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사랑이야기

엽기적인 집을 소개합니다/ 안희환

안희환2 2008. 1. 21. 18:21

엽기적인 집을 소개합니다/ 안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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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집 근처에는 아가씨 둘과 중학생 한명을 둔 어느 중년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제가 그 집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그 집이 꽤 시끄럽기 때문입니다. 주로 그 집 주인 아저씨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그 집이 요란해지는데 무언가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와 여자들의 소리 지르는 소리가 어우러져 밖으로 요란하게 새나오는 것입니다.


어느 날 그 집 안을 우연히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는데 집안의 사면 벽이 시멘트벽이었습니다. 도배를 한 벽지가 다 벗겨졌는데 그것을 재도배하지 않은 채 그냥 살아가는 모양이었습니다. 어두운 조명에 벽지가 뜯겨져나간 시멘트벽은 흉물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저렇게 해놓고 살면 어린 아이의 경우 정서에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은 그 집 바깥벽에 종이가 붙어있었는데 수도 요금을 내지 않아서 수도요금을 내라고 독촉하는 용지였습니다. 계속 수도 요금을 내지 않으면 급수를 중단하겠다는 내용도 들어있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전기세를 내지 않아 전기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용지도 붙어있었습니다. 지나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붙여놓았기에 읽어버렸는데 나쁜 짓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찜찜해졌습니다.


그 특이한 집 아저씨와 우리 집과는 특이한 인연으로 엮어지게 되었는데 제 아내가 그 아저씨 때문이 너무 놀랄만한 일을 겪은 것입니다. 제가 없는 어느 날 저녁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빨리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소리가 너무나도 다급하였습니다. 나중에 사연을 알고 보니 그 아저씨가 술을 잔뜩 마신 채 우리 집을 자신의 집으로 알았는데 문을 계속 두드린 것이었습니다. 안에서 제 아내가 다른 집이라고 이야기를 해도 막무가내였다고 합니다.


그 사건 이후에 아내는 빨리 다른 동네로 이사 가자고 하였습니다. 저에게 있어 그 아저씨는 이제 특이한 아저씨 정도가 아니라 우리 집에 피해를 입히는 아저씨가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아저씨는 그 후로 딱 한 번 더 그런 엉뚱한 행동을 하고 그 이후로 민폐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이사를 가고 싶다는 아내의 요청도 점점 사그라졌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 5년 이상 살면서 그 아저씨 부부도 잘 알게 되었고 그 두 딸과 중학생인 남자 아이도 알게 되었습니다. 두 아가씨와 중학생 남자 아이는 인사도 잘 했고 말도 싹싹하게 했는데 문제는 그 집 자녀들의 모습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밤늦은 시간에 돌아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엄청난 액수의 휴대폰 요금으로 인해 어머니와 싸우는 소리를 종종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정도 액수의 돈이면 벽지를 새로 바르고도 남을 텐데 그냥 놔둔 시멘트벽을 스쳐지나가며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 큰 액수의 휴대폰 비용이면 수도세나 전기세도 능히 낼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요금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 모자랐는지 휴대폰도 자꾸 바뀌었습니다. 최신형이 나오면 교체하는 모양이었습니다. 배터리 충전기가 남아돌게 되자 여러 개를 묶어서 밖에 버렸는데 마침 충전기가 필요했던 제가 가져다 사용하였습니다.


이웃집 사람을 언급하는 것이기에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저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글로 남깁니다. 그 부부나 자녀들이 특별히 나쁜 사람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살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최소한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면서 그 남은 것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하는데 할 것은 안 하고 안 해도 되는 것에 사치하는 모습을 보니 갑갑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집이 다른 이에게 피해를 끼치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집 주인이기에 전세를 준 집이 있는데 집이 압류에 걸린 상태이고 그 덕분에 새로 그 집에 세를 얻으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현재 세를 사는 사람은 집을 빼달라고 하는데 그 아저씨는 요지부동인 것입니다. 1000만원 압류 걸린 것이 풀리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수 없고, 그렇다고 경매를 붙이자니 그 아저씨네가 불쌍해서 못하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제 속의 갑갑함이 드디어 폭발 직전의 상태에 도달하고 말았습니다.


요즘 그 집에 대해 가급적이면 신경을 끓고 살려고 합니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