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작으면 얻어맞는다/안희환
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80)
이재수 선생님의 엽기적인 행동들을 조금 더 언급해보려고 한다. 조금이라고 하지만 상당히 더 나올 것 같아서 걱정이 생기기도 한다. 정말 많은 일화들이 떠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이런 선생님이라면 자료로 정리해서 기네스북에라도 올려야 할 분이란 생각이 든다. 입이 쩍 벌어질만한 일들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태연스럽게 행했던 이재수 선생님.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이재수선생님은 종종 중간이 부러진 야구방망이를 들고 수업 시간에 들어오셨다. 그때 함께 하지고 들어오신 것이 테니스공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야구를 참 좋아하셨던 것 같다. 그러면 테니스공과 부러진 야구방망이의 용도가 무엇일까? 부러진 야구방망이는 위협용이고 테니스공은 실제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수업 중간에 테니스공이 학생들을 향해 날아가곤 했는데 꽤 잘 맞추었던 것 같다. 가끔 엉뚱한 사람이 맞기도 했지만.
수업 중에 떠들거나 잠자는 아이들을 향해 분필을 잘라 던지는 선생님 이야기는 들어보았지만 테니스공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것을 던지는 선생님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수업시간에 테니스공 던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아니라 테니스공 던지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으니 참 희귀한 구경을 한 셈이다. 아마 그 테니스공은 테니스장 밖으로 날아가곤 하던 테니스공들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테니스부가 있었음).
이재수 선생님이 좋아했던 것 중 하나는 팔씨름이었다. 아이들은 한 명씩 앞에 나가서 이선생님과 팔씨름을 해야 했는데 문제는 그냥 팔씨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십 원씩 돈을 걸고 팔씨름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키가 작은 반면에 팔이 굵은 이재수선생님은 팔 힘이 상당했고 아직 어린아이 티를 벗지 못한 중학생들은 선생님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결국 칠판 앞의 강단 위에는 십 원짜리가 수북하게 쌓이곤 했는데 그 돈 갖다가 뭘 하셨는지 모르겠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이재수선생님은 정말 엉뚱한 것을 학생들에게 요구하셨는데 각 줄별로 밤을 제일 앞자리에 갖다 놓으라는 것이었다. 처음엔 선생님이 왜 그런 말을 하시는지 영문을 몰랐던 아이들이 그냥 밤을 갖다 놓기만 했다(일단 시키는 대로 해야 함. 안 그러면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기에). 아이들은 밤을 갖다 놓고 궁금해 했는데 결과는 정말 황당했다. 밤의 크기가 가장 작은 줄의 아이들은 다 한 대씩 얻어맞아야 했던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난리가 났다. 서로 큰 밤을 갖다 놓기 위한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밤이라고 하는 것이 한없이 커지는 것이 아닌지라 이미 있는 밤들 중 큰 밤을 고르기 위해 시장을 누비는 아이들이 있었으리라. 밤을 심사하기 전 눈대중으로 보아도 크고 작은 것이 구별이 가는지라 밤이 작은 줄 아이들은 가슴을 졸여야만 했다. 그 무슨 맘고생이란 말인가? 그깟 밤 한 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다니.
지금도 밤을 보면 옛날 생각이 난다. 불쑥 튀어나온 이재수 선생님의 주머니에 가득 차 있던 밤알들. 우물우물 무언가고 씹고 계시노라면 그것은 으레 밤이려니 생각했던 시간들. 가을철 이재수선생님이 살이 찌시면 그건 밤살이려니 생각했었는데 정말 밤을 많이 먹으면 살이 찌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올 가을에는 나도 밤을 열심히 까먹어서 밤살이나 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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