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맹이들의 엄청 진지한 대화/안희환
꼬맹이들의 대화를 듣다보면 즐거운 마음에 입가가 절로 올라갑니다. 곁에서 방긋 미소 짓고 있는 줄도 모르고 진지한 아이들,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에 빠져 옆에 있는 거인의 존재를 까마득하게 잊나 봅니다. 잊혀진 존재가 되어도 좋다는 듯이 아이들의 얼굴 표정을 들여다보며 그들이 하는 이야기의 전개를 기다리는 제 모습도 우습겠단 생각이 듭니다.
영풍 문도 안에 있는 안경점에 들르기 위해 차를 몰고 가는 중이었습니다. 둘째 아들 효원이와 효원이의 친구(사실은 한 살 위의 형) 은섭이를 함께 데리고 갔습니다. 나란히 앉은 아이들은 서로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는데 제가 듣기엔 황당한 이야기들로 그 대화의 줄거리를 삼고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서로가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면서 “맞아 맞아”하고 응답을 하는 것이었는데 뭐가 맞는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갑자기 꼬맹이들의 대화에 끼어들었습니다. 은섭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섭아 너는 참 좋겠다.” “왜요.” “내가 이렇게 차에 태우고 다니잖아.” 그랬더니 은섭이는 그 말이 맞다고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렇게 말했습니다. “효원이도 태워주잖아요.” 다시 말해서 자기만 탄 것이 아니고 효원이도 탔는데 왜 자기만 좋으냐는 것입니다.
저는 정색을 하고서 말했습니다. “효원이는 내 아들이잖아. 아들이니까 당연히 태워주는 거지.” 이제 뭐라고 대답하나 궁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은섭이가 말하기도 전에 효원이가 입을 열었습니다. “저 아빠 아들 아닌데요. 저는 할머니 아들이에요.” 저는 순간 당황했습니다. 그 녀석이 지금 외할머니 손에 자라고 있기는 하지만 누구 아들인지조차 헛갈리고 있다니 충격입니다.
저는 다시 정색을 하고 말했습니다. “효원아 넌 아빠 아들이야.” 그러나 효원이는 똥고집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약간의 오기가 생긴 저는 제가 가진 힘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효원아 너 아빠 아들 아니면 차에서 차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효원이에게 말했습니다. “너 아빠 아들이야 할머니 아들이야?” 다시 침묵이 흐릅니다.
옆에서 심각한 분위기를 지켜보고 있던 은섭이가 끼어들었습니다. “빨리 대답해.” 눈치가 빠른 녀석입니다. 저는 그 여세를 몰아 한 번 더 재촉했습니다. “효원아 너 아빠 아들이야 아니면 할머니 아들이야.” “아빠 아들요.” 저는 드디어 아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동차의 주인이라는 특권을 십분 활용해서 말입니다.
효원이는 억울했던 모양입니다. 압력에 굴한 자신의 처지에 한숨을 내쉬는 것만 같았습니다. 효원이는 그렇게 잠시 침울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은섭이와의 긴박한 대화를 시작하였는데 제가 보기엔 무척 유치하지만 자기들 나름대로는 엄청 진지한 이야기들이 오고갔습니다. 문제는 또 다시 제가 그 꼬맹이들에게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고 하는 점입니다. 아~ 저는 아직도 왕따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문득 저는 어린 시절에 제 또래의 아이들과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효원이 나이일 때는 시골에서 살았는데 제 또래의 아이들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안양천 뚝방 옆의 판자촌에 살게 되었고 그곳에서 친구들이 생겼었고요. 꼬맹이들 때문에 영풍문고에 가고 오는 동안 심심하지를 않아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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