 많아서 배우러 온다고 함. 제주도인데. 정말 귀함.
혹시 자기 신앙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성장이 이미 중단된 사람.
어제 전도사님 설교. 에드워즈. 미국 역사상 최고의 지성. 자신이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겸손하다고 생각하고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교만하다고 생각함.
2) 사도 바울의 고백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12상)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13상)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겸손한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임.
사실 바울 보다 위대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성경 저자. 교회 세움. 다양한 은사.
그런데 바울보다 위대한 듯이 자신의 신앙을 높이 평가하는 것. 그것은 착각 외에 아무 것도 아님.
바울이 바라보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님.
대개 사람이 교만해지거나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기 때문임. 그것은 어리석인 일이고 부질없는 짓임.
바울은 사람 바라보지 않음. 사람 바라보았으면 교만 떨었을 것임. 난 역시 신앙이 좋아. 나처럼 헌신하고 충성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난 참 많은 은사를 받았어. 난 정말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야. 나처럼 전도 잘하는 사람이 있을까? 기타 등등.
그런데 바울은 예수님을 바라봄. 예수님이 푯대. 예수님이 푯대이다 보니 자신이 아직 못 미치고 있다는 것을 발견. 그러니 겸손할 수밖에 없는 것임.
3) 우리에게는 겸손이 있는가?
은혜를 많이 받은 인물. 찰스 스펄전. 정말 능력있는 설교자.
그러나 늘 하나님 앞에 부족함을 느끼는 설교자. 그렇기에 끊임없이 기도함.
그가 어느 날 작은 교회에 들려 예배를 드림.
은혜를 참 많이 받음. 그런데 설교자가 스펄전을 알아보고 깜짝 놀람. 더 놀란 것은 자신이 한 설교가스펄전의 설교를 이용한 것임. 그런데도 스펄전은 은혜를 받음.
말씀을 들으면서 따지거나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겸손히 받아들였던 것임. 세계 최고의 설교자가. 그가 고백함. 평생 동안 다른 사람들의 설교 가운데서 은혜 받지 못한 설교는 없었다고.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설교에 은혜를 못 받는 것은 설교자 탓 만일까? 아님. 설교를 듣는 이들의 마음이 겸손하지 못한 탓도 큼.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가?
겸손해야 자란다. 겸손해야 배울 수 있다. 겸손해야 새로운 것들을 담는다.
말씀을 겸손하게 들으라. 겸손하게 제자 훈련을 받으라. 나는 얼마만큼 제자 훈련을 받았는데... 그게 무슨 상관일까? 일생 배우고 또 배워도 모자란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가?
3. 예수 안에 머물러야 한다.
푯대를 쫓아가는 사람들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로 푯대가 정해져야 한다.
둘째로 겸손한 자세가 있어야 한다.
셋째로 예수 안에 머물러야 한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1)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표현은 참 중요함.
사도 바울은 이 표현을 참 많이 사용함.
a.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구원.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같은 의미로 사용됨.
그리스도 안에 머물지 않고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음.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이것을 놓칠 수는 없음.
b.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푯대가 분명해짐.
예수님을 모르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푯대로 삼을 수 있을까?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만이 예수님의 푯대로 삼을 수 있는 것임.
그러면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은 푯대가 분명할 수 없는가? 그렇다. 천국을 모른다. 영생을 모른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모른다.
c.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푯대를 쫓아갈 능력도 있음.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우리 힘으로 안 됨.
우리의 본성과도 어긋함. 우리의 본성은 편안하고 싶음. 대접받고 싶음. 멋대로 하고 싶음. 잘 먹고 잘 살고 싶음.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함. 자기를 부인해야 함.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복종시켜야 함.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고 따를 능력도 없음.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임.
주님 떠나면 안 되는 것임.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2) 포도나무 비유
“그리스도 안에”라는 표현의 의미를 잘 알게 해주는 비유가 있음.
예수님의 포도나무 비유임.
“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장).
포도나무는 예수님. 우리는 그 가지. 농부는 하나님.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함.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함.
a.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생명 유지.
b. 붙어있어야 과실을 맺을 수 있음.
c. 붙어있지 않으면 가지가 말라버림.
d. 가지가 말라버리면 버리워 불살라짐.
e. 붙어있어서 과실을 맺으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심.
f. 붙어있어서 과실을 맺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됨.
3)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사단의 유혹. 자꾸 벗어나게 하려 함.
세상적인 것들로 끌어당김.
사람들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흔들 때가 많음. 주님을 쫓는 삶이 바보같이 느껴지도록 조롱하게 하는 사단의 술수. 영향력이 있음.
때로는 주님 안에 있는 삶을 살려고 할 때 힘든 일을 만나게도 함.
사자같은 방식. 시련
여우같은 방식. 유혹
주님 안에 머물러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란다.
