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20) 아버지 술 마셨으면 자빠져 잠이나 자라 / 안희환
어릴 적 나는 아버지와 그다지 친하지를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버지는 그다지 자상한 편이 아니셨고 어린 내 눈에 늘 엄마를 괴롭히는 폭군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나는 장남으로서 책임 의식을 느꼈고 약자인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해야만 했는데 그게 여의치가 않아서 맘고생을 해야만 했다.
우리 아버지의 아주 고약한 점 중 하나는 술을 좋아하신다는 거였다. 단 하루라도 술 없이는 못 사시는 것처럼 술에 절어서 지내셨다. 위스키같은 고급술은 꿈도 못 꿀 일이었고 맥주나 소주 등도 사 드실 형편이 못되었기에 주로 직접 빚어 만들어 파는 막걸리를 드셨는데 나도 가끔은 시식을 할 수 있었다. 아버지 심부름으로 주전자에 술을 사오면서 길거리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 몇 모금씩 마셨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 캬~~^0^
술을 실컷 마신 아버지는 잔소리의 대왕이셨다. 한 소리 또 하시고, 한 소리 또 하시고 그렇게 끝없이 이어져갔는데 내가 반복 학습을 싫어하는 것은 아버지 영향인 것 같다. 혼날까봐 도망은 못가지만 속으로 진저리를 치면서 아버지의 술버릇을 원망하였다. 그러나 누가 우리 아버지 입을 꿰매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나를 힘들게 하던 것은 한 밤에 어머니를 힘들게 하는 아버지의 술주정이었다. 낮에 땡볕에서 풀을 뽑아 푼돈을 버시던 어머니는 피곤에 겨워 잠을 주무셔야 했는데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밤새 괴롭히는 것이었다. 참다못한 내가 끼어들면 집안은 더 발칵 뒤집힌다. 그런 줄 알면서도 나는 종종 아버지에게 따져들었고 그런 나를 아버지는 무척이나 못마땅하게 여기셨다.
그 당시 내가 부러워한 것은 어이없게도 옆집 아저씨 중 한분이었는데 그 아저씨는 술만 마셨다하면 그냥 잠을 자고는 했다. 순한 양 같은 그 아저씨는 내게 이상적인 술취함의 모습이었다. 겉으로야 말 못하지만 속으로야 미움이 꽉 차서 아버지를 향해 소리치던 나는 아버에게 이렇게 외치곤 했다. “술 마셨으면 자빠져 잠이나 자라”. 물론 들리지 않게...
지금의 아버지는 술을 드시지 않는다. 교회를 다니시면서 술을 다 끊으셨고 지금은 교회의 장로님이 되셨다. 가끔 아버지의 옛 모습을 말씀드리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시침을 떼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그렇게 증오에 이를 갈던 아버지였는데 그 아버지를 좋아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나도 아버지가 되었기 때문이려나?
문득 현진건님의 [술 권하는 사회]가 생각난다. 1921년 [개벽]에 실렸던 소설에서 현진건님은 이렇게 말했었지. “쏠쏠한 새벽바람이 싸늘하게 가슴에 부딪친다. 그 부딪치는 서슬에 잠 못자고 피곤한 몸이 부서질 듯이 지긋하였다. 죽은 사람에게서나 볼 수 있는 해쓱한 얼굴이 경련적으로 떨며 절망한 어조로 소근거렸다.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고충을 이해할 것도 같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절말 속에서 마신 한잔 술의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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