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19) 개가 고무신을 안고 자는 사연 / 안희환
어릴 적 나는 개를 지켜보면서 참 정이 많고 사람을 잘 따르는 동물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 집은 닭도 키워보고 토끼도 키워보고 고양이도 키웠었는데 사람과 친하기는 개를 따라갈 만한 짐승이 없는 것이다. 금방 친해지는데다가 한번 친해지면 그 정이 끈끈하고 변하지를 않는 것이다.
워낙 많은 개들이 거쳐지나갔기에 모든 녀석들을 다 기억하지만 못하지만 그래도 마음 깊이 남아있는 녀석들이 있는데 지금 말하려고 하는 복슬이도 그런 녀석이다. 복슬이는 암놈이었는데 새끼였을 때 우리 집에 왔고 건강하게 잘 자라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복슬이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는데 어머니 말씀에 새끼를 배었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는 너무 기뻐서 새끼가 나오기를 학수고대했는데 학교에 갔다가 최대한 빨리 집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복슬이는 아직까지 새끼를 낳지 못하고 있었다. 왜 새끼가 안 나오느냐는 내 등살에 어머니는 급기야 소리 지르셨고(어머니에겐 거의 드문 일) 나는 속만 태우며 새끼들이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래서 내 인내심이 많은 것이다. ^0^
마침내 복슬이가 새끼를 낳았다. 아~ 그런데 하얀 복슬이가 낳은 새끼 중에 검은 녀석도 있었다. 나는 그때 마냥 신기해했었다. 하얀 어미에게서 나온 검은 새끼라~~ 아무튼 아버지는 심하게도 검은 녀석 하나와 하얀 녀석 하나만 남겨두고 나머지 녀석들을 다 나누어주셨다. 아버지는 그때 왜 그리 미운 짓만(어린 마음에) 하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린 강아지 두 마리는 건강하게 자라나갔다. 그런데 이 두 녀석이 얼마나 정이 돈독한지 같은 날 태어났다고 같은 날 죽고 말았다. 마음씨 나쁜(?) 밭주인이 밭에 농약을 놓았는데 두 녀석이 밭에 돌아다니다가 먹을 것을 주워 먹고는 같이 죽어버린 것이다. 우리 가족들은 다 같이 밭주인을 욕했다. 아버지는 그 녀석들을 안양천 고수부지에 묻어놓으셨다.
그런데 다음날 깜짝 놀랄만한 일이 발생했다. 복슬이가 어떻게 새끼들이 묻힌 자리를 찾았는지 땅에서 새끼들을 파내어 자기 집에까지 물고 온 것이다. 아버지는 도로 들고 나가 아예 깊숙한 곳에 묻어 놓으셨다. 복슬이의 구슬픈 울음은 새끼들을 잃은 어미의 아픔 때문이었으리라. 다음 날 우리 가족들은 눈물이 핑 돌만한 일을 목격하였다.
복슬이는 새끼 대신 하얀 고무신 한 쪽과 검은 고무신 한 쪽을 물어다 자기 집 안에 들여놓고는 그것을 품고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차마 그 고무신을 빼내지도 못하셨고 복슬이는 짝이 다른 고무신 한 켤레를 품에 안고 놓을 줄을 몰랐다. 그때 이후로 나는 개들이 검은색과 흰색을 구분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요즘 자식을 버리는 엄마들을 보면 그때의 복슬이가 생각난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불쌍한 마음도 들지만 어찌 보면 참 모질기도 하구나 하는 마음도 든다. 동물조차도 제 자식을 향한 그리움에 그토록 목을 매는데 말이다. 아마도 복슬이 사건은 내 생명이 끝나기까지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불쌍한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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