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사랑이야기

선생님이 판자촌에 찾아오신 이후/ 안희환

안희환2 2008. 3. 1. 16:42

선생님이 판자촌에 찾아오신 이후/ 안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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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한 선생님이 담임을 새로 맡았는데 맡은 아이들 중 한 명이 무척 지저분하고 수업에 집중도 하지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사실 아이에게 특별하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 선생님 생일이 되었을 때 아이들이 선물을 하나씩 가지고 왔는데 이 지저분한 아이도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열어 보니 쓰다 만 향수하고, 알이 떨어져 나간 목걸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다음 날 그 향수를 뿌리고, 목걸이를 목에 건 채 학교에 갔습니다. 아이의 성의를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 날 수업이 다 끝났는데 다른 날 같으면 부리나케 집으로 도망갔을 이 아이가 선생님 옆으로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 말을 하고 쏜살같이 도망쳤습니다. “선생님한테서 엄마 냄새가 나요.”


선생님이 사연을 알고 보니까 그 아이는 일찍 엄마를 잃고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아이였습니다. 엄마가 쓰던 향수와 목걸이를 선생님에게 주고 나서 그 냄새에 엄마 냄새가 난다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사정을 알고 난 선생님은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후로 선생님은 그 아이에게 특별하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점차 아이 얼굴이 밝아지고 아이의 성격이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선생님 앞으로 편지 한 통이 왔습니다. “선생님, 제가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 자리에 빈자리가 있습니다. 어머니 자리입니다. 선생님이 오셔서 그 자리를 채워주시기를 원해서 이렇게 편지를 드렸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문득 떠오르는 선생님 한 분이 계십니다. 제 기억으로 이강국(?) 선생님이셨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의 선생님으로 기억하고 있고요. 그 선생님은 남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처럼 자상한 면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조용한 어투에 행동도 차분하셨는데 말을 많이 아끼시는 분이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저는 중학생이 되었고 커다란 교통사고를 만났습니다. 집이 가난해서 판자촌에 살았고 몸은 교통사고로 한없이 약해졌고 병원신세를 오랫동안 진 덕에 학교를 일 년 쉬었고 후배들과 공부를 해야 했는데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강국 선생님이 제가 살고 있는 판자촌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차가 들어오지 않기에 뚝길을 한참 걸어오셔야 하는데 그 길을 걸어 우리 집으로 오신 것입니다.


사실 그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우리 집에서 무엇을 대접했는지도 전혀 생각나지 않습니다(대접할 것도 없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 선생님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호리호리한 체형만이 가물거릴 뿐입니다. 그러나 그때의 고마웠고 가슴 뭉클했던 느낌만은 여전히 제 마음 속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그 시간의 추억을 떠올릴 때마다 그저 고마운 마음이 가득해집니다.


한 분의 선생님에게 많은 아이들이 맡겨지고 그 많은 아이들을 일일이 챙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있어 선생님의 말 한 마디, 표정 하나, 따듯한 손길 하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 될 수 있습니다. 소중한 아이들, 이 나라의 미래를 끌고 갈 기둥들을 돌보는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리며 한 아이 한 아이를 가슴에 품고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들이 되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