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판자촌생활

거인을 물리친 작은 로빈 훗들 / 안희환

안희환2 2006. 4. 20. 07:59

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23) 거인을 물리친 작은 로빈 훗들 / 안희환

 

 

지난번에는 붕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다. 붕 말고 우리들이 잘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이 있었는데 활이다. 주변에서 대나무는 쉽게 얻을 수 있었는데 우리들은 그 대나무를 주워서 활을 만들었다. 가급적 억세고 단단한 것을 사용하였는데 어린 우리들의 힘으로 구부러뜨릴 수 없는 경우에는 연탄불을 활용하였다. 약간 힘을 준 상태로 대나무를 연탄불에 쪼이면 대나무가 구부러지는 것이다.


화살은 얇은 나뭇가지나 갈대 같은 것을 이용하였다. 이 둘 사이에는 장단점이 있었는데 나뭇가지의 경우 활을 쏘면 멀리 나가지를 않지만 단단하기에 여러 번 사용하여도 별 문제가 없었다. 반면에 갈대 같은 것으로 화살을 만들면 쉽게 망가져서 여러 번 사용한데 제약이 있는데 반해 나뭇가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멀리 나갔다.


화살 끝에는 바늘이나 납작한 부분을 잘라낸 못을 사용한다. 날카로운 부분이 겉으로 나오도록 바늘이나 못을 박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새의 깃털이나 비늘을 댄다. 그렇게 할 때 방향을 조절하기가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다 만들어진 화살을 활에다 끼운 후 세게 잡아 당겼다가 놓으면 화살은 시원하게 날아간다. 우리는 모두 궁수들이다.


한번은 동네에 화살 부대가 집결해있는데 적의 첩자가 나타났다. 그는 거인이었다(어른). 우리들은 모두 긴장한 상태로 대열을 정비하였고 뚝방에 있는 그를 중심으로 사방을 둘러쌓다. 그 거인은 사자처럼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하는 짓들이야?”. 그러나 우리는 기죽지 않고 활을 겨누었다. 거인은 얼굴을 가린 채 계속 소리를 질러대며 서서히 도망을 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들은 그야말로 못된 악동들인 셈이다. 어른 한 명이 뚝길을 지나가다가 버릇없는 아이들이 활을 겨누는 바람에 얼굴을 가리고 도망한 것이니까. 소리를 질러도 겁먹거나 미안해하지도 않고 활을 겨누는 아이들이 무척 미웠을 것 같다. 그 아저씨의 기억에서 우리들의 존재가 지금까지 남아있는지를 잘 모르겠지만 우리들(혹은 나)의 기억 속에서 그 아저씨의 모습이 지금도 살아 움직인다.


얼굴을 전혀 모르고 이름은 더더욱 모르지만 내 추억의 일부분으로 자리잡기 위해 엑스트라내지 조연의 역할을 맡아주신 그 아저씨에게 이 시간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혹시 자신이 그때의 아저씨였다고 밝혀주시는 분이 있다면 이제 내가 아저씨가 된 마당이니 정중한 사과를 할 생각이다. 내게 말씀해주시기를 바란다.


우리나라는 양궁이 많이 발전했다. 양궁선수권대회든 올림픽대회든 일단 양궁에 나갔다 하면 좋은 성적을 거두는 우리나라인 것이다. 로빈 훗도 울고 갈 활의 귀재들이 많은 대한민국. 나처럼 어릴 때부터 활을 가지고 논 사람들이 많기에 이 나라는 양궁의 대국으로 우뚝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우린 상을 받아 마땅한 어린들이었던 것이다. ^0^


종종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활 쏘는 모습이 보이면 어릴 적 할을 가지고 놀던 기억들이 오버랩 된다. 다시 생각해봐도 그리운 옛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