4. 뒤에 있는 것은 잊어야 한다.
푯대를 쫓아가는 사람들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로 푯대가 정해져야 한다.
둘째로 겸손한 자세가 있어야 한다.
셋째로 예수 안에 머물러야 한다.
넷째로 뒤에 있는 것은 잊어야 한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13하)
1) 뒤를 바라보지 않아야 함
달리는 사람들. 뒤에 무엇을 두고 왔는지 뒤돌아보지 않음. 뒤에 쫓아오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인지 알기 위해 뒤돌아보지 않음. 오직 앞으로 보고 달림.
마라톤 중계. 뒤돌아보는 선수를 한명이라도 본적이 있는가? 뒤돌아보면 속도가 느려짐.
권투. 뒤를 바라볼 겨를 없음. 뒤돌아보는 순간 한방 얻어맞을 것임. 앞의 대상에 집중해야 함.
오늘 본문의 표현대로 하면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려야 함.
2) 뒤를 바라본 어리석은 사람들.
a. 룻의 아내.
아까운 것들 잔뜩 두고 나오는 마음이 오죽할까마는 구원받기 위해 나왔으니 뒤돌아보지 말아야 했음. 하나님의 말씀대로. 뒤돌아보았다가 소금 기둥이 됨.
b. 이스라엘 백성들
애굽에서 나옴. 가나안을 향해 감. 푯대는 가나안. 그런데 자꾸 뒤를 돌아봄. 애굽을 잊지 못함.
왜? 일차적으로는 광야가 힘드니까. 물, 양식, 길, 위험 기타 등등.
왜? 본질적으로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 푯대를 바라보지 못하는 것임.
3)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자
a. 예전엔 내가 이렇게 잘 나갔는데. 잊으라. 자꾸 되새기면 현재를 비참하게 생각하게 됨.
b. 과거의 상처와 아픔. 잊어라. 잊지 않으면 미움과 증오에 스스로를 망가뜨림.
부부간에도 과거의 아픔을 잊지 않으면 회복은 불가능. 과거에 매이는 것은 어리석은 것임.
c. 과거의 결정도 잊어라. 왜 그랬을까 하고 그 생각에 매인다고 되돌아오지 않음. 그러면 매일 필요 없음. 스트레스만 받을 뿐임.
뒤엣것에 매이지 말자.
목회도 마찬가지임. 일단 사명자로 들어섰으면 그 이전의 모습은 잊는 것임. 현재 힘들다고 왜 목회를 시작했을까 하고 후회하면 안됨.
사모님들도 마찬가지. 왜 목회자와 결혼했을까 후회하면 안됨. 어떻게 하면 목회사역에 도움이 될까를 고민해야 함.
성도들도 마찬가지임. 왜 예수를 믿게 되었을까 하고 후회하는 것은 어리석음. 마치 왜 애굽에서 나왔을까 고민하는 것처럼. 애굽이 좋은 듯 보여도 그것은 속는 것임. 노예. 예수 믿기 이전의 삶. 사단의 종노릇.
d. 오해하지 말 것
은혜를 잊으라는 말이 아님. 바울이 뒤엣것을 잊는다고 할 때 받은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음.
결론
푯대를 쫓아가는 사람들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로 푯대가 정해져야 한다.
둘째로 겸손한 자세가 있어야 한다.
셋째로 예수 안에 머물러야 한다.
넷째로 뒤에 있는 것은 잊어야 한다.
최근에 쓴 글 하나를 읽으려 한다.
윈스턴 처칠은 제가 무척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처칠은 2차 세계대전의 영웅으로 그가 아니었다면 히틀러를 제압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살아생전에 이미 위인의 반열에 올라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그는 국제연합과 유럽연합을 제창한 인물이기도 하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위대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처칠을 무척 존경하는 이유는 그런 위대한 업적들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는 사실상 많은 문제와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인데 그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위대한 인물로 우뚝 섰기에 더욱 존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좋은 조건과 환경, 그리고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과 포기하지 않는 도전으로 위대한 인물의 반열에 올라섰던 인물이 바로 처칠인 것입니다.
처칠이 안고 있었던 제약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아버지의 괄시
처칠은 아버지의 인정을 거의 받지 못한 채 자라났습니다. 처칠의 아버지 랜돌프는 37세의 젊은 나이에 재경부 장관이 될 정도로 유능한 인물이었는데 그다지 가정적인 사람은 아니어서 가족들에게 무심했을 뿐 아니라 장남인 처칠에 대해서는 늘 한심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 당시 상류 계층이 되는 길은 목사나 법률가나 군인으로 출세하는 것이었는데 랜돌프는 자신의 아내에게 처칠에 대해 말하길 목사가 되기에는 성격이 안 좋고 법률가가 되기에는 머리가 나쁘니 천생 군인이 되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쓸모없는 놈이라는 막말도 하였습니다.
