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판자촌생활

평생 잊을 수 없는 그 날/ 안희환

안희환2 2007. 5. 18. 08:59

평생 잊을 수 없는 그 날/ 안희환

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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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평생 잊을 수 없는 감격의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감격의 순간들을 몇 가지 기억하고 있다. 아마도 그 경험들은 내 마지막 호흡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때만큼은 아니어도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 중 한 가지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어려운 환경과 항상 아픈 몸의 고통을 견뎌가며 공부에 집중하던 나날이 계속 이어졌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느라 피곤하긴 했지만 그것이 내겐 더 좋았다.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음으로 인해 한 팔을 잃었다는 현실도, 날마다 몸이 아프다는 상황도, 아버지가 여전히 알콜중독자라는 사실도 잠시 내게서 떼어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머리가 점점 깨이기 시작했다. 갈수록 이해력의 범위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이 가르쳐주시는 내용들이 쏙쏙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수업 시간의 내 모습은 예전의 소극적이고 소심한 모습에서 적극적이고 당당한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런 자신의 변화를 바라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고 그 경험이 만족스러웠다.


초등학생 시절 나머지 공부하던 내가, 학원 한번 다닐 수 없었던 내가, 과외라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던 내가, 부모님들로부터 공부에 대한 격려를 받아본 기억이 없는 내가 점차 우수한 성적을 얻게 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내 삶에 변화가 있으리라는 것을 예고하는 작은 조짐이었다. 나는 더 이상 구석에 쭈그리고 있는 불쌍해 보이는 아이가 아니었다. 허물을 벗은 나비가 창공을 날듯 이제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중학교 시절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담임선생님께서 아침 조회 시간에 반에 들어오시더니 “안희환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일어났다. 선생님은 밑도 끝도 없이 나머지 학생들을 향해 박수칠 것을 요구하셨다. 학생들은 박수를 쳤고 나는 어리둥절한 채 서 있었다. 선생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교무실 앞에 가봐.”


교무실 앞에 간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당시 안서중학교는 시험을 본 후 전교 일등에서 오십 등까지의 명단을 교무실 앞에 붙여두곤 했었는데 그 첫 번째 자리에 내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이었다. 내가 전교 일등을 한 것이었다. 순간 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시간은 멈추어버렸고 그 앞에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지 모르지만 끝없는 시간이 지나간 것만 같았다. 나머지 공부하던 내가 전교 일등이라니...아무리 눈을 비벼도 첫 번째 오른 내 이름은 다른 곳으로 이사 가지 않았다.


나는 그 날의 감격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작고 초라한 아이, 살이 찌지 않아서 비쩍 마른 아이, 옷 사 입을 돈이 없어 얻어 입은 옷을 걸친 촌스런 아이, 한 팔을 잃은 후 늘 잠바를 걸치고 주머니에 다른 쪽 소매를 넣고 다니던 아이, 그 아이가 교무실 앞에서 감격에 겨워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것이다. 그 일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어떤 면에서 보면 초등학교 시절 나머지 공부하던 처자였기에 감격했는지 모른다. 내 사는 형편이 너무 가난했기에 더 의미 깊었는지 모른다. 불구의 몸이 된 상태였기에 더 가슴 벅차했는지 모른다. 계곡이 깊을수록 산등성이는 더 높아 보이는 법이니까. 그렇기에 처절한 만큼 아팠던 삶의 자욱이 감사하다. 깊은 계속 밑바닥에서 정상을 올려다보다가 그 정상을 향해 오를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