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통곡하는 이유/ 안희환
제가 지만이를 처음 만난 것은 5년 전쯤입니다. 구로 6동에서 구로 4동에 있는 집으로 오는 길이었습니다. 빠른 길은 두산 아파트를 가로지르는 길이었는데 두산 아파트 안에는 하나뿐인 상가 건물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3층 건물인데 꽤 많은 상가들이 있었고 나는 1층에 있는 슈퍼마켓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슈퍼마켓 안에서 아이들 다섯 명이 무릎을 꿇은 채 손을 들고 있었습니다. 4명가량은 초등학생으로 보였고 한명만 중학생 정도로 보였는데 중학생 정도로 보였던 아이가 바로 지만이입니다. 왜 이러냐고 그냥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하지 않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일단 물건을 사고 돈을 지불하였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이 아이들 왜 이러고 있어요?”
주인아저씨는 씩씩거리며 대답합니다.
“이 놈들 아주 나쁜 놈들입니다. 가게 물건 훔쳐가다가 걸렸어요. 이놈들 이번이 처음이 아닐 겁니다. 전에도 물건들이 종종 없어졌어요”
“이 아이들이 그러는 걸 보셨나요?”
“아뇨. 하지만 뻔합니다. 이 나쁜 놈들 짓이 틀림없어요”
이야기를 하는 동안 흘깃 아이들을 보니 아이들의 얼굴은 그야말로 죽을상이었습니다. 게다가 손님들이 와서 그 아이들을 이상한 듯이 쳐다볼 때면 아이들의 얼굴이 한없이 일그러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하다. 이 아이들은 여러 사람들이 들락거릴 때마다 계속 마음의 상처를 받을 거다. 이미 충분한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한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돈 문제가 걸렸다고 생각한 나는 주인아저씨에게 이 아이들 때문에 얼마 정도 피해를 보신 것 같으냐고 물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만 원가량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얼른 주머니에서 거금 만원을 꺼냈고 주인아저씨에게 주면서 말했습니다.
“아저씨. 이 아이들 내가 아는 애들이거든요. 제가 데리고 가서 따끔하게 혼내줄게요”
“아니. 이렇게 돈까지 주실 필요는 없는데요. 정말 아는 애들이세요? 그렇다면 확실하게 가르쳐 주세요”
“예. 그러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받으시라니까요”
주인아저씨는 못이기는 척 하시며 돈을 받고 아이들에게 호통을 치듯이 말했습니다.
“이 녀석들아. 어서 가. 또 그러기만 해봐라”
나는 아이들에게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눈치를 보며 손을 내린 아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따라 나왔습니다. 아파트 저쪽으로 가서 입구의 계단에 먼저 걸터앉았습니다. 아직 그대로 서 있는 아이들에게 앉으라고 하니 쭈뼛거리며 앉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젠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하며 계속 아이들을 안심시켰고 아이들은 그제야 조금 편안해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앉아서 물건 훔친 것과 상관없는 사소한 이야기들을 주거니 받거니 했습니다. 이제 나를 경계하는 아이들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일 나이가 많은 아이(지만)가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아저씨 난 훔치지 않았어요”
“그래? 그런데 왜 너도 벌을 서고 있었냐?”
“얘들 하고 같이 있어서 그래요”
“그러면 아저씨한테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그랬어?”
“말했어요. 그런데 그 아저씨가 날 보고 더 나쁜 놈이래요. 내가 얘들한테 훔치라고 시켰데요”.
지만이는 흥분을 했는지 얼굴이 발개진 상태로 언성을 높였습니다. 무척 억울해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는 다른 아이들에게 지만이의 말이 사실이냐고 물었고 아이들은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거짓말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순간 내 마음 속에 지만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만이가 상처를 많이 받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을 함과 동시에 나는 지만에게서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너 많이 속상했겠구나?.”
그때였습니다. 지만이가 울음을 터뜨린 것은... 자존심이고 뭐고 다 팽개친 채 지만이는 소리 내서 엉엉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그래 실컷 울어라. 그래야 감정의 앙금이 다 씻겨나가지’. 나는 지만이의 등을 두드려주었습니다. 지만이는 한참을 그렇게 울다가 그치고는 창피하단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것이 지만이와 나의 첫 만남입니다. 그 후로 나는 집 근처를 오가다가 지만이를 종종 볼 때가 있었는데 지만이는 반갑게 안사를 하곤 했습니다. 나는 그런 지만이를 불러서 아이스크림을 사주기도 했고요. 시간이 많이 지났고 이제 저는 두산 아파트 사이로 난 길로는 전처럼 자주 다니지를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지만이를 만날 일이 없어졌습니다.
이제 지만이는 고등학생이 되었을 것입니다. 2학년 아니면 3학년...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아이의 마음속에 어른들에 대한 불신감이 뿌리내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사실 그때 지만이가 한 말이 진실이었다고 100% 증명할 수는 없지만 눈물로 자신의 결백을 호소한 지만이를 믿어준 것은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아저씨로 인해 자기를 믿어주지 않는 어른이란 생각이 뿌리내리기 전에 그 뿌리를 뽑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적어도 덜 깊이 뿌리내리도록 할 수는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 땅의 어린 아이들이 어른들의 보호와 사랑 속에서 이 땅을 지탱할 기둥들로 잘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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