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였던 선생님이 너무 좋았다/안희환
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77)
중학교 2학년 때 내가 만났던 담임선생님은 아주 독특하신 분이었다.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체격이 씨름선수인 이만기 선수처럼 컸고(어린 내게는 그렇게 보였음) 생기신 것은 담대한 아저씨같이 생겼었다(선생님 죄송합니다). 성격은 상당히 괄괄했는데 화를 내실 때는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생각 밖에 아이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분이셨다.
그 선생님은 수업 중에 공부만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종종 엉뚱한 행동을 학생들에게 요구하셨다. 분단을 반으로 나누어 한 쪽에서 “꿍다라락닥”하고 소리를 내면 다른 쪽에서는 “삐약삐약”하고 소리를 내야만 했던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소리를 내는 순간에는 머리를 앞으로 숙이면서 책상을 꿍 하고 쳐야 했는데 내 경우 그것을 무척이나 싫어하였다. 하지만 순종을 잘하는(^^) 나로서는 선생님의 지시를 잘 따를 수밖에 없었다.
생기기를 예쁘게 생기길 했나, 그렇다고 몸매가 날씬하기를 하나, 그렇다고 성격이 부드럽기를 하나, 하나같이 좋아할 만한 구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꿍다라락닥 삐약삐약”이라는 엽기적인 액션 때문이 아님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그러면 아이들은 왜 그 선생님을 잘 따랐을까? 그 선생님 안에 있는 아이들을 향한 사랑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세월이 오래 지났는데도 그 선생님의 이미지가 뚜렷하다. 그 지겹던 “꿍다라락닥 삐약삐약”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영물이다. 정말로 자기를 사랑해주면 그것은 느끼고 고마워하며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한 채 잊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처럼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런데 이처럼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그 여자 선생님의 별명이 마귀다. 아마 중학교 선생님들의 별명 중 최악의 별명이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는데 그 선생님의 이름 때문이다. 여자로서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이름, 아니 흉측한 이름이었는데 그 선생님은 바로 “마귀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계셨다. 그 선생님의 부모님들은 왜 딸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까? 지금 생각해봐도 완전히 미스테리다.
아이들은 그 선생님의 이름에서 “순”자를 빼고 불렀다. 마귀 선생님. 오 마이 갓~ 아이들은 종종 그 이름을 가지고 장난을 치기도 했는데 칠판에 선생님의 이름을 쓰면서 왼쪽 끄트머리에 “마귀”라고 쓴 후 오른 쪽 끄트머리에 “순”이라고 썼다. 그래놓고는 한다는 소리가 창문을 열었더니 바람에 밀려 “순”이라는 글자가 오른쪽으로 날려갔다고 했다.
이것뿐이 아니다. “순”자를 제일 앞으로 보낸 후 “순마귀”라고 칠판에 써 놓기도 했다. 마귀도 그냥 마귀가 아니라 순마귀다. 순종 마귀. 하지만 순마귀의 경우 바람에 글자가 밀려갔다느니 하는 변명을 할 만한 아이디어가 없었기에 그냥 그것으로 끝이었다. 마귀순 선생님은 칠판에 그렇게 쓰여 있는 글씨를 보더니 ‘어떤 녀석이 이랬냐?’하더니 지워버리셨다. 아이들의 그런 장난에 앙심을 품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도 않았고.
세월이 흘러 나부터 중년의 나이에 진입을 하고 있으니 그 선생님은 이제 할머니가 되고도 남으셨을 것이다. 아직 살아계실까? 혹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도 피차 알아보지 못할 것이지만 한번은 만나보고 싶다. “꿍다라락닥 삐약삐약”을 왜 시키셨는지 물어보고 싶다. 아마 많은 학생들을 거치면서 나라는 한 사람을 기억내지는 못할 수 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만날 수 있다면 큰 절을 올리고 싶다. 그 선생님 생각을 하는데 왜 갑자기 눈물이 나려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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