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 사 오신 선생님/ 안희환
초등학교 2학년의 선생님으로 기억합니다(정확하지는 않음). 그때 선생님의 성함이 이강국 선생님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요(역시 정확하지는 않음). 그 분은 선비스타일의 선생님이셨는데 말수가 많지 않으셨고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시던 분이었습니다. 사실 초등학교 꼬맹이들이 얼마나 시끄럽고 요란합니까? 그런데도 소리 한번 지른 적이 없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시간이 지나 저는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가난한 가정 형편으로 인해 밭에 나가서 무도 뽑고 시장에 나가서 신문지를 바닥이 깔고 앉아 시금치 등의 채소를 팔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하던 신문 돌리는 일도 계속해서 했고요. 그런 와중에도 삶이 고달프다거나 힘들어서 못살겠다는 식의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조금 더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입니다.
어느 날입니다. 저는 신문을 돌리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신문사로 향하다가 교통사고를 만났습니다. 제 앞으로 가던 대형 트럭이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뒤서 같이 서서 기다리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질 것 같아서 중앙선 쪽으로 돌아가는 순간 반대 차선에서 대형 트럭 한 대가 더 온 것입니다. 반대쪽은 도랑물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갈 수가 없었고요.
너무 놀란 저는 다가오는 대형 트럭을 피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고 그 후로 몇 개월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할 상황이었습니다. 학교를 일 년 쉴 수밖에 없었고 후배들과 같이 공부해야 하는 저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가난한 집안 형편은 여전했고 이젠 약해진 몸으로 신문 돌리는 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용기를 주셨던 분 중 한 분이 이강국 선생님이십니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의 선생님이신데 어떻게 중학생이 된 저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으셨는지 저희 집까지 찾아오셨습니다. 안양천 제방 옆의 판자촌에 있던 저희 집은 찾아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제방 길을 한참이나 걸어 걸어와야 했고 길이 좋지 않은 연고로 택시들도 들어오기를 거부하는 곳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길을 따라 저희 집까지 걸어오셨습니다.
땀을 흘리며 집을 찾아오신 선생님의 손에는 소기가 덩어리가 있었습니다. 일 년 내내 소고기를 먹을 수 없었던 가정 형편이었는데 선생님 덕분에 비싼 소고기를 먹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선생님이 찾아오신 것보다 그 선생님 덕분에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더 기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깟(?) 소고기가 아니라 선생님의 발걸음이 큰 사랑이요 은혜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주 오래 된 이야기이지만 그 기억을 떠올리니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콧날이 시큰거립니다. 눈물이 핑 돌려고 합니다.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듭니다. 역시 마음으로부터 전해진 사랑은 오래 가는 모양입니다. 이강국 선생님을 뵙고 싶지만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때가 40대 이셨다면 이젠 70-80대가 되셨을 텐데 아직 살아 계신지 궁금합니다.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흘러간 옛 시대의 말이 되었지만 지금도 영혼 깊숙이 사랑을 심어주는 선생님의 존재는 잊힐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아들, 딸이라도 되는 듯이 땀을 송송 흘리며 먼지 나는 길을 걸어와 주신 선생님. 그때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정말 고마운 일임에도 고마움을 가슴 깊이 느끼지 못한 채 소고기 덩어리에 기뻐하던 어린 제자가 다시 인사를 드립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혼자 서재에 앉아 [스승의 은혜]를 불러보았습니다. 예전보다 음치가 된 모양인지 소리가 예쁘진 않네요.
1.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2. 태산 같이 무거운 스승의 사랑 떠나면은 잊기 쉬운 스승의 은혜
어디간들 언제인들 잊사오리까 마음을 길러주신 스승의 은혜
3. 바다보다 더 깊은 스승의 사랑 갚을 길은 오직 하나 살아 생전에
가르치신 그 교훈 마음에 새겨 나라 위해 겨레 위해 일하오리다
(후렴)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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