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사랑이야기

십년 만에 먼 곳으로 가족여행을 하다/ 안희환

안희환2 2008. 5. 7. 14:33

십년 만에 먼 곳으로 가족여행을 하다/ 안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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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아내와 함께 여행을 가본 적이 없습니다(개인적으로는 있어도). 아이들이 태어난 후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가본적도 없습니다. 10년이 된 시점에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반성하는 마음이 들었고 느닷없이 아내에게 여행을 가자고 했습니다. 일요일 저녁에 출발하고 여행지에서 잠을 잔 후 그 다음 날(어린이날) 여행지 주변을 돌아보자고 한 것입니다.

 

아내는 좋다고 합니다. 경주에 가보고 싶다며 장소까지 말합니다. 경주에는 역사적인 유적지가 많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경주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그러자고 했습니다. 저로서는 신라 시대의 유물들을 보면서 공부할 수 있고, 아이들에게는 좋은 교육의 기회가 될 수 있으며, 아내로서는 보고 싶어 하는 곳이기도 하니 일석 삼조였습니다.

 

5월 4일 오후 6시경 저는 아내와 아이들을 태우고 경주로 향했습니다. 길치인 저는 네비게이션의 자상한 인도를 받으며 운전을 했는데 경주가 생각보다 먼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네비게이션 하단에 운행예상 시간이 나오는데 4시간 50분이나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고속도로 위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잠들고 나니 약간 지루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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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시즌 유스텔)

 

도로가 밀리지 않은 덕에 생각보다 이른 시간인 11시경에 경주에 도착하였습니다. 포시즌유스텔을 예약해 놓았었는데 방 하나에 6만원(4인실 기준)이었습니다. 모든 방이 다 차 있는 상태였고 제가 예약한 방만 비워져 있었는데 그 방을 쓰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서 유스텔 쪽에서 운전 중이던 제가 전화까지 했었고 저는 곧 도착한다고 대답했었습니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인데 미리 예약하지 않았다면 낭패를 볼 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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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유스텔에서 편하게 쉰 후 아침식사를 하고 본격적인 경주 구경을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불국사였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그 넓은 주차장이 가득 찼고 도로에도 자동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겨우 차를 세우고 불국사에 입장하였습니다. 어른 1인당 4천원의 입장료를 내야했는데 저 많은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받으니 수익이 엄청나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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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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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탑)

 

걸어 올라가는 길이 잘 꾸며진 산책로처럼 되어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는 아내와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이들은 노점상에서 사준 2000원 짜리 플라스틱 창을 들고 신나게 장난을 치면서 쫓아옵니다. 대웅전을 둘러보았고 그 유명한 삼층석탑과 다보탑을 보았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효빈이에게는 그 유물들의 이름을 암기시키느라 여러 차례 반복해서 말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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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소개글)

 

우리가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석굴암입니다. 입장권을 구입한 후 입구에 들어서고 나서도 석굴암이 있는 곳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그래도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길이 너무 예뻤기 때문입니다. 석굴암은 규모가 큰 편이 아닙니다. 아담하게 지어져 있습니다.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만들기 시작해서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는데 그 안에 본존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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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저는 어느 곳에 가더라도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다니는데 귀중한 여행 경험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업무차 가더라도 시간이 나면 주변의 유적지를 잠시 들러서 관람을 하고 글을 읽고 사진을 찍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석굴암 내부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촬영금지”라고 뚜렷하게 써 놓았기 때문입니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그 주변 환경을 열심히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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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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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왕릉내의 나무들)

 

우리가 세 번째로 방문한 곳은 신문왕릉입니다. 신문왕릉은 신라 제31대 신문왕의 능인데 한 사람의 무덤이 저렇게 크면 전국이 무덤이 되겠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주변에 서 있는 나무들이 멋졌습니다. 무덤이 없다면 아름답게 꾸며진 공원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아직 유적지보다는 노는 것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을 무덤 앞에 세운 후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점심시간이 지난 시점이라 배가 고팠던지 큰 아들 효빈이가 라면을 사달라고 했습니다. 신문왕릉 옆에는 작은 매점이 하나 있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그곳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그곳에서 컵라면을 산 후 물을 붓고 신문왕릉 입구 옆의 나무 그늘에 돗자리를 폈습니다. 서늘한 그늘 밑에서 먹는 라면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신문왕은 이 맛을 모르겠구나 하고 다시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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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

