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은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어머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무언가가 목구멍에 걸린 듯이 울컥하는 마음이 드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내게 있어서도 어머니는 그런 존재이다. 바다처럼 한없이 넓어서 헤엄치는 것으로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존재.
사실 우리 4남매의 어머니는 애교가 많은 스타일도 아니고 세심하게 우리들을 챙겨주시는 분도 아니었다. 전에도 말했듯이 어머니는 조금 무뚝뚝한 편이었으며 우리 4남매를 키우고 먹여 살리시느라 삶의 여유를 가지지 못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그 와중에서도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으며 그것은 우리들의 복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내 어릴 적 기억들을 한 페이지씩 넘겨보았다(내겐 인덱스 표시가 잘된 인생의 노트가 머릿속에 내장되어 있다. 믿거나 말거나^0^). 그러면서 찾아낸 것 중 하나는 어머니가 소리치시는 것을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소리치신 적이 전혀 없는 것인지 아니면 거의 없기에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 그것은 헷갈리지만 말이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내 아내만 해도 아이들을 키우다가 화나는 일이 생기면 아이에게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대개의 어머니들이 그와 같은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어머니는 그런 것이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을 전혀 혼내지 않는다거나 그러지는 않으셨다. 때로는 따끔하게 매를 들곤 하신 것이다.
그러다가 우리들이 커가면서 더 이상 매도 때리지 않으시게 되었다. 다만 잘못된 일을 저질렀을 때 그것을 책망하시면서 우리를 바라보곤 하셨는데 그때 어머니의 눈망울은 슬픔에 겨워 당장에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모양이었다. 무뚝뚝한 분이 연기력이 좋은 것도 아니니 그 눈망울은 분명 어머니의 마음이 겉으로 표현된 것이었다고 확신한다.
그런 눈망울 앞에서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거나 미안한 생각을 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포기한 사람처럼 여겨졌는데 아직 어린 철부지들조차(동생들도 그때 그랬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일단 나 자신만이라도) 그 어머니의 눈망울 앞에 항거하거나 장난치거나 하지는 못했다.
세월이 많이 지난 후 나는 나름대로 방황을 많이 했던 셋째동생 길환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어머니의 눈에 대한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동생은 그때 이렇게 말했다. “형. 난 말이야. 슬픈 듯이 날 쳐다보는 엄마의 눈을 보면 미칠 것 같아. 더 이상 엄마를 속상하게 할 수 없어”. 그게 동생이 방황을 그친 단순한 이유였다.
지금도 길환이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물불 안가리고 움직인다. 조금이라도 어머니를 덜 힘들게 해드리려고 애를 쓰는 동생을 보면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내게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냉혹한 질책이 아니라 가슴을 뜨겁게 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였다.
나는 그 어머니에게 많이 배웠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머니같은 눈망울을 닮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슬픔을 머금은 눈을 가지고 누군가를 바라보면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 느끼함을 주고 만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나는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태도에 있어서 어머니의 그 고귀한 태도를 조금이나마 간직한 채 살아가려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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