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판자촌생활

도망간 연 찾아 삼만 리 / 안희환

안희환2 2006. 5. 2. 23:20
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33) 도망간 연 찾아 삼만 리 / 안희환 


요즘 하늘은 참 허전하다. 별도 잘 보이지 않고, 하늘을 헤엄치는 새들도 드물고, 창공을 허우적거리는 연도 볼 수가 없다. 그저 밋밋하게 뿌연 하늘인 것만 같아 아쉬울 때가 많다. 바쁜 일상 속에서 하늘을 쳐다볼 기회가 별로 없는 상황에다가 어쩌다 쳐다본 하늘이 뻥하고 비어있으니 이게 뭔가 싶기도 하다.


어릴 적 하늘은 이렇게 허무하지 않았었다. 너무나 선명한 북극성에다 더 자주 볼 수 있었던 철새들, 그들이 머물던 자리에 나와 친구들이 만들어 날리던 연을 채우면 하늘은 기쁨에 겨워 어깨춤을 추었고 그 하늘 아래 우리들은 세상을 다 소유한 듯한 충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자주 만들던 연은 방패연이었다. 삼각연이 만들기도 쉽고 재료비도 덜 들어갔지만 아무리 보아도 방패연에 비해 멋들어지질 않았기 때문에 나는 방패연을 편애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스스로 연을 만들지 못한 채 아버지의 솜씨를 빌어야했는데 점차로 내 연이 아버지가 만든 연보다 품질이 우수하여(^0^) 혼자 연을 만들기 시작했었다.


창호지 한 장 값만 어떻게 마련하면 연을 만들 수 있었는데 연 만드는데 필요한 대나무 살은 대나무를 직접 쪼개고 깎아서 만들었었다. 연 줄은 어머니가 사용하시던 바느질용 실을 살짝 빌려서 썼는데 그 실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곤 하였다. 요즘 시중에서 판매하는 연날리기용 줄처럼 튼튼한 실이 아니었기에 종종 끊어지곤 했던 것이다.


한번은 마음에 들게 잘 만들어진 연을 들고 나갔다. 안양천 고수부지 위 뚝방에 올라가서 연을 날렸다. 역시 솜씨 좋은 내가 만든 연이어서 하늘 한 복판으로 쭉쭉 올라갔다. 바람이 좀 세다 싶긴 했지만 연 날리기의 베테랑인 내게 그 정도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연은 점점 작아지기 시작하더니 거의 주먹만 해졌다. 나는 내가 하늘을 날고 있는 양 신이 났다.


그런데 바로 그때 실이 끊어지고 말았다. 알다시피 실 끊어진 연은 더 높이 나는 것이 아니라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문제는 바람 때문에 안양천 건너 철길 쪽으로 가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나는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뛰기 시작했다. 뛰다가 숨이 차면 걷고 잠시 후 다시 뛰면서 연이 있는 곳을 향해 갔다.


사실 안양천을 가로지르면 더 빨리 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날이 추운 시기였기 때문에 물을 건널 생각은 진즉에 접었다. 대신 뚝길을 따라 기아산업 다리 있는 곳까지 간 후 다리를 건너고 그 다리 끄트머리에서 다시 반대쪽으로 한참을 갔다. 사방을 살피며 연을 찾다가 철길 건너에 떨어진 연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보물찾기에서 쪽지를 찾았을 때 보다 더 큰 기쁨이었다.


연을 주은 나는 더 이상 뛰지 않았다. 연을 찾았으니 안도하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먼 거리를 뛰고 걷느라고 지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찾은 연을 가지고 집까지 오니 더 이상 연 날릴 기운도 없었다. 동생들이 건드리지 않을 곳에 연을 숨겨둔 나는 엎드려 있다가 잠이 들고 말았었다. 그날 꿈에서도 연을 날렸던가?


요즘은 질긴 줄이 많아서 연줄이 끊어지지도 않지만 줄이 끊어진다 해도 연을 줍기 위해 먼 길(^0^)을 떠나진 않을 것 같다. 어릴 적에 연을 위해 먼 길을 떠나보길 잘한 것 같다. 덕분에 추억 한 토막 더 추가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