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판자촌생활

이재수 선생님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안희환

안희환2 2007. 7. 7. 12:42
이재수 선생님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안희환

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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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수 선생님의 가혹한 행위에 대해 몇 차례 이야기를 했다. 그분은 분명히 정상적인 분이 아니었다. 그 분 때문에 상처받은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 가운데는 내 동생도 들어있다. 확실하게 말하지만 그런 선생님이 강단에 선다고 하는 것이 교육의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절대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지 말았어야 할 분이 이재수 선생님이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재수 선생님을 미워할 수가 없다. 이재수 선생님에게 이를 가는 다른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로서는 이재수 선생님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재수 선생님이 내게 극진한 관심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다리를 저는 불편한 몸의 이재수 선생님은 팔이 하나 없는 내게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 마음을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몸이 아프거나 불구인 사람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내가 겪었던 서러움, 고통스러움, 외로움, 처절한 좌절감을 저 사람도 겪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그 자체로 그 사람을 향해 마음이 열리고 다가가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누군가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면 만사를 제쳐두고 쫓아가는 것이다.


물론 알고 있다. 그처럼 동병상련의 심정을 가지는 것이 건강한 사람들에 대한 배타심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마도 이재수 선생님에게는 그런 배타심으로 작용을 했던 것 같다. 그만큼 몸이 불편한 내게는 동질감이 강하게 작용하면서 따듯함으로 나타났던 것 같고. 사람은 본질적으로 자기중심적이며 나도 그 중 한 사람인지라 누가 뭐래도 내게 따듯하게 다가와 주신 이재수 선생님을 미워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이재수 선생님에게서 험악한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끔찍할 만큼의 체벌을 받아본 적이 없다. 자 모서리로 손등을 때리는 것도, 주전자 뚜껑의 꼭지로 머리를 때리는 것도, 선인장에 머리를 들이 받게 하는 것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얻어맞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 안도했던 이기적인 어린 시절이 부끄럽게 다가온다. 적어도 아이들을 부당하게 때리는 것에 대해 분노하는 마음은 있었어야 하는데 말이다.


내가 이재수 선생님을 미워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영어 공부에 대한 부분이다. 매 시간마다 두툼하게 영어 공부할 내용을 복사해 오신 이재수 선생님은 그것을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영어를 가르쳤다. 나는 최선을 다한 예습과 복습으로 그 내용을 다 소화할 수 있었는데 그 덕분에 상당한 속도로 실력이 향상되었다. 문법이나 독해에 대한 기초공사를 중학교 시절에 확실하게 다질 수 있었던 것이다.


세월이 지난 후에 따로 문법책을 공부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문종합같은 책으로 고3학생들에게 과외를 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이재수 선생님의 덕분이었다. 말하고 듣는 것이 서툴러서 그렇지 독해를 한다든지 작문을 하는 것에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도 이재수 선생님 덕이었다. 그런 면에서 분명히 나에게는 감사해야할 이유가 있고 차마 미워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나는 지금 이재수 선생님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혹시 살아 계시다면, 그리고 만날 기회가 있다면 만나보고 싶다. 그때 왜 그렇게 학생들을 힘들게 하셨느냐고 묻고 싶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나눈 후 마지막으로 내게는 고마워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역시 나라는 동물은 이기적이다. 내게 따듯했다는 것 하나로 미워할 수 없는 이유를 만들어 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