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이나 사기를 당했다고??/ 안희환
오늘은 한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 청년의 이름은 우성은입니다. 저는 성은이를 21살 때 만났습니다. 용인대학교에서 유도를 공부하고 있다가 좋지 않은 사연이 있어서 쉬고 있는 상태이고 서울에 와 있기는 하지만 먹고 살길도 막연해서 찾아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워낙 잘 속는 스타일의 저인지라 또 실수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성은이가 딱해 보였고 아직 어린데다가 순진해 보이는 얼굴에 마음이 움직여 조금이나마 돈을 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작은 개척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폐지도 주워다 파는 등 어려운 형편이었기에 그렇게 돈을 주는 것은 큰 부담이었지만 선뜻 돈을 내준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주변 사람들은 저를 나무랐습니다. 아직 어린 학생들도 사람들을 잘 속이는 세상인데 어떻게 성은이를 믿고 돈을 주었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이야기들을 흘려들으면서 성은이가 잘 지내기만을 바랐습니다. 그 후 성은이는 제게 나타나지 않았고 그렇게 세월은 1년 이상이 흘러갔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제게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구로구 구로6동에 위치했던 지하의 교회(쥐를 17마리나 잡아냈던)가 금천구 독산본동의 2층과 3층으로 이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전보다 넓은 공간에다가 공기까지 맑으니 저는 하늘을 날아갈 듯이 기뻤습니다. 공기 나쁜 지하에서 살다시피 하다가 쓰러졌던 저에겐 감격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은이가 다시 찾아온 것은 바로 그때였습니다. 22살이 된 성은이는 이전의 순진해보이던 얼굴을 많이 잃어버린 모습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저를 찾아왔는데 찾느라 고생을 많이 한 모양입니다. 행정구역 자체가 다르고 교회 이름까지 바꾼 상황이니 찾는데 애를 먹었을 것입니다. 성은이는 고향에 내려가겠다고 했고 저는 그런 성은이에게 차비와 식비를 주었습니다. 거금 몇 만원을 쥐어준 것입니다.
다시 세월이 많이 지났습니다. 2년이란 시간이 지나갔으니까요. 교회는 다시 한번 이전을 했습니다. 한 어려운 교회와 제가 섬기던 교회가 통합을 하게 되었는데 성도가 거의 없었던 그 교회는 건물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건물을 사용하게된 것입니다. 대신 이전에 쓰던 교회 건물은 친구가 단독목회를 할 수 있도록 내주었습니다. 제 삶은 점점 바빠졌고 성은이의 존재는 잊혀져 갔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다시 성은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목회하는 교회에 들렸는데 제가 그곳에 있는 줄 알고 찾아왔던 성은이를 우연히 만나게 된 것입니다. 성은이는 벌써 24살이 되어 있었고 유도를 한 사람이라 그런지 여전히 건장한 체격이었지만 얼굴이 많이 망가져 있었습니다. 힘들고 고달픈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2년 전 성은이는 제가 준 돈을 가지고 나간 후 열심히 살아볼 생각을 하기도 했었지만 삶의 태도가 금방 바뀌는 것은 아닌지라 잘못된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폭력 사건에 개입이 되었고 그로 인해 1년 10개월간의 감옥 생활을 했고 풀려나자마자 저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얼굴에 생긴 큼직한 흉은 칼에 맞은 자리였는데 상처가 심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싸움 도중 상대쪽에서 뜨거운 물을 다리에 부어 화상을 입은 흔적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은이를 보는 순간 마음이 아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화도 났습니다. 성은이는 제게 두 번이나 거짓말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그 점을 기억하고 있는지 미안해했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 했습니다. 마음이 어느 정도 풀린 저는 성은이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가 참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카매진 그 얼굴에서 이전에 보이던 밝은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는데 마음 한 구석이 짠 해졌습니다.
저는 성은이에게 밥을 먹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괜찮다고 합니다. 그런 성은이를 데리고 나가 토마토라는 분식집에 갔습니다. 성은이에게 무엇을 먹고 싶냐고 했더니 짜장밥을 먹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시켜준 후 저는 라면 하나를 시켜서 먹었습니다. 다 먹고 난 성은이에게 더 시키라고 했더니 괜찮다고 합니다. 신경 쓰지 말고 더 시켜먹으라고 강하게 권하니 주먹밥을 먹겠다고 해서 하나를 더 시켜주었습니다. 밥 먹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식사를 다 한 후 성은이를 데리고 교회로 향했습니다. 나중에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주머니를 뒤적거리니 약간의 돈이 있었고 진천까지 갈 수 있는 차비(2만 5천원)를 주었습니다. 연락처도 적어준 후 도착하면 연락을 달라고 했습니다. 서울 올라오는 경비는 어머니에게 받아서 올라오라고 했고 올라오면 잠잘 수 있는 곳을 마련해줄테니 열심히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성은이의 표정은 여전히 펴지지 않았습니다. 문 밖까지 배웅하는 저를 한사콘 만류하다가 안 되니 밖에서 인사를 합니다. 제가 돌아설 때까지 움직이지 않기에 먼저 돌아서서 걸었고 성은이도 제 갈 길을 갔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워낙 바보라서 또 한번 속은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한번 더 믿기로 했습니다. 속았다면 돈을 잃은 것 뿐이고 사실이라면 절박한 한 사람을 도운 것이니 후회할 것도 없습니다.
부디 내일이나 모레쯤 성은이에게서 전화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전화가 오지 않더라도 이제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다시 서울에 온다면 잠잘 곳을 마련해줄뿐더러 일할 수 있는 길도 찾아줄 생각입니다. 그렇게 해서 성은이가 잘 성장해나갈 수 있다면 제 안에 기쁨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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