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판자촌생활

화투를 치면 돈 좀 따오세요 / 안희환.

안희환2 2006. 4. 17. 22:17

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21) 화투를 치면 돈 좀 따오세요 / 안희환.

 

 

 

 

판자촌 사람들에게는 별 다른 꿈이 없었다. 살고 있던 땅도 정부 것이었고, 들어가 사는 집도 더 이상 초라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하였고,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는 수준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와중에 어른들은 화투장을 가지고 세월아 네월아 하였고 그 가운데는 우리 아버지도 고정좌석을 차지하고 계셨다.


사실 나는 화투를 치는 아버지를 무척 싫어했었다. 어릴 때부터 워낙 조숙하기에 불로소득 취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 때문이었던 것은 아니다. 내 이유인즉 상당히 단순한데 아버지가 화투를 치러 가셔서 돈을 따오시는 것을 한번도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패율은 그야말로 100%였다. 그것은 참으로 고도의 기술이었다. 아~ 대단하신 아버지.


문제는 아버지의 다음 행동이었는데 같이 화투를 치던 이웃 아저씨들에게는 큰 소리 한번 안 치시면서 돈을 잃은 후 집에 와서는 엄마에게 소리를 치시는 것이었다. 숨겨놓은 돈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엄마는 정말 바보라도 되는 듯이 돈을 꺼내놓으셨다. 꾸깃꾸깃 숨겨놓았던 생활비를 말이다. 그때 나는 아버지만 아니라 엄마도 그렇게 못마땅할 수가 없었다. 그 돈 나도 좀 주지.


또 다시 나가서 화투를 치는 우리 아버지 각하는 얼마 안가서 돈을 다 잃고 다시 내무부장관인 엄마를 못살게 굴었다. 그러나 더 이상 내놓을 것도 없는 엄마는 크게 대들지도 않으신 채 이제 아무 것도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셨다. 아버지는 신경질을 부리며 나가버리고 엄마는 공기만 흩어놓고 나간 아버지 뒤에서 눈물을 닦곤 하셨다.


그때 나에게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화투를 아주 잘 쳐서 돈을 많이 따오신 다음 내게 용돈을 주시는 거였다. 지금 생각하니 우습고 한심하기도 한 생각이지만 그때에는 진심이었다. 그래서 나는 수없이 속으로 외치곤 했다. “화투를 치면 돈 좀 따오세요”. 만약 아버지가 화투를 쳐서 돈을 따오시고 그 중 일부를 내게 용돈으로 주셨다면 나는 아버지를 존경했을 것이고 화투를 참 좋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전에도 그랬듯이 이후에도 아버지는 초지일관 돈일 잃고 오셨다. 그게 얼마나 많은 돈이었는지는 전혀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어머니의 고생 값이었고 그때의 아버지는 양심도 없이 엄마의 고생 값을 툭툭 털어 이웃 아저씨들의 입안에 집어 넣으셨다는 것이다. 그래놓고는 엄마에게 단 한번도 사과를 하신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릴 적의 나는 여러모로 아버지에게 이를 갈았던 것 같다. 약자인 엄마를 보호하지 못하고 함께 당했던(?) 상처들은 복수심을 일으키기도 했었고 따라서 그런 아버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본 기억이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없다. 참 허무한 부자관계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아버지가 좋고 아버지와 친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은 내게 큰 복이라 생각한다.


내가 성인인 된 이후에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희환아 그땐 참 미안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