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진은 사건 관련 그래픽. 출처=조선일보DB
김 상병은 사고 당일 오전 창고에서 혼자 소주를 마셨고 오전 11시20∼35분께 총기를 탈취한 뒤 40∼50분께 총격을 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경위 = 김 상병은 사고 당일 오전 7시30분께 창고에서 소주 1병을 마신 것으로 밝혀졌다.
이틀 전 밤 해안초소에서 경계근무를 하던 중 편의점에서 구입해 창고에 숨겨놓은 2병 중 하나였다.
이후 김 상병은 정 이병을 창고로 불러내 함께 범행을 모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 상병이 “000을 죽이고 싶다”고 말하자 정 이병은 처음엔 “그러지 마십시오”라고 말렸지만, 잠시 후 “소초원들 다 죽이고 탈영하자”고 제안했다. 자신 역시 평소 괴롭힘과 무시당한 것을 떠올린 것이다. 이들은 “지금 죽이자”면서 함께 창고 밖으로 나왔다.
애초 이들은 고가초소로 가 경계 근무자의 총기를 탈취하려 했지만 실패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상황실로 향했다.
김 상병은 오전 11시20분∼35분께 K모 일병의 소총 및 탄약(실탄 75발, 공포탄 2발, 수류탄 1발)을 갖고 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 조사과정에서 발표된 탈취시간인 ’오전 10시∼10시20분’에서 달라진 것이다. 그동안 총기 탈취 후 총격 시까지 확인되지 않은 1시간 이상 김 상병과 정 이병의 동선을 둘러싸고 의문이 증폭돼왔다.
당시 상황실 근무자는 3명이었지만 김 상병이 총기와 탄약을 갖고 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생활관 복도에 있던 총기 보관함은 열려 있었다. 상황병은 소초 주변을 순찰하던 중이었고 상황부사관은 총기보관함을 열어둔 채 밖으로 담배를 피우러 나간 것으로 조사결과 드러났다.
탄통은 간이탄약고 안이 아닌 위에 놓여 있었다. 당직병인 슈미트(관측장비의 일종) 운용병이 있었지만 김상병의 절취 상황을 알아채지 못했다. 김 상병과 동기였던 당직병은 그의 등장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고, 눈치를 살피던 김 상병은 소리없이 탄약고 위에 놓여있던 탄통만 들고 밖으로 나왔다.
김 상병은 정 이병에게 수류탄 1발을 주고 고가초소를 폭파하라고 지시했다. 정 이병은 고가초소 근처까지 갔지만 총성을 듣고는 두려움에 돌아왔다. 공중전화 부스 부근에서 김 상병이 쏜 총에 맞아 쓰러진 이승렬 상병을 발견하고는 고가초소 근무자에게 이를 알려준 뒤 계속 피신 다녔다.
정 이병과 만나 그가 수류탄을 터트리지 못한 것을 안 김 상병은 “너랑 나랑 같이 죽는 거다”라면서 안전핀을 뽑았고, 정 이병은 순간적으로 문을 열고 달아났다.
◇범행 동기 = 국방부 조사 결과 김 상병은 훈련소에서 실시한 인성검사에서 불안ㆍ성격장애ㆍ정신분열증 등의 판정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소초원들은 김 상병에 대해 ’다혈질적이고 불안정, 나태함’ 등으로 진술한 것으로 미뤄 부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국방부는 전했다.
김 상병은 평소 오전 취침시간에도 자지 않고 소초 주변을 배회하며 개인 시간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상병 개인 사물함에서 발견된 메모에서는 ’학교 다닐 때 문제아, 선생님께 반항 및 욕설, 사회성격이 군대에서도 똑같아, 모든 것 포기 심정, XX놈들아 XXX들 다 죽여 버리고 싶다, 엄마 미안’ 등 신상을 비관하는 내용이 발견됐다.
사고 당일에도 오전 7시께 다 함께 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음악방송을 보던 중 모 일병이 선임병과 웃으면서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평소 자신만 소외받고 있다는 기분에 자살충동을 느낀 것으로 조사됐다.
후임병들이 선임병 대우를 해주지 않는 ’기수열외’ 등의 악습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후임병에게 절대적으로 군림하는 선임병들의 폭행과 가혹행위 등 뿌리깊은 부조리 역시 한 원인으로 지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