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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잡혀가버린 남자 이야기/ 안희환

안희환2 2008. 7. 29. 14:02

아내가 잡혀가버린 남자 이야기/ 안희환

 

낯선 남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급한 목소리인데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몽골 사람이었는데 한국어가 서툴러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제패로 파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겨우 내용을 파악했는데 몽골 여인 보그가 잡혀서 보호소에 갇혀있다고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보그는 브로비의 아내인데 둘 다 몽골 사람이고 한국에서 와서 열심히 일하면서 돈을 버는 중인데 잡힌 것입니다.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느 곳에 잡혀있느냐고 물었는데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통해서는 어느 지역을 말하는지 파악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을 바꿔달라고 했는데 알았다고 하더니 전화를 끊었습니다.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왔는데 여자의 목소리였습니다. 아까 전화했던 남자보다는 한국어가 유창했으나 여전히 어느 지역을 말하는지 알아듣기가 어려웠습니다. 수원이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소하동이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화성이라고 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수원의 출입국 사무소에 전화를 하니 몽골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화성의 외국인 보호소에 전화를 해보니 몽골 사람들 20여명이 잡혀 있는데 보그란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다시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 전화가 왔는데 이번엔 보그의 남편인 브로비였습니다. 잡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갈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차를 몰고 나가니 브로비와 두 명의 몽골 남자가 서 있습니다. 직접 대면하여 말하니 어딘지를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화성의 외국인 보호소였습니다. 아마도 아까 보호소에 전화할 때 몽골식 이름이 정확하지 않아서 그런 사람이 없다고 했던가 보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녁 8시쯤 출발한 자동차는 9시 반쯤 되어 화성의 외국인 보호소에 도착하였습니다. 브로비와 두 명의 몽골 남자는 보호소 출입구 쪽으로 가지 못한 채 어두운 곳으로 숨었습니다. 저는 보호소 출입구로 갔고 경비하는 분을 불렀습니다. 알고 있는 사람이 잡혀왔는데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경비하는 분은 면회 시간이 지나서 아무도 만날 수 없으니 내일 면회 시간에 다시 오라고 합니다. 저는 허탈한 마음으로 브로비와 두 명의 몽골 남자를 태우고 돌아왔습니다.

 

다음 날 브로비는 일 하러 나가고(일 자리 놓치면 다시 구하기 힘든 상황이니 이해함) 저 혼자 화성의 외국인 보호소로 향했습니다. 11시 40분쯤 도착을 했는데 11시 30분부터 외국인들 식사 시간이니 면회가 안 된다고 합니다. 1시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꾹 참고 1시까지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1시가 되었습니다. 면회 일정을 관리하는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몽골 여자가 잡혀왔는데 찾고 싶다고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보그라는 이름의 여자는 없었습니다. 잡혀온 날짜를 말하고 컴퓨터 화면을 통해 찾다가 보그의 얼굴이 보여 이 사람이라고 했더니 이름이 보그가 아니라 벌간(Bul Gan)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보그를 풀려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고 담당자는 심사과에 가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당장 심사과로 향했고 심사과의 담당자를 만났습니다. 사정 이야기를 다 한 후 보그(벌간)를 풀려나게 할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던 담당자는 체류 기간이 1년이 넘은 상황이기에 어렵다고 했습니다. 빠른 시일 내로 출국조치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애간장이 녹아서 어떻게든 풀려날 수 있는 길을 알려달라고 하였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힘이 빠진 채 면회소로 갔습니다. 면회소는 교도소의 면회소와 구조가 비슷했습니다. 유리로 막혀 있고 말하는 부분만 구멍이 송송 뚫려 있어서 겨우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구조 말입니다. 저를 본 보그는 한번 웃고 자리에 앉은 후 고개를 숙이더니 들지를 않습니다. 어깨를 흔듭니다. 그렇게 시작된 울음은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저도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겨우 진정한 후 보그는 제게 부탁을 합니다. 보호소에서 나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대답을 해줄 수 없는 저는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상황을 눈치 챈 보고는 또 다시 고개를 숙이고 웁니다. 저는 보그에게 남편도 함께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있으니 그렇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고 보그는 안 된다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자신은 돌아가더라도 남편은 한국에 남아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면회소에서 나온 저는 도저히 그냥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한 번 심사과 담당자에게 제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혹시 없느냐고 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사과로 향한 저는 담당자를 찾을 수 없습니다. 심사과의 다른 직원은 아까 제가 만난 담당자가 면담하러 들어갔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저는 연락을 해달라고 요청을 했고 직원은 전화를 한 후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심사과 담당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조바심이 나서 로비를 왔다갔다 걸어 다녔습니다. 심사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직원은 담당자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연락을 해달라고 했더니 전화를 합니다. 밖에 나가서 기다리는데 심사과 담당자는 한참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저는 심사과로 들어가서 언성을 높이려다가 부탁하는 입장이라 꾹 참았습니다.

 

마침내 심사과 담당자가 나타났습니다. 저는 정성을 다해 부탁을 했습니다. 부부가 함께 왔는데 아내만 잡혀서 강제 출국당하면 그 가족이 너무 불쌍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든 할 테니 도와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담당자는 자기로서도 방법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진지하게 답하는 담당자의 모습을 보니 핑계를 대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고맙다고 인사를 한 후 돌아왔습니다.

 

그 날 저는 브로비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습니다. 보그가 곧 강제 출국조치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차마 꺼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다음 날에도 저는 도저히 전화할 수가 없었습니다. 브로비가 애타게 제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는 있지만 소심한 저로서는 전화를 건다는 것이 너무나도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 날 브로비가 직접 찾아왔습니다. 사정을 알게 된 브로비의 얼굴은 어둡기만 합니다. 저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냥 브로비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눈물을 글썽이는 브로비의 모습에 제 마음이 천 갈래로 찢어집니다. 브로비와 보그가 불법체류자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을 돕는 것이 잘못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딱한 그들의 모습을 보고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평소에 작은 것에나마 도움을 주려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저는 브로비와 보그를 도울 길이 없으니 속 상합니다.

 

지금도 브로비와 보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