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입장에서 살펴본 탕자의 비유 눅15:11-32(2011. 11. 25 금요예배 설교)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탕자의 비유. 수없이 접하는 내용.
발표회 때도.
설교중에도.
수없이 들었었고 수없이 많이 설교하기도 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탕자의 비유가 지루하지 않음. 그만큼 영원한 진리를 담고 있는 내용인 것임.
오늘 본문엔 3명의 주인공.
탕자, 탕자의 형, 아버지.
오늘은 그 3주인공을 우리들 입장에 비추어 생각해보려고 함.
우리가 그 3주인공의 입장에 설 수 있기 때문임.
1. 탕자
첫째로 탕자의 입장에 선 우리들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가 탕자일 수 있는 가능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드러남.
1) 아버지의 품이 싫어짐.
하나님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속박이요 구속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임.
아담과 하와. 선악과를 따먹는 것.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나려는 욕망도 작용.
뱀의 유혹.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말. 하나님처럼 되면 이제 마음대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임. 자신의 위에 하나님이 안 계시니까.
2) 아버지에게 유산을 요구함
요구해서는 안될 것.
유산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주는 것.
살아계실 때 주더라도 그것은 아버지의 판단에 따른 것이지 자녀가 먼저 달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 살아생전 유산타령 하는 자식들이라면 사람구실을 못하는 것임.
하나님께 정도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
-하나님이 왕이신데 하나님 말고 다른 왕을 구하던 이스라엘 백성들.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권한에 해당하는 것을 요구하고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
게놈 프로젝트. 인간 복제. 하나님을 배제한 사람들만의 왕국.
3)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로 감
하나님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실천하는 것임.
실제로 하나님을 떠난 수많은 사람들.
탕자와의 차이점이라면 자신이 떠나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
떠나 있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음.
그것은 감사한 일임. 마음이 그래도 더 많이 열려있는 상태인 것임.
하나님을 떠나있다고 하는 것의 의미.
a.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음.
b. 하나님께 예배하거나 경배 드리지 않음. 피조물로서 당연히 할 일인데 그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낌.
c. 하나님에 대해 못마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음. 자신의 머리로 납득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런 사람들이 실제 많이 있음.
d.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감. 역시 하나님을 떠난 것임.
4) 허랑방탕하게 사는 탕자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모습.
진정한 목적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모든 만물은 목적을 가진 채 만들어짐.
사람 역시 마찬가지임. 물건의 목적은 그것을 만든 사람에 의해 결정.
사람의 목적은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의해 결정. 그런데 하나님이 없으니 삶의 목적을 상실하는 것임.
어떤 이들은 반문. 목적이 있는데요.
시험보고, 학교 가고, 직장 들어가고, 출세와 성공을 향해 달리고, 결혼하고, 애 키우고, 늙고, 죽고. 그러나 아무리 누리고 떵떵거려도 남는 것은 공허함뿐임.
모든 것을 다 누려본 솔로몬. 헛되다는 고백. 하나님을 떠난 해 아래의 모든 수고는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임. 최선 다해 열심히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삶이 하나님 앞에 허랑방탕일 수 있음.
어리석은 부자. 왜? 인간적으로는 지혜롭고 열정도 있고 준비성도 있고 사업수완도 있는데. 하나님 앞에 내놓을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임.
5) 비참해진 탕자
쥐엄 열매를 먹는 탕자. 돼지 따위가 먹는 것인데.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먹지 말아야할 것을 먹고 마시지 말아야 할 것을 마시고 취하지 말아야할 것을 취함.
죄악을 먹고 마시는 사람들. 문제는 나쁜 줄 알면서도 먹고 마시지만 나쁜 것인 줄 알지도 못하는 경우도 많음. 분별이 안 됨.
죄.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생활. 삶의 모든 부분. 생각, 언어, 행위 모두에 해당.
죄없는 사람은 없음. 안티들이 엄청 듣기 싫어하는데 그것은 인간의 본성임. 다 듣기 싫어함. 그러나 알아야 함. 당신 몸에 암 있소 하면 그것이 듣기 좋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나님을 떠나면 죄를 먹고 마심.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습관적으로 죄를 먹고 마시는 사람. 그것은 거짓임.
연약해서 넘어질 수 있음. 반복될 수 있음. 조금씩 성장해감. 성령의 능력을 힘입을 때 죄를 이김. 그러나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 것은 불가능한 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라고 말씀하심.
6) 죽음을 직면하게 되는 탕자
나는 여기서 주려죽는구나.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종착지는 죽음. 그 너머에는 심판이 있음. 히9:27.
이것은 모든 사람의 종착지임. 벗어날 사람이 없음.
게놈 프로젝트니 뭐니 해도 소용없음. 하나님이 허용하지 않으실 것임.