 

잘 먹은 후 기운을 내어(여행은 체력이 많이 소모됨) 다음 목적지로 출발하였습니다. 네 번째로 방문한 곳은 안압지입니다. 안압지는 인공으로 판 못인데 규모가 꽤 큽니다. 잘 지어진 정자들이 있고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연못의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불국사부터 시작해서 꽤 많은 거리를 걸었는데 다시 걷고 싶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연못을 중심으로 아내, 아이들과 함께 걸었는데 조금도 지루하지가 않았습니다.

  

안압지 여기저기에 가족 단위로 구경 온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연인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고 여럿이서 같이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거리가 가깝다면 가끔 들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장료를 내야하지만 내도 아깝지 않을 만큼 멋진 곳이니까요. 다만 제가 사는 곳에서 워낙 멀리 떨어진 곳이라 큰 맘 먹고 여행을 하지 않는 한 실현불가능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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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

 

다섯 번째로 방문한 곳은 첨성대입니다. 서서히 체력이 고갈되기 시작하였는데 저와 아내는 걷는 것이 힘겨워졌습니다. 그런데 효빈이와 효원이는 여전히 생생합니다. 역시 아이들 체력이 최고인가 봅니다. 저와 아내가 터벅터벅 첨성대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아이들은 서로 창을 가지고 뛰어놀면서 따라오니 그 체력이 부럽기만 합니다.

 

첨성대는 선덕여왕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동아시아 최초의 천문관측소입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천문대가 너무 작고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 만합니다. 규모가 워낙 작고 높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지나다니는 자동차들의 진동으로 인해 조금씩 첨성대가 기울고 있다고 하는데 소중한 문화유산을 잘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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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경주박물관)

 

우리가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국립 경주박물관입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경주박물관이 월요일에 휴관한다는 것을 알고 일정에서 빼놓았었는데 그 건물이라도 보고 싶어서 방문을 했습니다.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는데 경주박물관의 건물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둥이나 벽이나 지붕이나 연결 부분들을 살펴보며 사진을 찍었는데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덤도 훌륭했습니다. 야외에 전시된 석탑들, 발굴해낸 과거 역사의 잔해들, 불상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군데는 실내도 관람할 수 있었는데 한곳은 불상들이 전시된 곳이고 다른 한곳은 신라의 금관이 전시된 곳이었습니다. 휴관일이라고 들르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그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찔해졌습니다. 박물관에 들른 것은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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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톨게이트) 

 

박물관을 나오니 시간이 이미 6시가 넘어있었습니다. 알찬 관람을 했다는 생각에 배가 불렀습니다. 다음 날 아내는 출근을 해야 하고 아이들은 학교를 가야하기에 서둘러서 서울로 향했습니다. 영동고속도로가 많이 막힌 덕에 고생을 했는데 피곤한 상태의 아내와 둘째 아들 효빈이가 체하고 말았습니다. 저도 몸이 많이 피곤한 탓에 눈을 비벼가며 운전을 해야겠고 큰 아들 효빈이는 차 안에서 곯아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12시가 넘었습니다. 아내는 오는 도중 차 안에서 손을 땄기에 집에 와서는 약만 먹었고, 효원이는 집에서 손도 따주고 약도 먹게 하였습니다. 아내는 많이 힘들었던지 다시는 안 간다고 합니다. 며칠만 지나면 마음이 바뀌겠지만요. 몸이 너무 피곤한 덕에(하루 종일 운전하고 걸었더니) 누워있어도 쉽게 잠이 오지는 않았지만 하루 일과를 되새겨보니 뿌듯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