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쥐보다 못한 놈아!/ 안희환
자작나무님의 글입니다. 자작나무님은 그 동안 제가 쓴 글에 대해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분인데 정작 자작나무님의 글을 올리진 않아서 궁금하던 차에 이번에 올린 글을 보고 그 진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글이 가슴을 울리기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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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쥐보다 못한 놈아!/ 자작나무
- 가슴을 치며 [도토리예배당 종지기 아저씨]를 읽고 큰 한숨을 지으며 -
나는 후회한다. 어느 淡泊한 후배 덕분에 [강아지 똥]을 인터넷으로 먼저 읽은 것을. 그 후배의 깊은 속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사실 인터넷으로 볼 글이 아니지 않는가? 분명 童心으로 돌아가 눈을 씻고 그림동화책으로 먼저 읽었어야 한다. 난 동심을 끌고 오기 힘들어 一抹의 양심 하나 끌고 와서 다시 읽어야했지만.
사실 그의 글과 삶을 함께 읽으며 가슴 한번 크게 치지 않거나, 혹 눈물 글썽이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이오덕 선생도 그를 대할 때마다 “사람 같지 않게 살아가는 나 자신이 한없이 미워진다"며 자책하곤 했다지. 우리네 예수쟁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참으로 고마운 것은 그의 삶은 흉내조차 낼 수 없지만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를 마음 속 깊은 곳에 모시기로 한 사실이다.
늑막염, 폐결핵, 방광결핵, 신장결핵 등의 병마에 할퀴어 더 이상 몸을 간수하기조차 힘드시던 서른 한 살 나시던 해에 안동 조탑리에 흘러들어 예배당 종지기로 정말 17년 동안 교회에 기거하며 종을 쳤다. 선생은 추운 겨울에도 맨손으로 종을 쳤다. 교인들이 장갑을 사다드려도 장갑을 끼지 않았다. "장갑을 끼고 종을 치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종소리가 갈 것 같지 않다"고...
나도 그런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가 되기로 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웃을까 울을까? 종지기 아저씨와 생쥐의 대화(15 꼭지)에 몰래 끼어 들어 숨죽이며 귀동냥하던 어느 대목에선가, 어느 行間에선가부터 난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슬퍼지기 시작했다. 이 종지기가 분명 세상을 뜨고야 말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실 그것은 일종의 前兆였고, 기시감같은 것이었다.
난 종지기가 원했던 몰약을 생쥐가 가져다 줄 줄 알았다. 주문을 외워 달나라와 천국에도 갔다 왔듯이 그렇게 애굽에도 다녀오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종지기가 죽으면 그 몰약을 온 몸에 다 뿌려주고 종지기가 풀밭에 조용히 누워있게 할 줄 알았다. 산들바람과 온갖 나비들의 춤을 보며 영원히(아이구 이 우매한 놈아).
그런데 그 녀석이, 그 고얀 녀석이 먼저 죽다니. 그러면서 하는 말, "죽는다는 것은 싸움을 그치는 것"이라는 禪答을 남기기까지 하다니. 그럼에도 그 녀석은 한 주간이나 건넌방 방바닥에 널부러져 있을 수밖에 없었지.
그리곤 길 건너 사과나무 밭에 내동댕 쳐졌지만 그곳에서 그는 "바람이었던 것은 바람으로 돌아가고, 물이었던 것은 물로 돌아가고, 흙이었던 것은 흙으로 돌아" 가고 만다. 그리곤 죽은 건 망가져야 하는 것이라고, 망가져서 산산이 흩어져 없어져야한다고 하여 위에서 말한 내 꿈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후려친다.
어리석은 나는 종지기가 그 몸뚱아리를 썩지 않게 그대로 있었으면 하고 이해했지만, 사실은 바람으로 흙으로 물로 돌아가야만 씽씽 날기도 하고, 강물 따라 흐르기도 하고, 빗방울이 되어 꽃잎에 내리고, 겨울에는 눈이 되어 내리기도 하여야 하는 것이라는 생쥐 생각의 근처에도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생쥐 귀신이 되어 '사람들'에게 훈계한다. "사람들은 똑똑해서 그런지 어리석어서 그런지 싸움을 해도 쓸데없이 싸우고 있다고”. '사람들'은 위 아래가 너무 복잡하다고, 복잡한 건 모두 가짜인 것도 모르고 쯧쯔쯔 하며.
급기야 예수쟁이에게까지 날선 칼을 던진다. 기어코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쏟는다. 진짜 '쟁이'란 무엇인가 쓸모 있는 것을 만드는 사람인데 예수쟁이들은 예수를 만들지 못하고 예수를 팔고 있다고... 예수쟁이는 모두가 예수가 되는 것 뿐, 다른 그 무엇도 덧붙여서는 아니 되지 않느냐고.
하긴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모르는 일도 있었지. 종지기 아저씨와 생쥐가 하루는 주문을 외워 하늘로 날았다가 하나님을 만나러 천국까지 가게된다. 그렇지만 천사의 기막힌 말에 난 기가 막혔다. "한국에서 오셨으니 한국의 하나님을 만나시겠지만, 그 가운에서도 서울 하나님이 계시고, 시골 하나님이 계시고, 서울 하나님만도 수백이 넘는데 대체 어느 하나님을 만나시렵니까?" "이 하나님은 서울 ××교회에서 만들 분인데, 성도들이 밤낮으로 몰려와서 졸라대어 몹시 시달리고 계십니다."
생쥐는 종지기에게 어서 죽으라고 재촉한다. 그래서 함께 바람도 되고 구름도 되고 빗방울도 되어 함께 춤추고 놀자고 희롱한다. 종지기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바람이 되어 날고 있다고 확신을 주면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우겨대는 세상에서 그의 초청은 허황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스페인의 산타 마르타 축제를 보라. 성 마르타를 기리는 마을 순례에는 행사에 참여한 개인들이 준비한 관을 맨 행렬이 따른다. 여기에는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가 들어간다. 소원을 바라는 자가 그 관에 들어간다. 죽어야 살기에 죽는 것이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자기가 제물이 될 수밖에 없다. 죽음을 생각하는 축제, 삶과 죽음이 조금도 어둡지 않게 공존하는 축제가 된다(KBS 문화의 질주 6편, 축제하는 인간 중).
생쥐나 종지기 아저씨는 그렇게 삶과 죽음을 거침없이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그가 죽었다지만 난 죽은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살고 있다지만 죽은 것으로 생각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도 그렇게 한번쯤은 죽어야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 그래야만 바람도 구름도 비도 눈도 된다. 산산이 망가지고 부서져야만 그 곁에서 노란 꽃다지가 피어난다.
아, 내가 죽는다한들 샛노란 민들레 한 송이로 피어난 '강아지 똥'처럼 어떤 생명 하나라도 꽃피울 수 있을까?
책을 읽고 나니 갑자기 말문이 막히는 것은 "이 가운데 참된 뜻이 있으나, 말하려 하니 이미 말을 잊었네"(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 도연명)랄 수 밖에 없다.
그나저나 생쥐를 먼저 잃은 종지기 아저씨는 어찌 사시는지 이 봄, 만사 제치고 꼭 가보아야겠다. 간 길에 생쥐 죽어 피어난 노란 꽃다지도 보고 강아지 똥 죽어 피어난 민들레 한 송이도 꼭 보아야겠다. 아, 그래야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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