이 모든 것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
노력이 아님. 수고가 아님. 발버둥이 아님. 딱 하나임. 아버지에게로 돌아오는 것.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길.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돌아오는 자는 누구나 받아주시는 아버지.
혹시 떠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돌아오시기 바란다.
1.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 주 어찌 못 담당하고 못 받으시리요 우리 주의 넓은 가슴은 하늘보다 넓고 넓어
2.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우리 주는 날마다 기다리신다오 밤마다 문 열어 놓고 마음 졸이시며 나간 자식 돌아 오기만 밤새 기다리신다오
3.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채찍 맞아 아파도 주님의 손으로 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 주시는 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오오 어서
2. 탕자의 형
첫째로 탕자의 입장에 선 우리들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둘째로 탕자의 형 입장에 선 우리들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아버지의 집 안에 머물러 있음.
떠나 있지 않은 탕자의 형.
이것은 분명히 탕자보다 나은 태도임.
비유의 결론을 아는 우리. 따라서 탕자의 형이 보여주는 태도 전부를 부정적으로 보기 쉬운데 그렇지 않음.
사실 예배 잘 드리고
교회 생활을 잘하는 것에 대해 비판할 필요는 없는 것임.
탕자의 형은 바로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음.
2) 열심히 일하는 탕자의 형
밭에 있다가 돌아옴. 열심히 일하다가 왔다는 것임.
이 역시 창찬해 주어야할 모습임.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 마리아가 하는 일만 칭찬할 것은 아님. 우선순위에 대한 문제이지. 죄다 마리아 같이만 있겠다고 하면 교회가 엉망이 됨. 그냥 말씀만 듣고 있을래요 하고는 봉사를 하지 않을 경우 교회는 맥이 빠져버리는 것임.
밥하는 것 안할래요. 주일은 금식의 날이 되는 것임. 나가 사먹든지.
차량 운행.
교회 청소. 지금 어느 쪽 당번인지 모르지만. 성실하게 해야 함. 그래야 교회가 깨끗해지고 깨끗한 상태로 성도들이 이용할 수 있음.
행사할 때 주차 담당.
여러 가지 악기 담당. 성가대. 교사. 구역장(참 중요한데). 기관 임역원 기타 등등.
이들의 수고를 알아주고 칭찬과 격려도 해주어야 함.
스스로가 그런 것을 목적으로 봉사해서는 안 되겠지만.
3)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함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다면 동생을 찾으러 나갔을 것임.
여기서부터 탕자의 형이 문제를 드러냄.
밭에 나가서 일하는 것. 중요함. 그보다 더 중요한 것. 동생을 찾는 것.
그런데 찾고자하는 마음도 행동도 나타나지 않음.
그저 자기 혼자 아버지의 집에 있는 것으로 만족함.
오늘날 성도들의 모습을 잘 드러내줌.
탕자를 찾고자 하는 열의가 없음. 전도의 열정을 잃어버린 모습.
초대교회. 전도에 미친 성도들. 핍박 때문에 쫓겨난 상태에서도 전도. 그래서 세워진 안디옥 교회.
우리 예수비전교회은 어떤가?
이름부터가 예수비전인데. 3대 사역. 복음 전도. 제자양육. 치유사역.
혹시 가만히 있지는 않은가?
타이틀만 쥐고 있지 않은가? 난 장로. 권사. 집사. 회장. 구역장 하면서. 난 형이야 하면서 동생을 찾지 않은 탕자의 형처럼.
4) 동생의 돌아옴을 못마땅해 함
이것이 참 인간의 못된 모습임.
물론 못마땅해 하는 이유가 있음. 유산 청구. 나쁜 놈임. 허랑방탕. 더 나쁜 놈. 그리고 빈털터리 된 채 뻔뻔하게 돌아와?
그리고 그런 놈을 열열이 환영하는 아버지는 또 뭐야?
탕자의 형같은 모습이 교회의 중직자들 가운데서 나타날 수 있음.
초신자들은 그런 것 없음. 자신이 갓 돌아온 탕자인데....
그런데 어느 정도 위치가 있는 성도들이 탕자의 형처럼 행동함. 못마땅한 것임.
전에 어떻게 행동했는데...
저 사람 형편없는 사람인데...
저 인간 정말 마음에 안 드는데...
저건 정말 사람도 아닌데...
사실 여기에서의 형은 바리새인들을 염두에 둔 것임.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인 열정이 있음.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은 모름. 그러다보니 못마땅한 것이 많음. 내게도 그런 모습이 많음을 발견. 지금은 많이 좋아진 것임. 예전에는 못마땅한 것이 너무 많았음. 신앙생활을 왜 저렇게 하는 거야 하는 끝없는 비판의 마음.
