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사랑이야기

가출한 여중생들을 만나다/ 안희환

안희환2 2007. 11. 27. 16:10

가출한 여중생들을 만나다/ 안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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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 세 명이 교회로 찾아왔습니다. 가끔 교회에 들르는 아이들입니다. 예배드리러 오는 것은 아니고 말 그대로 그냥 들르는 것입니다. 여중생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데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들은 술과 담배는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집에 들어가는 날보다 안 들어가는 날이 몇 배나 많은 아이들입니다. 종종 남자 아이들을 덤으로 데리고 오는데 그때는 제 마음이 참으로 심란해집니다.


이 여중생들이 저를 자주 찾아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친절하게 대해주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들이 제게 돈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가끔 컵라면 사먹을 돈을 주면 그 돈으로 교회에서 컵라면을 끓여먹곤 합니다. 제가 먹을 수 있도록 누군가가 먹을 것을 가져다주면 그것을 나눠먹기도 하고요. 어제는 고구마를 쳐주셨는데 아이들 보고 먹으라고 했더니 제 것을 하나도 안 남기고 다 먹어버렸습니다^^.


어제 아이들에게 오랜만에 학교 이야기를 꺼냈습니다(자주 이야기하면 효과도 없음).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나이가 들면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요. 지금은 돌아다니는 것이 재미있고 함께 어울리는 것이 신날지 모르지면 나중에 무시당하는 삶이 될 수도 있다고요. 여중생들은 말합니다. 학교를 다닐 것이라고. 그러나 그 말을 전에도 했었는데 여전히 학교를 다니지 않습니다.


물론 아이들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계속적으로 학교에 나가지 않았는데 이제 학교에 간다고 선생님이나 다른 아이들이 환영해주진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실컷 놀기만 한 아이들이 공부를 따라가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검정고시라도 볼 생각이면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그 역시도 신통치가 않습니다.


사실 저는 그 아이들에게 강압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강제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여중생들은 제게 찾아오는 것조차 발길을 끊고 말 것입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제 입장, 도움이 제대로 되지 못한다는 생각에 마음만 끓고 있습니다. 청소년 보호시설 같은 곳이 있지만 별 효과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그런 곳에 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준 것 중 하나는 제가 중학교를 다닐 때 같은 학년이던 다른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불량서클이라고 해도 좋을 모임을 만들어서 큰소리치고 다니던 친구들인데 그 중 몇몇 친구들이 학교를 그만 두고 말았습니다. 그 중 한 친구를 세월이 지난 후 만난 적이 있는데 중학교도 못나온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후회하는 소리를 했습니다. 어디를 가도 대접받지 못하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해준들 얼마나 영향력을 미치겠습니까마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제 입장이기에 부질없는 짓을 되풀이하곤 합니다. 한때 아내는 그 여중생 중 특히 어려운 한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었습니다.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목사의 사모로서, 두 아이의 엄마로써, 뒤늦게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지금도 매일 파김치가 다 되는데 다른 아이까지 보살필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고구마를 다 먹고 참새처럼 재잘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던 여중생들은 바람처럼 빠져나갔습니다. 조만간에 다시 올 것입니다. 혼자 올 수도 있고, 셋이 함께 올 수도 있고, 더 많이 데리고 올 수도 있고, 남학생들과 같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따듯하게 대해주고, 먹을 것 있으면 나눠먹고,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다시 돌아가게 해야 한다는 것이 서글픕니다. 어떻게 해야 구체적으로 도울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