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되면 화가 나지 않는다/ 안희환
오래된 제 자동차는 종종 반항을 합니다. 주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행동해서 저를 난처하게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도 저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모릅니다. 창피하고 민망하고 답답하게 만든 것입니다. 홧김에 자동차를 걷어차려다가 발만 아플 것 같아서 그만 두고 말았는데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녁 10시 40분경 차를 몰고 집으로 출발하였습니다. 50m도로(왕복 8차선?)의 2차선을 타고 왼쪽으로 가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동차의 시동이 꺼졌습니다. 열쇠를 넣고 돌려보지만 부르릉 소리만 나고 시동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시동이 걸렸고 저는 차를 몰아 왼쪽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시동이 꺼지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길가로 제 자동차가 가기도 전에 길 한 복판에 자동차가 버티고 선 채 움직이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곧 이어 난리가 벌어졌습니다. 뒤에서 오던 차들이 빵빵 거리는 것이었습니다. 뒤에서 오던 차들의 운전자들이 옆으로 지나가면서 창문을 내리고는 화를 내며 왜 거기에 차를 세우고 있느냐며 소리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화를 내도 제게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도로 한 복판을 막고 있는 제 잘못이 크기 때문입니다. 저는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들면서 차에 시동이 걸리지 않아서 그런다고 설명했습니다. 운전자들은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뭐라 하지도 않고 지나갑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을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지나가는 모든 차들의 운전자에게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고 저는 결국 계속 욕을 얻어먹었습니다.
저를 더 곤란하게 했던 것은 오른쪽 길에서 빠져나오는 자동차들이었습니다. 도로 변에 주차해놓은 차들 때문에 오른편에서 나오는 차들이 제 차가 선 곳을 통과해서 가야 하는데 제 차가 가로막고 서 있는 바람에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보험사에 연락을 했지만 오기 전까지는 도로 한 복판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기에 운전자들이 화내는 것을 고스란히 다 받고, 빵빵거리는 것 다 듣고, 욕하는 것 다 참으면서 기다렸습니다.
수 없이 시동을 걸어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던 상황에서 보험사 통해 연락된 견인차가 오기 전에 다시 한 번 시동을 걸었는데 다행히 차가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일상적으로 걸리던 시동이 이렇게 반가운 것인 줄 몰랐습니다. 더 감사한 것은 더 이상 시동이 꺼지지 않아서 집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 단순하면서도 귀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제 차가 도로 한 복판에 서 있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이들은 계속 화를 내고 빵빵거린 반면, 제 처지를 이해한 사람들은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고 하는 점입니다. 상대방의 처지에 대한 이해가 동일한 사건과 상황 앞에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모든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화를 내며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현상이나 사건 자체 때문이 아니라 상대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상대가 그렇게 말하며,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면 할수록 분노는 안타까움으로, 짜증은 긍휼로 바뀔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마음을 닫고 보면 어느 누구도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의지적으로 상대에게 다가가며,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상대방을 점점 알아가고자 노력할 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기고 이해하는 부분이 많아질수록 용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도로 한 복판에서 시동 걸리지 않는 자동차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이해가 되면 화가 나지 않는다”는 영양가 있는 결론 하나를 경험으로 도출해낼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족합니다. 더 많이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지금보다 더 많은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일진대 그를 위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지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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