변화 받아야 함.
5) 누리지 못하는 탕자의 형
염소새끼라도 잡아 잔치를 벌인 적이 없다는 항변.
잊고 있는 것. 그는 종이 아니라 아들이라고 하는 점.
충분히 누릴 수 있는데 종처럼 생각하고 행동한 것임. 그러다 보니 멋대로 살고 돌아와 대접받는 탕자가 못마땅한 것임.
신앙생활도 그렇다.
누릴 수 있는 축복이 많다. 그것을 누려야 신앙생활이 재미있고 그래야 마음도 넓어지고 너그러워진다. 그렇지 않으면 늘 쪼는 역할만 한다. 왜 저 모양이야? 하면서. 상처 난 닭을 건강한 닭들이 보살피지 않고 쪼듯이.
기도 응답.
예배의 기쁨.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성도간의 행복한 교제. 좋은 교우 관계.
종이 아닌 아들이라는 분명한 인식.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체험.
기타 등등.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를 풍요하게 만드는 것임.
3. 탕자의 아버지
첫째로 탕자의 입장에 선 우리들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둘째로 탕자의 형 입장에 선 우리들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셋째로 탕자의 아버지 입장에 선 우리들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가장 큰 피해자
물질적인 면에서
정신적인 면에서
특별히 아버지이기에 느끼는 고통과 충격이라고 하는 것이 있음.
방황하는 아들. 그 때문에 무척 속상해하고 힘들어하는 아버지가 우리 교회에 있을 수 있음.
그 어머니가 내게 이야기 해줌. 속이 탄다고. 그게 아버지의 마음임.
사랑이 클수록 상처가 크다는 것을 기억하라.
아예 사랑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는데 그 사람이 나를 떠나 버림. 기분은 나쁠지 몰라도 상처를 받지는 않음. 정말 뜨겁게 사랑하는데 떠나버림. 엄청난 상처를 받음.
호세아의 마음. 정말 큰 상처. 그가 아내에게 얼마나 잘했는지는 모름. 구약의 선지자들은 사생활이 거의 없음. 귀한 종인지는 몰라도 좋은 남편은 아닐 수 있음. 아무튼 그런 호세야를 외면하는 그 아내 고멜. 호세아가 큰 상처를 받음. 왜? 사랑하기에.
사람들이 나를 거절할 때. 기분 나쁨. 그러나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상처를 받는 정도가 다름. 아내와 아이들이 나를 거절한다면? 나를 떠난다면? 정신 못차릴 것임. 사랑하기에.
탕자의 아버지는 상처받은 존재임.
2) 날마다 집밖에서 기다리는 아버지
나는 이런 탕자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면 감동보다 먼저 밀려드는 감정이 있다. 그것은 서러움이다. 사실 아버지는 뭐가 아쉬운가? 아쉬운 건 아들이지.
그런데 아쉬워야 할 아들은 허랑방탕하고 있고 아쉬움이 없어야할 아버지는 가슴 졸이며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음. 내 머리로는 이런 하나님의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음.
사실 인간 말종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니 내 자신이 그런 인간 말종이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는 그런 나를 끝없이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그것 하나만으로 족하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있고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의 인생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 나는 분명히 안다. 내가 가장 수중하게 여기던 사람도 나를 떠나고 나를 배신하고 나를 거절할 수 있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내 삶을 의탁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 너무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만큼은 끝없이 나를 기다리신다.
그것은 내 어린시절에도 그랬다. 그 힘든 삶 속에서
찬양.
이 세상은 괴로운 세상 우리 모두 나그네니
하늘나라 영원한 내집 하루 속히 찾아가리
하늘나라 아버지 집은 슬픔 괴롬 죽음 없네
나는 매일 요단강 건너 하늘나라 찾아가리.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앞으로 내 평생 속에서도.
그것은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임.
3) 아들을 품에 안으시는 아버지
우리는 탕자의 행동에 집중할 수가 있다. 돌이킨 것. 정말 잘한 일이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사실 아버지다. 탕자가 돌아왔는데 아버지가 너 왜 왔냐? 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탕자의 돌아옴이 헛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러지 않으심.
아직 거리가 먼데 알아봄. 달려감. 안고서 기뻐함.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임.
여러분은 알고 있는가? 여러분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왔을 때 하나님이 이토록 기뻐하시고 환영하신다는 것을...그만큼 여러분은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4) 풍성한 것으로 베푸는 아버지
종들에게 명령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라
손에 가락지를 끼우라.
발에 신을 신기라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이것만이 아님.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면까지 요청함.
우리가 먹고 즐기자. 아버지 당신만이 아니라 종들보고도 함께 즐거워하자는 것임.
