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판자촌생활

강인한 꼬리뼈를 향하여 충성!! / 안희환

안희환2 2006. 5. 4. 15:30

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35) 강인한 꼬리뼈를 향하여 충성!! / 안희환 

  

요즘 서울랜드를 비롯한 여러 곳의 놀이동산에서 겨울철에 인기 있는 놀이로 자리 잡은 것이 있다면 눈썰매장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눈썰매장이 우리나라에 선을 보이고 인기를 끌기 전에 내가 먼저 그 눈썰매를 즐겼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사실이다. 판자촌의 가난한 아이들이 오히려 첨단의 놀이문화를 미리 즐기기도 했던 것이다.


우리 집 앞의 언덕 위에 뚝길이 있고 그 뚝길에서 고수부지로 비탈진 부분이 있는데 그곳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우선 그곳은 어린 우리들이 뛰어노는 공간이었다. 평평한 고수부지에서만이 아니라 그 비탈진 곳에서도 마음껏 뛰어 놀았던 것이다. 경사진 곳에서 뛰놀던 탓에 지금도 웬만한 경사지에서는 균형을 잃지 않고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곳은 또한 메뚜기류를 잡는 사냥터이기도 있다. 풀이 우거지는 계절엔 메뚜기, 방아개비 따닥개비 등의 곤충들이 들끓었는데 비닐봉지 하나들고 하루 종일 뚝방길과 고수부지 사이의 경사지를 돌아다니면 수십 마리를 잡을 수가 있었다. 특별히 따닥개비를 잡는 것은 기술을 필요로 했는데 날개로 날아다니기 때문이다. 날아가는 방향은 본 후 죽어라 뛰어가서 막 풀밭에 도착한 따닥개비를 낚아채면 되었는데 날아갈 준비를 미처 못한 따닥개비는 손바닥 안에 생포되곤 하였었다.


경사지의 중요한 또 하나의 용도는 겨울철에 두드러졌었다. 많은 눈이 내린 다음날이면 경사지와 고수부지는 눈이 두텁게 쌓인 하얀 세상을 만들었었다. 그때 비료 푸대를 하나씩 구해온 아이들은 뚝방에서 비료푸대를 타고 경사지를 내려오곤 했는데 고수부지 아래까지 빠른 속도로 쭉 내려가는 재미가 일품이었다. 천연적인 눈썰매장이 되는 것이다.


그런 눈썰매 코스는 여러 곳에 만들어졌다. 한곳으로만 눈썰매를 타다가 싫증난 아이들이 다른 곳에 새로운 길을 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른 아이들도 저마다 길을 내고 그러다 보면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눈썰매를 타게 되는데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문제가 발생하곤 했었다. 서울랜드같은 곳의 눈썰매장과 달리 뚝방과 고수부지 사이의 경사지는 땅이 고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푹 파인 곳이 있고, 때로는 돌이 툭 튀어나온 곳이 있는데 눈이 덮인 상태라 그것을 못보고 눈썰매 길을 내다가 비명을 지르며 눈바닥을 뒹굴기도 하는 것이다. 한쪽에서 악 소리가 나면 우리들은 그 의미를 그냥 알 수 있었다.


그 일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엉덩이뼈나 꼬리뼈가 돌에 부딪히는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소리를 내도 아프고 입을 다물고 있어도 아프고, 한참을 그렇게 신음하며 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친한 친구가 돌과 격전을 벌인 그 아이를 그 옆에서 간병(?)해주는 동안 나머지 아이들은 여전히 눈썰매를 타며 환호성을 지른다.


나 역시 그런 고통을 겪은 적이 있다. 남이 닦아놓은 안전한 길에 만족하지 못한 채 새로운 길을 열고자 하는 개척정신을 가진 나는 다른 곳에서 눈썰매 탈 길을 만들곤 했는데 그러다가 못된 돌과 무서운(?) 충돌을 겪어야만 했던 것이다. 우리들은 그렇게 엉덩이뼈와 꼬리뼈 강화훈련을 하면서 눈썰매를 탔다. 지금도 자랑스러워하는 그 훈련을 하면서 말이다.


내 꼬리뼈는 아직도 건재하다. 험한 눈썰매장의 시련을 잘 버텨준 내 강인한 꼬리뼈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충성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