2. 어머니의 무관심
아버지로부터 괄시를 받으며 자란 처칠은 어머니의 사랑과 돌봄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제니는 바람기가 있었던 여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기 생활을 즐기기에 바쁜 제니는 아이들을 유모와 하인에게 맡겨놓은 채 노는 일에 바빴습니다. 아이들이 7살이 되면 집에서 먼 곳에 있는 기숙사에 보내놓고는 찾아가보지도 않았습니다. 돈을 붙여주고 가끔 편지를 써주는 것 외에는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사교모임에 나가 노느라 사치를 일삼으면서 아이들을 방치했으니 처칠은 불행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할 것입니다.
3. 좋지 않은 머리
처칠은 공부하는 쪽에 재능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때부터 그 이후로 성적이 계속 좋지 않았으며 수업 태도마저 좋지 않아서 선생님들에게 꾸지람을 듣는 단골손님이 되었습니다. 자주 교장실에 불려가 엉덩이가 불이 나도록 얻어맞았다고 하니 어느 정도의 상황인지 대략 짐작이 갑니다. 그렇게 좋지 않은 성적이다 보니 옥스퍼드같은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고 하는 수 없이 샌드 허스트 사관학교에 지원하였습니다. 그나마도 두 번이나 시험에 떨어졌으며 다행히 세 번째 시험에 자신이 준비해간 문제가 시험에 나온 덕분에 겨우 합격하였습니다.
4. 평생 괴롭힌 우울증
처질에게는 고질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우울증입니다. 우울증이 너무 심했던 처칠은 배를 타고 여행할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바다에 뛰어들까봐 배의 난간 근처에 있기도 두려워하였습니다. 우울증을 고치기 위해 좋은 의사들을 찾아다녔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 우울증은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후 세계적인 영웅이 된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는데 그가 엄청난 일중독증에 걸린 것은 우울증을 잊기 위해 일에 몰두했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중 처칠의 주치의였던 모란 박사는 처칠이 평생 심한 우울증으로 시달렸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5. 연약한 육신
정신적으로 우울증 때문에 고생을 한 처질인데 육신이라도 건강했다면 좋을 텐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집안 자체의 내력 상 장수한 사람이 거의 없는데 처칠의 아버지만 해도 46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처칠의 경우 다행스럽게도 단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건강하지도 못했기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가 고통을 겪었던 여러 가지 병들 중에 가장 힘겨웠던 것은 폐렴이었는데 지금처럼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그 당시의 폐렴은 중병이었고 처칠은 폐렴 때문에 무척 힘들어 하였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중에도 그의 육신은 엉망이었는데 폐렴과 심장병으로 고통을 겪으면서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6. 원만하지 않은 인간관계
앞에서 처질이 우울증으로 시달렸다고 했는데 그런 처칠이었기에 인간관계 역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처칠은 무척 변덕맞고 흥분을 잘하며 쉽게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 공공장소에서도 감정이 북받치면 눈물을 흘리면서 연설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 처칠은 아래 사람에게 너무 엄격하여 원성을 샀고 윗사람에게는 너무 직설적으로 바른 말을 해서 미움을 샀습니다. 처칠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들들 볶여야 했는데 잠을 자고 있던 새벽에도 처칠의 전화 때문에 잠에서 깨어나야했고 잔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외로운 처지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우울증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처칠의 문제점들은 그 한 가지만 따져보아도 한계와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처칠은 그 모든 문제들을 다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신의 환경이나 처지나 모습에 굴복하지 않고 도전하였다는 점에서 정말 마음이 끌리는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별히 옳다고 생각하는 일엔 말만이 아닌 실천을 보여주었는데 아무리 비난을 받고 공격을 당해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그 일을 이루어내고야 말았으며 그런 처칠의 모습은 차츰 사람들의 마음속에 신뢰할 만한 인물로 자리잡게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그런 지도자가 아쉬운 상황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처칠이 과거에 매여 “난 우울증 걸린 사람이야, 난 아버지의 무시를 당하며 살았어, 어머니는 나를 방치했지, 난 공부도 무척 못했어, 난 몸도 엉망이야. 그러니 나같은 사람이 뭘 하겠어”라고 했다면 지금의 처칠은 없다.
혹시 뒤에 있는 것들에 묶인 사람들이 있는가? 성령의 능력으로 잊으시기 바란다. 앞에 계신 예수님만 바라보시기 바란다. 승리하시는 한해가 되시길 축원한다. 우리는 푯대를 쫓아가는 사람들이다.
5. 분명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전반에 나타남.
버리는 대가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 3장).
가볍게 하는 것. 고전9장.
수고의 대가. 노력이라고 하는 것.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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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사람이 어떤지가 더 중요하다 마27:55-61(2012. 1. 6. 금요예배 설교) (0) | 2012.0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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