묻고 싶다.
탕자가 잘한 것이 뭐 있는가?
그에게 칭찬받을 만한 삶의 모습이 하나라도 있는가?
배은망덕한 놈이다.
사람구실도 못하던 아들이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돌아왔다고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아버지는 바보가 아니고 뭔가?
그렇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바보다. 엄청난 바보다.
그러니 우리를 살리시고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셨지 않은가?
날 위해 고난과 멸시와 조롱을 당하신 예수.
손과 발에 못박히신 예수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신 예수
옆구리에 창을 찔리신 예수
내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 예수님의 아버지이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하나님의 사랑을 확증...”
이 사랑 알면 감사 안할 수 없다.
예배 안 드릴 수 없다.
십일조와 헌금이 아까울 수가 없다. 자식 위해서도 돈 쓰는데...추수 감사.
육신을 드리는 봉사 기꺼이 할 수가 있다. 나 역시 내 몸 전체를 주님 위해 드리기 원한다.
시간을 드릴 수 있다.
축복한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그 뜨거운 사랑을 경험하시기 바란다.
5) 짚고 넘어가야 할 한 가지
여기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바로 이 아버지의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a. 불쌍히 여기는 마음
비판이나 판단의 마음이 아니고.
b.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
무관심하지 않고.
c.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모습.
집밖에 나간 아버지처럼 사람들을 찾아나서야 함.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가야 함.
d. 돌아온 아들 기뻐하는 마음.
시큰둥해선 안됨. 잔치가 벌어져야 함.
우리 안에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눈물을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임.
그리고 구체적으로 움직여야 할 것임.
글 하나를 소개.
토요일마다 교도소로 출근하는 여자. 14년 동안 교도소를 밥먹듯 드나드는 아내를 따뜻하게 격려해주는 듬직한 남편. 어느 재소자 부부의 감동적인 다큐멘타리가 아니다. 김영숙 전도사와 두상달 장로. 교도소와는 전혀 무관한 부부 이야기다.
김전도사는 이화여대 약학과를 졸업한 엘리트다.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남편은 건실한 사업가다. 남서울 교회 집사였던 김전도사는 인생을 편안하게 즐길만한 나이에 합동신학교에 진학해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처럼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오로지 한가지 이유, "영혼구원"의 욕심 때문에 전도사가 됐다.
"84년부터 안양교도소의 재소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사정으로 성경공부를 중단한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재소자들도 똑같은 신자로 보아주세요" 토요일이면 성경과 전도지를 챙겨들고 집을 나서는 김전도사. 그녀의 14년의 외출은 철저하게 보안이 유지됐다.
입이 무거운 남편도 "토요일마다 아내가 어디에 가는가"라는 친구들의 물음에 웃음만 짓곤 했다. 한국대학생선교회 출신으로 기독교21세기운동 청소년분과위원장을 맡고있는 두 장로도 중동선교회를 이끌고 있다.
"재소자선교나 회교권선교가 모두 주변에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분야지요. 14년 동안 제가 성경을 가르친 재소자들 중 교회에서 봉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목회자가 된 사람도 있구요. 앞으로도 재소자 선교는 계속될 것입니다"
부부가 모두 이른바 선교의 3D분야로 꼽히는 재소자와 회교권선교에 재미와 보람을 느낀다. 밖으로 알려지지 않으니 오히려 속으로 기쁨이 솔솔하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재소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성격도 많이 변했다.
"전 원래 끈질긴 면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시련을 극복할 힘이 없었기에 하나님께서 평탄한 길만 예비해 주셨어요. 좋은 남편과 좋은 이웃과 좋은 환경. 재소자들과 어울리면서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깨달았어요. 삶이란 나누는 과정에서 행복을 얻더군요"
2000년도에 쓰여진 것이니 지금까지 사역하고 있다면 20년 사역.
왜? 단 하나의 이유.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에...
결론
우리는 3주인공을 통해 우리 자신을 바라보아야 한다. 각각의 단계중 우리는 어디에 해당할까?
a. 탕자의 단계
자신의 삶을 돌이키고 기다리시는 아버지에게로 나아오는 단계.
지금도 집밖에 머무는 수많은 사람들.
참 안타까운 일임. 쥐엄 열매나 먹고 있으니.
b. 탕자 형의 단계
아버지 품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단계.
아직 모자람. 아버지의 마음을 모름.
아버지 집에 있는데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니 안타까운 현상.
c. 탕자 아버지의 단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간직한 상태.
그 때문에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것임. 전도하는 것임.
선교사를 파송하며 후원하는 것임.
새로운 사람들이 오면 그토록 기뻐하고 환영하고 따듯하게 대하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임.
우리에겐 아버지의 마음이 필요하다. 아버지의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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