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효막심한 사람이다/ 안희환
이번 주간 큰 아들 효빈이의 숙제 가운데 하나는 글라이더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효빈이와 효원이(둘째)를 차에 태우고 문방구에 가서 글라이더를 샀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저녁 9시 경이었습니다. 글라이더 내용물을 다 꺼내놓고 만들어주려고 하는데 그게 만만하지를 않았습니다. 도면을 펼쳐놓고 보는데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도면만 놓고 끙끙대다가 점점 그 의미를 알 수 있게 되자 글라이더 조립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조립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30분이면 조립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1시간이 지나도록 조립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그쪽 방면에 재주가 없는 모양입니다. 공연히 옆에서 붙잡아 주고 있던 효빈이에게 제대로 잡으라며 잔소리를 했습니다.
오후까지 피아노를 가르치고 그 후에 학교에 가서 교수에게 피아노를 배운 아내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효빈이는 엄마를 보자 반가워했습니다. 해방이라 생각한 모양입니다. 효빈이 대신 아내가 글라이더 조립을 도와주었고 그것이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글라이더는 점점 그럴듯한 모습을 갖추어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글라이더를 다 완성하였는데 시간을 보니 12시가 다 되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다리가 저렸습니다. 허리가 아팠습니다. 눈이 침하였습니다. 가뜩이나 요즘 몸이 안 좋은 상태인데 모처럼 쉬려고 하는 저녁 시간이 스트레스를 받는 시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글라이더를 제대로 조립했다는 것이고 조립된 글라이드를 보면서 효빈이가 참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가만 보면 부모라는 존재는 자녀들에게 상상할 초월할 만큼의 에너지와 시간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제 주변에 있는 비슷한 나이대의 부모들을 보면 자녀 사랑이 그렇게 극진할 수가 없습니다. 저라는 사람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제가 아내로부터 아이들 좀 챙길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질책을 듣겠습니까? 그런 질책을 듣는 저 역시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사랑스러우니 다른 이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아이들을 향해 쏟는 시간과 에너지의 반의 반 만큼만 부모님들에게 쏟을 수 있다면 효자 소리를 듣겠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아이에게 글라이더를 만들어 주기 위해 세 시간이나 끙끙대고 있었는데 정작 부모님들과는 한 시간 가량도 제대로 대화하지 못하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아이들 영양을 위해서는 신경을 쓰면서 부모님의 영양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원래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할 수밖에 없는 법이라고 둘러대 보지만 곧 그런 생각의 궁색함을 알게 됩니다. 결국은 관심 부족이요 사랑 부족이요 효심 부족일 뿐 그 어떤 것으로 변명하거나 핑계 댈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결론은 하나입니다. 저란 사람은 불효자식이라고 하는 것. 부모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갚을 줄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
이런 반성을 이번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계기를 만나면 종종 이래선 안 되는데 하고 돌이켜보면서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저 자신입니다. 이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후회만 반복하다 부모님을 떠나보내면 안 되는데 왜 이러는지 한심하기만 합니다. 기다려주지 않으시는 부모님임을 기억하면서 아이들에게 들이는 시간과 정성의 반만큼이라도 부모님을 위해 사용해 보리라고 결심해보지만 결심만 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부터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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