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가 울었던 이유는?/ 안희환
민영(옥민영)이는 얼마 전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아직 병중에 계실 때 대전에 있는 병원까지 병문안을 갔었는데 결국 병을 이기지 못해 돌아가신 것입니다. 아버지가 입원해 있을 때 눈가에 눈물을 머금고 살던 민영이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더 큰 슬픔에 빠져버렸습니다. 아버지 생각이 날 때마다 보고 싶은 그리움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 어린 학생도 아니기에 감상에 빠진 채 놀고 있을 수 없던 민영이는 대학병원에 이력서를 냈고 계약직으로 6개월간 일하다가 마침내 정식 간호사로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 배치된 곳은 수술실이었는데 너무 엄격한 곳이라 마음이 여린 민영이는 무척이나 힘들어했는데 최근 들어 기운을 차렸고 차츰 병원에 적응해 나갔습니다.
민영이는 바탕이 참 착합니다. 사실 민영이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아픔을 주었던 분입니다. 아내와 자녀들을 놔둔 채 다른 살림을 차렸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입었던 가족들은 아버지요 남편이 입원해있을 때 마지못해 간병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민영이는 남달랐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끔찍하게 생각하면서 보살피고자 했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민영이는 펑펑 울면서 말했었습니다. 이제 직장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돈도 벌게 될 것인데 그러면 아버지에게 좋은 것을 사드릴 수 있는데 그전에 돌아가셔서 너무 속상하다는 것입니다. 민영이는 자신이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이제 자신이 그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되었다며 좋아했던 차이기에 더욱 마음 아파했었습니다.
수술실에서 일하던 민영이는 일방 병동으로 인사이동이 되었습니다. 수술실보다 좋은 점은 수술실처럼 고압적이거나 엄격하지 않다는 것이고, 수술실보다 나쁜 점은 2교대에서 3교대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병동 간호사로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말하는 민영이의 얼굴을 보니 전보다 자신감이 있어 보였는데 이제 기운을 차렸나보다 하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민영이는 저에게 병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팔에 화상을 입은 환자가 있었는데 그 환자의 팔에 주사를 놓으려다가 울고 말았다고 합니다. 실은 아버지도 팔에 화상을 입었었는데 화상 입은 환자의 팔을 보면서 아버지가 떠올랐던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또 다시 우는데 눈물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그 모습을 보는 제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듯 했습니다.
민영이를 보면 차라리 착하지 않은 사람이 세상 살기는 더 좋을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마저 듭니다. 가족들에게 고통을 준 아버지이니 복수심을 가지고 있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그냥 마음을 비우는 정도라면 지금의 민영이처럼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워 울고 또 울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에게 해드린 것 없어 가슴 아파하며 몸부림치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20대 초반의 어린 여자아이의 가슴앓이를 보면서 생각하는 바가 많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나도 불효자식이란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무딜 대로 무디어진 제 영혼의 무감각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 눈물마저 메말라서 여간해서는 울지 못하는 제 자신을 민영이 때문에 발견하게 됩니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좋은 남자를 만나 한 가정을 꾸릴 때까지 민영이가 너무 상처받지 않고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민영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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