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 목숨을 걸고/안희환
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75)
아직 어린 중학생의 나이에 팔을 하나 잃고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는 날마다 천막교회에 가서 울며 기도하는 동안 점차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하나님이 어쩐 분인지, 정말로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사방이 막힌 가운데 내가 바라볼 곳은 위 밖에 없었고 그 위에서 내가 살아가야할 소망을 얻게 된 것이다.
용기가 생기면서 내가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공부에 대해서였다. 사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특별히 우수한(?)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르치는 나머지 공부에 종종 끼곤 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부모님들은 내가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셨고 나 스스로도 공부해야할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몸이 불편해지고 난 후 아직 작은 소년이었던 나는 공부라도 잘 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조금씩 공부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으로 예습이라는 것을 해보기 시작한 것 같다. 특별히 영어나 수학 같은 과목은 열심히 예습을 했는데 그게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미리 공부해간 내용들이기에 수업 시간에 훨씬 이해가 쉽게 되었고 그 때문에 수업에 재미를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가정 형편상 과외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학교 준비물을 마련하는 것이 어려웠던 우리 집 형편에 과외는 먼 별나라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학원에 다닐 형편도 되지 않았다. 비 오는 날 버스 탈 차비도 없어서 걸어 다니는 형편에 무슨 수로 학원을 다니겠는가? 그렇다고 집안 분위기가 공부할 여건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좁아빠진 판자촌의 집 안에 책상 같은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 모든 불리한 여건들도 마음을 다부지게 먹은 내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집중력이 늘어가면서 공부하는 시간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고 밤 12시 넘어 1시까지 공부하는 날도 다반사였다. 공부하면서 기도도 빠지지 않고 했는데 머리가 좋지 않은 내게 지혜를 달라는 기도였다. 그렇게 나의 중학교 시절은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한 내게 힘든 일은 몸의 연약함이었다. 원래 약한 몸인데다가 큰 교통사고를 겪는 나는 그 후유증 때문에 자주 몸이 아팠던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수업을 들으려고 해도 몸이 너무 아프면 조퇴해야만 했다. 아니 어떤 날은 너무 아파서 아예 학교를 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수업을 빠지면 타격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기로 결심한 내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금 가만히 따져보면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총 12년의 세월 동안 개근상을 받은 적이 딱 한번 있다. 자주 아파서 결석하다 보니 개근상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도 한번 개근상을 받은 것은 결석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결석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출석으로 처리를 해주셨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신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나 자신이 어릴 때부터 어려운 삶의 과정을 겪어야 했던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지금에 있어 가난한 사람들, 몸이 아픈 사람들,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 것은 나 자신이 동일한 삶의 여정을 지나왔기 때문이기에. 환경의 열악함, 그리고 아픔에 몸부림치는 시간들 속에서 공부하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은 그런대로 대견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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